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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재용-손정의 전격 만남…ARM 전략적 제휴 시나리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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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중립지대 ARM 향방 논의할 예정

인수 논의 나오겠지만…반독점 논란이 벽

기술 제휴 통해 ARM 지배력 강화도 거론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1일 방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의 팹리스’로 불리는 ARM과 전략적 협력 방안을 어떤 식으로 구상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지난 1일 오후 3시께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방한해 일주일간 한국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한 목적에 대해 “비즈니스”라고 밝힌 것을 고려하면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ARM의 매각 또는 전략적 제휴와 관련해 삼성전자 또는 SK하이닉스와 협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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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은 무슨 회사기에…


ARM은 영국에 본사를 둔 팹리스 기업으로, 반도체 기본 설계도인 ‘아키텍처’(프로세서 작동법)를 만들어 삼성전자를 비롯해 애플, 퀄컴, 화웨이, 미디어텍 등 세계 1000여개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ARM의 저전력 아키텍처를 활용해 팹리스들이 자체적인 칩을 만든다. 현재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중 90% 이상이 ARM 설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간 ARM은 모든 반도체 제조업체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반도체의 중립지대라고 불린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 75%를 보유한 대주주다. 지난 2016년 ARM을 320억달러에 매입해 4년 만에 400억달러가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그래픽 반도체칩 제조업체인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나섰지만 독과점 논란에 무산됐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경쟁업체들의 라이선스 로열티가 올라가거나 자칫 라이선스를 받지 못하는 ‘봉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독점 논란에 매각이 어려워지자 손 회장은 ARM을 매각하기보다는 기업 공개(IPO)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다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 매입 등 의사를 비추면서 다시 매각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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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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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인수하면 삼성에 어떤 장점?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하면 ARM이 보유한 저전력 아키텍처를 활용해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와 옴디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스마트폰 AP에서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6.6%에 불과하다. 1위 퀄컴의 점유율은 37.7%이고 미디어텍은 26.3%, 애플은 26.0%다. 이미지센서의 경우 1위는 소니(43.5%), 2위는 삼성전자(18.1%),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의 경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5.7%, 노바텍 24.6%, LX세미콘 10.9% 등이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명실공히 1위 기업이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 상황이다.

ARM의 저전력 아키텍처 기술 및 핵심인력을 활용한다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AP의 엑시노스 개발에 보다 박차를 가할 수 있다. 현재는 로열티를 내고 아키텍처를 활용하고 있지만, ARM을 자회사로 끌어온다면 ARM의 핵심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저전력 아키텍처 기술은 스마트폰AP, 태블릿AP를 넘어 클라우드서버, 인공지능(AI) 프로세서 등으로 확장되고 있고 있다. ARM을 인수한 뒤 이른바 ‘수직계열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다.

엔비디아와 달리 삼성 인수 가능성은?

문제는 독과점 논란이다. 앞서 엔비디아는 야심차게 ARM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반독점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통상 수직계열화를 이루는 ‘수직 결합’에 대해서는 경쟁당국이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득을 더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대체로 허용했다.

하지만 반도체 중립지대로 불리는 ARM의 특수성이 발목을 잡았다. ARM이 모든 반도체 회사에 저전력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퀄컴 등 팹리스 업체들에 라이선스(특허)를 주지 않거나 사용료를 비싸게 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경쟁을 심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FTC는 엔비디아가 만드는 프로세서 중 자동차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데이터 센터에 쓰이는 데이터처리장치(DPU), 클라우드 컴퓨팅에 쓰이는 중앙처리장치 등 3개 상품시장에서 경쟁이 크게 저하될 것으로 봤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엔비디아에 비해 시스템반도체 시장 지배력이 약하기 때문에 경쟁이 크게 저해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이 50%를 넘는 상품은 단 하나도 없다. 일반적으로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을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고, 경쟁당국에서는 M&A 등이 이뤄질 때보다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감시한다. 삼성전자가 ARM 기술을 독점적으로 활용해 기술력을 키우면 오히려 다른 경쟁업체와의 경쟁이 보다 활성화될 가능성도 있다. 경쟁법 한 학자는 “시장 지배력만 따지고 보면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하더라도 엔비디아 인수방안 등에 비하면 독과점 논란은 적은 게 사실이다”고 했다.

하지만 ARM이 대부분의 팹리스에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한 걸림돌이다. 인텔, 퀄컴, 엔비디아를 넘어 테슬라, 구글까지도 차세대 저전력 프로세서 제작에 달라붙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할 경우 경쟁자들의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칫 삼성전자가 경쟁자에게 ARM 아키텍처 라이센서 비용을 올리거나 공급을 거절, 또는 삼성전자에만 유리하게 라이센서를 활용할 가능성을 문제제기할 공산이 크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RM의 저전력 아키텍처는 모든 팹리스들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기업이 ARM 기술을 독점적으로 활용할 경우 경쟁자들의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면서 “ARM의 매각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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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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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소시엄 통한 인수는?


이런 이유로 ARM 인수는 컨소시엄을 통한 공동 인수 방식이 거론된다.

이를테면 스마트폰AP에서 1,2,3위 업체인 미디어텍, 애플, 퀄컴 등과 공동인수하면서 독과점 논란을 피하는 길이 있다. 하지만 여러 기업들이 지분을 모두 공유할 경우 삼성전자가 자사에 유리하게 ARM의 라이선스를 이용할 수가 없어 M&A 효과가 떨어진다. 지금처럼 ARM의 아키텍처 라이선스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셈이다.

지난 5월 펫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부회장과 회동으로 인텔과 삼성의 컨소시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 경우 PC를 중심으로 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아키텍처와 모바일기기 중심의 ARM 아키텍처 간 수평결합이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경쟁법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면 팹리스 분야에서 지배력이 적은 팹리스업체들을 끼워 넣어 저전력반도체 제작의 진입 장벽을 대거 낮추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거론한다. 컬컴, 엔비디아 등 거대 팹리스들의 반발은 있겠지만, 저전력 반도체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춰서 오히려 경쟁을 활성화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싸게 반도체 칩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될 수 있다는 이유다. FTC 등 경쟁당국은 ‘경쟁을 통한 소비자 후생’을 최고 목표로 두고 있다.

매각보다는 전략적 기술 제휴만?

하지만 ARM의 가치가 수백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외 다른 후발주자들이 그만큼 인수자금이 충분한지도 관건이다. 컨소시엄에서 삼성전자의 지분율이 지나치게 높다면 컨소시엄이 아닌 단일 인수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이 만날 경우 인수를 논의하기보다는 전략적 기술 제휴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ARM이 기술적 제휴를 보다 강화하고 ARM은 라이선스 가치를 키워 기업공개(IPO)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저전력반도체 기술은 현재로서는 ARM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이미 애플 등은 ARM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코어 칩 설계기반을 ARM에서 RISC-V(리스크 파이브)로 전환시키고 있다”면서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ARM 아키텍처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게 보다 급한 만큼 삼성전자와 기술 제휴 강화 쪽에 보다 집중하면서 ARM의 가치를 키워 IPO로 가는 방향을 짜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ARM 전략적 제휴와 관련해 급한 쪽은 삼성전자가 아닌 소프트뱅크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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