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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 (목)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10조 더 줄이고···5개월 연속 팔아 '패닉셀'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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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916조 국민연금, 국내주식 투자 '나몰라라'

연기금 지난달만 2245억 매도, 코스피 2200선 깨지는데 한몫

올 들어선 1조3730억 순매도···"최대 큰손이 약세장 부추겼다"

일부선 "기금운용위 전문성 높은 기재부로 이관해야" 주장도

“증시 소방수는 기대도 안 합니다. 국민연금이 그런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투자 목표치를 계속 낮추더니 그마저도 축소 운용해 국내 증시에서 10조 원가량이나 더 팔아치운 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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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국민연금의 최근 운용 현황(7월 말 기준)을 서울경제가 분석해 증권 업계와 관련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니 이구동성으로 나온 말이다. 연기금이 최근 코스피에서만 5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하며 1조 4000억 원가량을 팔아치워 지수 하락을 부채질했고 그 중심에 국민연금이 있는 것에 비판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코스피 2200선이 깨진 상황에서 다가오는 어닝 시즌의 불안감이 여전하지만 연기금이 이제는 국내 주식을 장기적 관점에서 ‘살 때’ 라고 조언했다. 주가가 연초 대비 상당한 조정을 겪었고 달러화 대비 원화 약세도 큰 만큼 국민연금이 20조~30조 원에 달하는 매수 여력을 단계적으로 시장에 풀 때라는 얘기다. 아울러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운용 재량권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한층 폭넓게 부여할 필요가 있고 국민연금을 총괄하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주무 부처를 보건복지부에서 전문성이 있는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것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올 7월 말 기준 916조 원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투자자산군 중 ‘국내 주식’ 비중을 꾸준히 낮춰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중기 자산 배분에 의해 국내 주식 비중은 지난해 16.8%에서 올해 16.3%로 줄었고 내년에는 15.9%로 더 떨어진다.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가 조만간 1000조 원을 훌쩍 넘어 당분간 계속 증가하는데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한강에서 고래가 사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가 약세장을 맞고 경제가 복합 위기에 직면했는데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급속히 줄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국민연금은 올해 초만 해도 전체 운용 자산(948조 7000억 원)의 17.5%를 국내 주식에 배분했는데 7월 말 현재 15.2%(138조 8000억 원)로 비중을 급속히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연말까지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당초 전체 자산의 16.3%로 설정하고도 이보다 1.1%포인트나 축소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투자자산군별 목표 비중에 ±3%포인트의 전략적자산배분(SAA) 이탈 허용 범위를 두고 있는데 기금운용본부가 이를 활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연기금은 코스피 시장에서 5월부터 5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으며 지난달에만 2245억 원어치를 내다 팔아 코스피 2200선이 깨지는 데 한몫했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순매도한 전체 금액은 1조 3730억여 원에 달하는데 업계는 국민연금이 매도액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형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매도에 나서는 기미가 보이면 반대로 투자하기 어렵고 같이 ‘팔자’로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민연금의 과매도는 하락장에서 지수 추락을 대놓고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지낸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꼭 축소해야 하는지도 논란의 대상이고, 정답은 없는 사안” 이라며 “하물며 이렇게 어려운 시점에 주식을 팔면서 증시에 훼방꾼 역할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의 ‘패닉 셀’을 주도한 데 반해 해외 주식에 대해서는 올해 초 투자 비중을 27.1%(평가액 256조 6000억 원)에서 7월 말 기준 27.4%(250조 8000억 원)로 확대하며 달러 사재기에 나서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리스크 관리에만 치중하며 쉽사리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지 않는 데 대해 이제는 수익률 관리를 위해서도 “한국 주식을 살 때가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의 닥터둠으로 불리는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부터는 주식을 팔 때가 아니라 사서 모을 때”라며 “내년 1분기까지는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국내 재벌들의 자산 1조 원가량을 주로 해외에서 굴리는 한 패밀리 전문 자산운용사도 달러 가치가 정점을 앞둔 반면 원화와 한국 주식의 가치가 충분히 떨어진 만큼 해외 자산을 매각하고 한국물 투자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본지에 알려왔다.

글로벌 금리 인상이 연말까지 이어지며 자본시장의 위기가 커질 수 있는 만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지배구조나 운용 원칙이 개선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안 교수는 “시장이 위기를 맞거나 유사시인 경우 기금운용본부가 재량권을 더 갖고 투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한 학계 관계자는 “복지부 대신 여러 기금을 운영하고 있는 기재부가 전문성이 앞서는 만큼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을 주관할 수 있도록 제도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김선영 기자 earthgir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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