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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아빠' 김영오씨가 70년 전 학살터 찾아다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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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일 영화 <태안> 개봉, 프레젠터 참여한 김영오씨 “부끄러운 역사, 청소년들이 기억해야“

오는 6일 다큐멘터리 영화 <태안>(감독 구자환·제작 레드무비) 개봉을 앞두고 '유민아빠' 김영오(54)씨는 자꾸 입이 바짝 마른다. 영화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몰라 발도 동동 구른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외면했던 2014년, 참사의 진실 규명을 외쳤던 때의 심정과 비슷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태안>의 주제는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그중에서도 최소 1185명이 사망했다고 확인된 태안 지역을 비춘다. 인민군과 국군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90% 이상이 '빨갱이 혹은 빨갱이에 부역한 자'라거나 부역한 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군경에게 학살됐다. 나머지는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직 100년이 지나지 않은 현대사이지만 사회적 관심은 사그라지고, 역사를 기억하는 세대도 바뀐다. 유족과 목격자 대부분이 고령으로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고 당시 어린이·청소년이었던 이들도 현재 80대, 90대 노인이 됐다. 태안은 최소 170곳으로 추정되는 학살지 중 한 곳일 뿐이다. 전국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1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김영오씨는 2019년 6월부터 1년 동안 <태안>의 프레젠터로 참여하며 이들 생존자 30여 명을 만났고 태안의 학살 현장 곳곳을 찾아갔다. 김씨는 "87세 노인이 '처음으로 내 얘길 해본다. 들어줘서 고맙다'며 엉엉 우셨다. 이렇듯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더라"며 "민간인 학살부터 세월호까지, 무고한 시민들의 참사는 모두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민간인 학살, 세월호와 같은 비극 아닌가"
오마이뉴스

▲ 영화 <태안> 스틸 컷. ⓒ 제작사 레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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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성이 부족한 탓인지 <태안> 제작진들은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도 겪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너무 늦었지만 그럼에도 국가의 제대로 된 사과와 총체적인 진실 확인, 추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의 일문일답.

-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2017년 3월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탄핵됐다. 직후엔 강연, 간담회 등에 참가해 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필요성을 알렸다.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이 역할을 충분히 맡는 걸 보면서, 전북 무안으로 내려갔다. 귀농을 해 이런저런 농작물을 키우며 생활했다. 첫해엔 200만 원 수익, 다음 해엔 600만 원 수익...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귀농 생활을 접고 올해 봄 제주로 내려왔다. 에어컨 설치·이전 기술을 배워 일을 하고 있다. 영화 <태안>은 제주로 오기 전에 1년 정도 촬영했다."

- 어떻게 <태안> 프레젠터로 참여했나?

"탄핵 후 간담회를 하러 지역 곳곳을 돌아다닐 때 동생이 영화 <해원>을 보라고 권해서 본 적이 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전쟁 때까지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고, <태안> 구자환 감독의 전작이다. 이걸 보고서 '어떻게 이런 역사를 처음 알았지?' 하고 스스로 놀랐다. 그 전엔 관심도, 인식도 없었다. 초중고 다니면서는 '공산당이 싫어요' 류의 이념 교육만 받았으니까...

나같은 사람이 전국에 얼마나 많은가.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애초부터 진실이 가려졌고 제대로 규명도 되지 않은 비극 아닌가. 이런 생각에 광주에서 공동체 상영을 준비해 구자환 감독을 초대했었고, 이를 계기로 연을 맺게 됐다. 한두 달 후 '함께 영화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듣고 바로 그러자고 했다."

(※ 프리젠터 : 어떤 주제의 내용을 발표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다큐 프로그램 진행자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한다. 자신의 시선에서 정보를 소개하며 다큐와 시청자를 잇는 가교 역할이다.)
오마이뉴스

▲ 9월25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영오씨.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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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은 어떤 내용인가?

"태안 민간인 학살 피해자·목격자 32명의 증언이 담겼다. 대부분 당시 5살, 10살, 15살 아동·청소년이었던 이들이다. 피범벅이었던 학살 현장, 주민들이 무자비하게 감금됐던 옛 창고·경찰서 터도 대부분 찾아갔다. 얼마나 아무 이유없이, 무고하게 1185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는지가 생생히 드러난다.

1기 진실화해위는 보도연맹으로 115명, 인민군에 부역했다며 906명, 인민군에 의한 학살 136명, 기타 학살 28명이 태안에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소위 '좌익' 희생자 1049명, '우익' 희생자 136명이다. 영화엔 '우익' 희생자 유족이 단 1명 나온다. 태안은 인민국·국군 학살이 함께 일어난 지역으로, 양쪽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했던 게 우리의 애초 취지였다. 그러나 '우익' 희생자 유족 대부분이 인터뷰를 거부해 그러지 못했다."

"세월호 특별법 목숨 건 단식에도 '빨갱이'라 했었다"

- <태안>을 적극 알리려고 나선 이유는?

"촬영 중 어머니께 민간인 학살을 얘기했더니 대뜸 '우리 마을도 빨갱이들이 다 죽였어'라 하더라. 그럼 그 빨갱이가 어디 소속인지 알고 있냐 물으니 치안대라 하더라. 치안대는 이승만 정부의 군대와 경찰이 완장을 채워준 주민들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내가 광화문에서 단식할 때도 유사한 광경을 봤다. 나보고 '빨갱이'란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 역사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이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진 못하다는 점, 역사 교육 내용도 불충분한 점,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경찰이) 몽둥이로 머리를 때려서 머리가 터져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눈이 성한 사람도 없었어.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어."

"어떤 아주머니가 칼에 찔려서 배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끌어 안고 뛰었어. '살려주세요' 하면서. 근데 그걸 본 치안대원 2명이 아주머니를 사살했어." (영화 중 이윤달씨 증언)

"보도연맹과 관려됐다고 산 사람을 엮어서 장작 위에 놓고 석유를 뿌려서 불에 태웠어." (국응순씨 증언)

- 세월호 유족이 왜 과거 민간인 학살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국가폭력 사건은 무수히 일어났다. 그때마다 국가가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고 원칙을 보여줬다면, 진실을 낱낱이 확인해 제대로 책임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원칙을 확인하면서 역사가 흘렀다면 과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겠나? 사고 이후의 모습이 그러했겠나?

나는 텔레비전을 버렸다. 요새 정치 뉴스를 보면 속된 말로 미칠 것 같아서다. 참사 유족이 대거 길거리에 앉아 투쟁하고 46일간 굶어가며 애걸복걸해도 (특조위에) 수사권을 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묻힌 진실, 많을 거라 생각한다.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국가의 사죄 없이 지내온 역사 속에서, 과거의 참사와 현재의 참사는 이어져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미래 세대에게 할 말이 있다. 우리 세대는 역사를 감추고 계속 왜곡하는 세대였지만, 우리가 떠나 주인이 될 청소년 여러분은 달라야 한다고. (참사 피해자의) 억울함은 어떤 약으로도 안 풀린다. 그럼에도 진실이 사회에 널리 확인된다면, 그걸 국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눈물의 양은 줄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이런 사실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 영화 <태안>에 참여했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많이 보고 역사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 영화 <태안> 포스터 ⓒ 제작사 레드무비



손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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