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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국뽕' or 숙원?…노벨상을 대하는 한국인의 두 얼굴[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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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올해 노벨상 시즌이 3일 오후(한국 시각)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개막한다. 한국 사회가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양해졌다. 예전엔 부러움 일색에 빨리 받도록 국가적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지만, '계륵'이고 '국뽕'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말자는 냉소적 태도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며 낙관하는 등 다채로운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30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선정)가 발표된다. 이어 4일엔 물리학상(스웨덴 왕립과학학술원), 5일 화학상(스웨덴 왕립과학학술원), 6일 문학상(스웨덴 아카데미), 7일 평화상(노르웨이 노벨위원회), 10일 경제학상(스웨덴 왕립과학학술원) 등 총 6개 부분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12월 10일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 나머지는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각각 개최된다. 상금은 각 상별로 약 115만 달러다.

이와 관련 국제학술정보기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지난달 22일 논문 인용 횟수 및 독창성, 다른 주요 수상 경력 등을 바탕으로 20명의 노벨상 과학 분야·경제학상 수상 예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일본인 3명과 중국계 미국인 등 아시아인 4명이 포함됐지만 아쉽게 한국인의 이름은 없었다.

이웃 나라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 실적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은 지난해에도 일본계 미국인인 슈쿠로 마나베가 기후 변화 예측 모델 개발을 공로로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총 29명으로 25명이 과학 분야상을 받았고 경제학상을 제외한 전 분야 수상자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을 제외하면 0명이다.

노벨상과 관련한 한일간 격차는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렵다. 19세기부터 기초과학을 연구해 온 일본은 20세기 초반부터 의학, 화학, 물리학 등을 집중 연구해 토대를 닦았다. 일본이 만주에 731부대를 운영하면서 한국 독립군과 중국인 포로들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자행해 의학 지식을 쌓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공공 민간 할 것 없이 연구자들에게 오랜 시간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한국은 기초과학 연구의 역사가 일천하다. 그나마 응용 분야에만 집중하다가 2011년에야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했을 정도로 출발이 늦었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기초-원천 과학 연구를 시작한 지 30년도 채 안 됐다. 한국은 특히 빡빡하고 권위적인 연구 문화나 관 주도의 학술 지원 시스템도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연구가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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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에 대한 수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자료제공=한국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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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버블 붕괴로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분위기도 예전같지 않다. 엔저 고착화로 임금이 낮아지고 비정규직 증가로 고용이 불안해진 일본 연구자들이 해외로 탈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건물주'의 호사를 누리다가 '빚더미에 앉은 깡통 부자' 신세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0년대 후반부터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 투자하면서 '축적의 시간'을 급속도로 늘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이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예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맥밀런 202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한국의 과학기술 투자가 인상적"이라며 "15년 내에는 한 두명의 한국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 같다"고 예측했다. 수학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에서도 지난 4월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상한 바 있다.

노벨상에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노벨상 수상은 대통령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기초과학 연구 강화'를 통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공약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스웨덴에 일부러 북유럽과학기술협력센터를 설치해 운영하는 등 행정력과 재정을 쏟아 붓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같은 '생색내기식' 행정력 동원보다는 젊은 과학자들의 자유롭고 안정적인 연구 장려를 위한 기초과학 투자에 힘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기초과학 연구 투자 증가세가 급감했다. 내년 국가 R&D 예산은 올해 24조2363억원보다 1.7%(약 5000억원) 소폭 증가하는데 그쳐 물가인상률을 감안할 때 사실상 삭감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근 5년간 이어 온 증가세가 꺾였다는 것이다. 정부의 R&D 예산은 2019년 4.4%, 2020년 18.0%, 2021년 13.1%. 올해 8.8% 등 높은 증가율을 유지해 왔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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