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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세계 무대로 가자!"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여자 야구 현주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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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주년을 맞아 한국 프로야구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여자 야구선수는 40년이 지난 오늘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한국 여자야구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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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이천=황혜정기자] “어~이, 탕! 탕!”

힘찬 구령과 함께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울려 퍼진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지난 2일, 경기도 이천의 한 야구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훈련 시작이다. 총 22명의 국가대표 중 부상자 2명과 대학입시 준비자 3명을 제외한 17명이 야구장에 모였다.

이들은 45분 간 실내에서 충분한 스트레칭부터 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전직 야구 국가대표 방순진 트레이너의 지도 하에 야구를 할 때 자주 쓰는 허벅지와 팔 근육을 주로 풀었다. 엄격한 훈련을 생각했는데,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팝송 음악이 스트레칭 시간에 흘러나온다. 이날 대표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표팀은 전날 U-15 남자 주니어 대표팀과 올해 첫 연습경기를 가졌다. 대표팀 임동준 감독은 “수비 쪽에서는 투수들이나 야수들이 던지는 것이나 움직임, 파이팅이 전체적으로 좋았다. 그런데 수비가 아무리 좋아도 공격력이 조금 아쉽더라. 타격 쪽이 아쉬웠다. 실전 감각을 많이 연습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 홍은정 코치는 “세계 대회에서 경쟁하려면 빠른 볼에 대응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 올해 대표팀은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경험이 없다.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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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선수들이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러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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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구 국가대표는 매년 봄, 선발전을 연다. 올해 여자야구 연맹에 등록된 여성 사회인 야구단은 총 47개, 여성 야구인은 1100명이 조금 안 된다(남자 사회인 야구 공식 등록수는 65만 명). 올해 선발전에 지원한 이는 여자 야구인 중 최고로 잘하는 56명이 모였다. 이중 22명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선발됐다. 이번 대표팀의 연령대는 최연소 만 16세부터 만 35세까지 다양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지원한 계기도 각양각색이다. 박시언은 2006년생으로 대표팀 막내다. 이번에 첫 발탁됐다. “동네에서 친구들끼리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들어간 사회인 야구)팀 선수들과 같이 선발전에 출전했는데 혼자만 뽑혔다.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2년 반 정도 됐다”고 말했다.

이민서는 “친오빠가 야구를 정말 좋아해 어릴 때부터 같이 캐치볼을 하면서 자랐다. 학교 방과후 수업에 야구반이 있어서 수업도 듣다 보니 야구가 점점 좋아졌다. 전국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현재 어느 정도 위치인지 평가받고 싶어서 이번 선발전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에서 추진한 ‘여학생 학교 체육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야구를 시작해 국가대표까지 된 이도 있다. 심현정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 ‘여자야구 스포츠 클럽’이 생겼다. 내가 나온 영남중학교는 KT 박병호 선수의 모교이기도 하다. 학교에 야구 장비가 많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야구팀에 들어갔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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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신누리가 높이 솟구친 공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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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주장이자 포수 이빛나가 블로킹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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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 박소연이 수비 훈련 도중 몸을 날려 타구를 잡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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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20분, 외야와 내야를 나눠 펑고 훈련 시작이다. 펑고 훈련이란, 야수가 수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트로 쳐 준 타구를 잡는 훈련이다. 외야로 공을 날리던 임 감독이 한 선수를 칭찬했다. “가은아 나이스! 많이 좋아졌어. 그렇게 끝까지 달려가면 돼.” 대표팀 막내 손가은은 “칭찬을 오늘에서야 처음 듣는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입가에 뿌듯한 미소는 감추지 못했다.

쉴새없이 내야를 누빈 박소연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재밌다”고 답했다. 이날 박소연을 비롯한 야수들은 몸을 날려가며 강한 타구들을 잡아냈다.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대표팀 선수들은 호수비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동료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칭찬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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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지 선수가 3루에서 공을 받아 1루로 송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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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가량의 펑고 훈련을 마치고 잠시 휴식 뒤, 점심 식사 전까지 또 한번의 펑고 훈련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외·내야에서 공을 받아 베이스로 송구까지 하는 훈련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표팀에 선발된 2년 차 국가대표 조민지 선수는 3루수다. 그는 이날 3루 파울라인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던 강한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임 감독은 “민지! 네가 2루타를 막아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민지는 공을 잡아 1루수에게 송구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공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1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강한 어께와 정확한 송구 능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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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고 훈련을 마치고 공을 주워담아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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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촬영한 사진(왼쪽)과 박소연이 촬영한 사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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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30분 간의 휴식시간. 2000년대생 젊은 선수들이 한데 모여 손을 높이 들고 ‘이상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올해 뽑힌 대표팀에 2000년대생은 14명이나 된다.

물어보니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구도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인싸’들이 찍는 구도로 모자만 나오는게 포인트다. 이들이 찍은 사진을 받아봤더니 정말 국가대표 ‘모자’만 나왔다. 유쾌한 대표팀의 분위기를 언급했더니 박시언은 “언니들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고 잘 챙겨주신다. 대표팀에 오면 항상 즐겁다”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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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상황을 연습하는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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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주은정과 신누리가 내야 수비 훈련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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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30분, 다시 훈련재개다. 이번에는 타격 훈련이다. 순서대로 돌아가며 타석에 선다. 이날 한 선수가 쳐낸 공은 대략 100개 정도다. 공이 쉴새 없이 날아왔지만 선수들은 지친 기색없이 배트를 휘두른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쭉 뻗어나간다. 대부분 외야로 멀리 날아간다.

잘 맞은 타구가 나올 때면 대기하고 있던 선수들이 환호했다. 배트에 빗겨 맞아 파울볼이 나올 때면 선수들은 “한 번만 더!”를 외치며 좋은 타구가 나올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공이 잘 안 맞는 날에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묻자 내야수 이지아는 “빈스윙을 많이 하며 타이밍을 찾는다”고 답했다. 내야수 김현아는 “가까운 거리에서 짧게 타격하며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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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도루 저지 신호 중 일부. (왼쪽부터)투수 박민성, 이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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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까지 경기 상황을 가정한 모의 훈련까지 소화해내며 선수들은 이후 30분간 투수조와 야수조로 나눠 마무리 훈련을 했다. 투수조는 임 감독의 지도 하에 투구 후 바운드 된 볼을 잡아 1루로 송구하는 훈련과, 도루 저지 사인 신호를 받고 1, 2루로 송구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야수조는 홍 코치의 지도 하에 타격 훈련을 했다. 홍 코치는 선수들의 자세와 타격 타이밍을 교정해줬다. “가은아, 있는 힘껏 휘둘러야지!” 힘이 약한 막내 손가은 선수에게 홍 코치가 조언한다. 손가은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공을 휘두른다. 점점 힘이 붙는 게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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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김보미가 투구 후 바운드 된 볼을 잡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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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김해리가 훈련 마무리로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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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무렵, 아침부터 이어진 훈련이 종료됐다. 이들에게 태극마크의 의미를 물었다. “국가대표는 자부심, 태극마크는 자랑스러움이다” 입을 모아 답한다.

2년 차 야구 국가대표 박소연은 “야구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재미’다. 안타치고 어려운 타구를 잡아내면 정말 재밌다. 물론, 태극마크를 달면 부담도 있다. 그래도 각 국가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경기를 치르면 재밌다. 보람도 있다”며 미소지었다.

박민성은 4년 차 야구 국가대표다. 그는 “여전히 매년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떨린다. 경쟁자들의 실력이 점점 높아진다”며 “대표팀에 오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될 수 있는 한 매년 선발되고 싶다”고 말했다.

2016년도 첫 태극마크를 단 이래로 올해로 7년 차 야구 국가대표이자 주장을 맡은 이빛나는 “책임감이 강해진다. 여자야구 인구 1000여명을 대표해서 나온 자리다. 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큼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언제나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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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국가대표 투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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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국가대표 야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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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은 코로나19로 개최가 미뤄진 아시안컵에서 3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일본과 대만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박민성은 “일본과 대만은 남자야구 하는 것 같이 하더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빛나는 “사실상 필리핀과 3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쿼터를 통과하고자 하는 이유는 미국, 호주 등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 대회에 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소연은 “세계 무대에서 전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과 경쟁해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세계를 무대로 호쾌한 적시타를 날릴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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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자야구 국가대표 명단(총 22명)
투수(9명) = 김보미(대전 레이디스), 심현정, 사유리, 이유진, 이지숙(이상 후라), 박민성(창미야), 박시언(나인빅스), 최송희(위너스), 이민서(당진 주니어)
포수(3명) = 이빛나(무소속), 김해리(퀄리티스타트), 박재희(대전 레이디스)
내야수(6명) = 김현아(양구 블랙펄스), 박소연(대전 레이디스), 이지아(후라), 박주아, 조민지(이상 창미야), 장윤서(당진 주니어)
외야수(4명) = 신누리(퀄리티스타트), 안수지(리얼디아몬즈), 주은정(부천플레이볼), 손가은(당진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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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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