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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대법관 공백 한달…국회 인준 중단에 대법원 '냉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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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준 후보자 인준 중단으로 '미쓰비시 자산 매각' 등 결론 기약없어

전원합의체 선고 '올스톱'…'노란봉투법' 관련 소송 등 쟁점 사안 논의도 못해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대법관 공석'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주요 사건이 산적한 대법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인 오석준(60·사법연수원 19기) 후보자의 국회 인준 절차가 야권의 반대로 멈춰 섰기 때문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재형(57·18기) 전 대법관이 지난달 5일 퇴임하면서 그가 주심을 맡았던 대법원 3부 사건 330건(민사 200건·형사 86건·특별 44건)의 결정은 기약이 없어졌다.

일제 강제노역 피해 배상과 관련한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 문제 같은 민감한 사건도 그중 하나다.

대법관 공백은 사회적 쟁점에 가치의 준거를 최종으로 제시하는 전원합의체 판결 중단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답변하는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2.8.29 [국회사진기자단] srbaek@yna.co.kr


◇ 대법관 1명이 연간 3천600건 처리…"공백 길어지면 후유증 심각"

대법관은 모두 14명이다. 이 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뺀 12명은 소부 3곳에 4명씩 배치된다. 소부에서 심리하는 사건은 대법관 1명이 주심을 맡고 나머지 3명과 합의해 결론을 도출한다. 통상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열리는 소부 합의에서는 대법관 1명이 100여건씩 사건을 처리한다.

김 전 대법관의 공석이 채워지지 않아도 그가 소속됐던 3부에 남은 재판관 3명 각자가 주심인 사건은 판결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김 전 대법관의 후임자가 배당받아야 했을 사건이 다른 대법관에게 추가로 배분돼야 해 가뜩이나 사건 적체가 심한 대법원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대법관 1명이 한해 맡는 주심 사건은 평균 3천665건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12명이 나눠 맡을 사건이 11명에게 가니 전체적으로 적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공백이 장기화하면 회복하는 데도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전원합의체 선고가 '올스톱'됐다는 것은 더 큰 제다.

전원합의체는 사안이 까다롭고 대법관의 의견이 갈려 소부에서 다룰 수 없을 때나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해야 할 때 소집되고, 통산 한 달에 한 번 정도 선고를 내린다.

판결 하나하나의 사회적 파급력이 큰 만큼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소부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해 과반 의견에 따른 결론을 도출한다.

현행법상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있으면 소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새 대법관이 임명되기 전까지는 현실적으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고 본다.

찬성·반대 숫자가 같아지는 '가부동수'(可否同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 재판관 숫자가 홀수여야 하는데 공백이 있는 지금은 대법원장까지 총 12명이 되기 때문이다. 전원합의체의 표결 결과가 '11대1'처럼 압도적인 다수 의견이 나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안도 적지 않다.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은 서로 토론·설득을 하면서 자기 입장을 정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새 대법관이 언제 임명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는 합의를 시작하기 힘들다는 것이 대법원 안팎의 시각이다.

대법관이 '총 12명' 구조를 상정하고 상호 토론·설득을 하는 것과 '13명'을 전제로 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어서다.

현재 전원합의체에 계류 중인 사건은 7건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법원은 원래 지난달 22일로 예정됐던 전원합의체 선고를 무기한 연기하고 심리만 진행했다. 대법원 내부에선 앞으로도 새 대법관이 올 때까지 전원합의체 선고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회적 쟁점 수두룩한데 기약 없이 멈춰선 전원합의체

전원합의체 공전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전원합의체 감'이지만 아직 회부조차 안 된 사건의 향방이다.

법조계에서는 지금 3심에 올려진 사안 가운데 규모나 성격상 전원합의체 합의가 필요하고 회부가 논의될 가능성이 큰 사건이 20여건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재판부 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선 새 사안의 회부도 쉽지 않다.

'배드파더스' 관련 재판이 대표적이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단체 관계자는 2020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지난해 2심에선 명예훼손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명예훼손'과 '정당행위' 논리가 맞붙은 사안이다.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발생했을 때 개별 노조를 상대로 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소송도 관심을 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과 내용상 유사한 재판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재계의 반발로 노란봉투법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전원합의체에 사건이 넘겨져 현행 노동법 적용 기준이 바뀐다면 굳이 새 입법을 거치지 않아도 단체행동권이 보다 명확히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밖에도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 당사자에 원청 사용자를 포함시킬 것인지, 대기업의 경영 성과급을 퇴직금 산정 범위에 넣어 계산할지 등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칠 쟁점 사건도 전원합의체 판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의 수사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바꿀 대법원 계류 사건도 '전원합의체 감'으로 여럿 거론된다.

경찰관이 식당이나 숙박업소에 손님으로 위장해 들어간 뒤 확보한 증거의 법적 능력을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재판,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일실수입'(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을 한 달에 며칠치로 계산할지에 관한 소송, 10년이 지나면 무조건 소멸하는 항공사 마일리지 문제 등도 대표적인 쟁점 사안으로 꼽힌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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