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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소문난 잔치’ 프리즈 서울이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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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국제갤러리 부스 설치 전경. |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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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9월 2일 개막해 전국의 미술 애호가들을 들썩이게 했던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6일 막을 내렸다. 프리즈는 2003년 영국에서 시작된 아트페어로 아트 바젤, 피악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손꼽힌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판을 넓혀 프리즈 뉴욕(2012)과 프리즈 로스앤젤레스(2019)를 잇따라 열었다. 한국화랑협회는 2019년 10월부터 프리즈와 서울에서 미술 장터를 공동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아시아 시장 진출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던 프리즈가 키아프의 손을 잡으면서 양측의 공동 협력 체제로 이번 아트페어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로써 서울은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에 이어 프리즈가 열린 세계 네 번째 도시가 됐다.

프리즈뿐만 아니라 한국화랑협회 차원에서도 이번 행사의 의미는 남다르다. 프리즈 서울이 사실상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 역할은 오랜 시간 홍콩이 맡아왔다. 홍콩은 가고시안, 리만머핀 등 세계 굴지의 대형 화랑이 거점을 두고 있고 아트 바젤의 개최지로도 유명하다. 최근 정치적인 문제로 홍콩 정세가 불안정해진 상황 속에서 프리즈 서울의 흥행 여부는 아시아 미술 허브 역할에 도전장을 내민 차세대 주자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척도로 받아들여졌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의 일본문화 개방 정책을 떠올리기도 한다. “개방의 과실을 따먹을 것이냐” vs “잡아먹히고 말 것이냐” 사이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던 당시의 우려와 충격과 유사한 논쟁이 미술계를 중심으로 꽤 오랫동안 있어왔다.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국 미술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폭제가 될 것이냐” vs “겨우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한국 미술 시장의 과실을 글로벌 화랑이 다 가져가버릴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규모가 작은 중소 화랑일수록 외국계 화랑의 약진을 바라보는 심사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국내 대형화랑과의 경쟁도 벅찬데 이름만 들어도 주눅 들게 하는 글로벌 화랑과 해외 예술거장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는 모종의 두려움은 이번 행사를 통해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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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입구 | 구민경 에디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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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의 성적표

표면적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프리즈 서울에는 국내외 갤러리 110여곳이 참여했다. 행사장은 활동 기간 12년 이하의 아시아 갤러리들을 선보이는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와 고대부터 20세기까지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전시하는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들이 모인 메인 섹션으로 꾸려졌다.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등 세계 최정상 갤러리들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파블로 피카소, 조지 콘도, 에곤 실레 등 쉽게 볼 수 없던 거장들의 작품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아 위용을 실감케 했다.

그중에서도 프리즈 마스터스가 백미였다.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작품들이 쏟아졌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뉴욕의 아쿠아벨라 갤러리는 프리즈 사상 최고가의 작품을 들고 왔다.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 작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은 한화로 약 600억원이었다. 이외에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디에고 흉상’(1961), 앙리 마티스의 ‘녹색 숄을 걸친 누드’(1921~1922) 등을 전시해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유물을 가져온 갤러리도 있었다. 영국의 데이비드 아론 갤러리는 138~161년 로마의 대리석 조각과 기원전 600년경의 이집트 목조 석관을 선보였다. 작품 앞에 서 있던 모두가 “이것도 파는 거라고?”를 외치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이 개최되기 전 경기 침체로 인해 미술품 투자 열기가 주춤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지난해 키아프가 보여준 열기는 그저 거품에 불과하다는 평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미술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오히려 지난해보다 열기가 더 뜨겁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들의 반응을 뒷받침하듯 프리즈 서울은 개최 첫날부터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다. 하우저앤워스에서 내놓은 조지 콘도의 신작 ‘Red Portrait Composition’(2022)은 개막 1시간 만에 국내 한 사립미술관에 38억원에 팔렸다. 천소혜 하우저앤워스 디렉터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프리즈 서울을 위해 하우저앤워스의 지난 30년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인 작품부터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준비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애호가들 덕분에) 한국뿐만 아니라 더 넓은 지역의 컬렉션에 소장될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럽다”라고 밝혔다. 타바레스 스트라찬의 단독 전시로 프리즈 부스의 수준을 한층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갤러리 페로탕도 매출 기록을 세웠다. 이런 기세에 힘입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모두 첫날 완판을 기록했다.

국내 갤러리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해외 거장이 넘쳐나는 프리즈 서울에서 한국 미술의 위용을 자랑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 후기작인 ‘고요’ 연작 ‘Tranquility 5-IV-73 #310’(1973)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환기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주요 회고전에 수차례 소개됐을 뿐만 아니라 일기에도 등장한 적이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박서보 ‘묘법’, 하종현 ‘접합’ 등 단색화 거장의 작품과 양혜규, 문성식,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까지 대거 완판시켰다. 포커스 아시아에 참여한 휘슬 갤러리는 신진작가 배헤윰의 회화 15점을 전부 판매했다. 이처럼 역대급 성적을 거뒀지만 아쉬운 점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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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프 서울을 보려고 모인 미술 애호가들 . | 한국화랑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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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성이 강했던 프리즈

서울 프리즈는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이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프리즈 서울은 평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보다는 아시아 첫 진출인 만큼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무난한 작품을 가져왔다. 일종의 ‘한국 시장 맛보기’였던 셈이다. 다수의 해외 갤러리 관계자들은 작품 선정 이유에 대해 “서울에서 첫 개최인 만큼 (한국 애호가들이)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일단 올해를 지켜보고 내년을 기획하려고 한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프리즈 서울이 앞으로 위상에 걸맞은 페어 이상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걱정거리는 또 있다. 프리즈 서울에 압도적으로 몰린 인파는 대부분 해외 유명 작가의 걸작으로 향했다. 심지어 몇몇 갤러리에는 관람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을 찾은 해외 갤러리와 ‘큰손’ 컬렉터들이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세와 잠재력, 한국 컬렉터들의 구매력에 관심을 쏟아냈다지만 이런 분위기가 한국미술 그 자체의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자칫 안방만 내주고 자생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서다. 다양한 규모와 작가군을 보유한 특색 있는 화랑들이 한국 미술계의 저변을 든든히 떠받치는 모습이 아니라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덩치 큰 소수의 갤러리만 살아남아 작가와 작품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획일적인 양극화가 공고해지는 현상이 뚜렷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앤제이 갤러리 박원재 대표는 “우리는 아직 그들과 싸워 이길 정도로 강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세계무대에서 뛰지 않으면 영원히 그들과 견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세계적인 작가들과 함께 한국 컬렉터를 만나러 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자국에서도 만나 볼 수 있는 갤러리와 작가를 한국에서 보려고 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홍콩 바젤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더 많은 아시아 갤러리들을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프리즈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 갤러리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은 물론 아시아 미술계에 더 큰 의미가 있는 페어가 될 것이다. 한국까지 온 해외 미술계 인사들은 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껏 보여주지 못했던 우리의 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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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에 차린 갤러리 페로탕 부스 전경. | Andy H. Ju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페로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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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한국 미술계가 해외 갤러리와 예술 거장들을 따라 흉내만 낼 게 아니라 세계 시장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만의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실제로 토종 아트페어인 키아프는 개막 당일 프리즈 서울에 비해 한산한 모습이었다. 두 페어 간의 작품 격차, 안일함, 특색 부족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키아프에도 프리즈와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그럼에도 관람객을 확실히 붙잡지 못했다. 관람 대상이 VIP로 한정됐던 지난 9월 2일에는 관람객 쏠림 현상이 더 심했다. 이후 일반 관람이 시작되며 4일에는 관람객이 몰려 온라인 입장권 판매 중단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는 등 키아프 역시 북적였지만 양측의 매출 편차는 컸다. 키아프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는 올해 판매액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사전, 사후 판매로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내린 결정이다. 당초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지난해 실적인 650억원을 넘겨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보인다.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프리즈와의 체급 차를 뚜렷이 확인한 것도 사실이다. 규모로 프리즈와 경쟁할 수 없다면 키아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찾아 애호가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제시해야 한다. 프리즈라는 ‘메기’가 한국미술의 발전과 해외 진출을 얼마나 견인하고 촉진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프리즈와 키아프는 이번 행사를 포함, 추후 5년간 서울에서 공동 개최될 예정이다.

구민경 올댓아트 에디터 gym5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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