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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히잡 때문에 죽기 싫어"…이란인들이 한국서 머리칼 자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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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머리카락 보였다고 죽어야 하나"]

이란 태생 60대 박씨마씨는 1990년대 중반 남편 국적을 따라 한국에 귀화했다. 그는 3일 저녁 머니투데이 전화를 울면서 받았다. 유튜브에서 이란 경찰들이 히잡 반대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때리고 강제로 연행한 영상을 보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대학생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얼마나 더 많은 아이가 다쳐야 하는지 서럽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이란에서 한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안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조사받던 중 의문사했다. 이란 곳곳에서 이슬람식 통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돼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에서도 이란인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이들은 "외국 정부나 유명 인사들은 지지한다는 목소리를 낸다"며 "한국에서도 연대의 목소리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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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현지시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 뒤 숨졌다./사진=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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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마사 아미니(22·여성)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붙잡혔다. 도덕경찰은 2005년 설립돼 여성들이 이슬람 율법에 맞게 차림새를 하는지 감시하는 부대다. 이들이 여성을 구타하는 등 인권을 유린한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아미니는 잡혀간 날 조사를 받다가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흘만에 숨졌다. 경찰은 아미니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밝혔다. 유족은 아미니 몸에 난 멍 자국을 발견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아미니 의문사에 항의하는 시위는 곧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했다. 거리를 채운 시위대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시위 이면에는 이슬람식 통제를 향한 반발 심리가 있다. 지난해 이슬람 율법학자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통제가 엄격해졌다. 라이시 대통령은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으면 사회적 권리를 박탈한다는 법에 서명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란인권단체(IHR)는 이란 당국의 시위 진압으로 지난달 16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76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했다. 숨진 이들 중엔 16세 소년도 있다.

지난달 16일 이란에서 한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 뒤 숨진 가운데 여성들이 항의의 표시로 히잡을 불태우고 있다./사진=트위터 'Shayan86'

박씨는 아미니가 쓰러지고 이틀 뒤 온라인 기사로 사건을 알게 됐다. 기사에는 아미니 부모가 병원에 찾아갔지만 면회가 허락되지 않아 문밖에서 껴안고 우는 사진이 실렸다. 박씨는 "슬프고 화났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달 25일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집회를 했다. 집회에는 12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히잡 때문에 죽어야 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당수가 유학생이었다. 박씨는 "최근 이란 내 한국 드라마와 K팝의 인기로 유학생이 늘었다"고 전했다.

히잡 착용을 향한 이란인들의 불만은 생각보다 크다. 이란 여성은 7세가 되면 히잡을 써야 한다. 이슬람 율법이 여성 몸은 7세 때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히잡을 쓰지 않으면 학교도 못 가고 취직도 못 한다. 박씨는 "심한 경우 집 안에서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가정도 있다"며 "히잡을 쓰지 않으면 가정이나 사회와 단절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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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이란인들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 앞에서 히잡 항의 집회를 했다. 경찰 통제선 앞에서 시위대를 향해 외치는 여성이 박씨마씨./사진제공=박씨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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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인들은 지난달 28일에 이어 이달 1일에도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날 머리카락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했다. 박씨는 "아미니는 머리카락 몇 올이 보였다는 이유로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며 "머리카락 때문에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머리카락이 필요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한국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란에 한국 드라마와 K팝이 많이 알려졌다"며 "어떤 한국 여배우는 히잡을 쓰고 이란에 방문한 적도 있지만 한국 유명 인사들의 연대 의사 표명은 아직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속상하고 서운하다"며 "여성이 아니더라도 세계인으로서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란인들은 오는 9일 주한 이란 대사관 앞에서 네번째 항의 시위를 열 계획이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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