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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일사일언] ‘노키즈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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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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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누나가 있었다. 그런데 큰누나가 결혼을 했을 때 박지원은 고작 여덟 살이었다. 이 훗날의 위대한 작가는 절대로 점잖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벌러덩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고, 새신랑 흉내를 내며 누나를 놀려댔다.

상상해보자, 학교에서든 어디든 조그만 악동들이 깝죽대며 짓궂은 짓을 해대는 모습을.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박지원은 말했다. 큰누나가 부끄러워 빗을 떨어뜨리고, 그게 박지원의 이마를 맞혔다고. 떨어뜨린 빗이 어떻게 날뛰는 아이의 이마 한가운데에 맞았겠는가, 틀림없이 던졌겠지. 그래서 박지원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했을까? 천만의 말씀,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 울며 떼쓰고, 누나의 분첩과 거울에 침을 뱉기까지 했다. 결국 큰누나가 자기 노리개를 건네주며 말썽쟁이 박지원을 달래야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옥으로 만든 오리와 금으로 만든 벌 노리개는 큰누나의 귀한 혼수품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에 악동이 바로 연암 박지원이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박지원의 초상화를 보면, 부리부리한 눈매도 그렇고 호랑이라도 때려잡을 듯이 풍채가 좋았다. 그가 한국의 역사에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가? 그랬던 그조차도 어릴 적에는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웅 이순신도 오성 이항복도 성숙해지기 전, 어릴 적의 말썽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많은 말썽쟁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다.

오늘도 노키즈존 이야기가 들린다. 미술관에는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미숙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성가시게 하며 때로 미치게 한다. 언제나 그렇다. 이제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예의 바름? 조숙함? 철듦? 의젓함? 하지만 우리 중 절대다수는 수많은 바보짓과 한심한 짓을 겪고, 후회하고 또 체념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잘못을 저지를 기회를 주자. 그러면 후회하는 순간도 가지게 될 것이다. 28년의 세월이 흘러 박지원이 어린 시절의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돌아간 큰누나를 추억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한 작가·'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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