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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사과하면 민주당은 받을 용의 있나 [노원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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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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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비속어 파문’을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로 넘어가자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국정원장 재직 때 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지원씨는 1일 페이스북에 “이제 끝내야 한다. 대통령께서 ‘쏘리’하면 끝”이라고 썼다. 최근 윤 대통령을 대놓고 비판하기 시작한 유승민씨는 지난달 29일 “지금이라도 대통령실이나 우리 당(국민의힘)이나 국민들을 정말 너무 개돼지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은 당장 중단하고,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갈 문제”라고 말했다.

궁금하다. 박씨와 유씨는 대통령이 사과하면 과연 ‘깨끗하게 끝낼’ 사람들인가.혹은 대통령 콧대가 크게 꺾어진 것을 전기 삼아 정치적 도약을 꾀할 사람들인가.

윤 대통령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과 필요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 멘토를 자처해온 신평 변호사 같은 이가 그렇다. 신 변호사는 지난달 29일에는 “전후 경위도, 보도의 맥락도 묻지 말고 무조건 사과나 유감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가 이달 1일에는 약간 수위를 낮춰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면 물론 사과할 필요가 있을 리 없다”고 했다. MBC 보도의 부정확성에 대한 각성이 뒤늦게 일었기 때문으로 짐작되는데 그럼에도 신 변호사는 “이 싸움은 윤 대통령 측에서 여러 면으로 보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덮고 넘어가자’는 기조는 이어갔다.

그 외에 상당수 기성 언론과 윤 대통령에 비판적인, 혹은 비판적 지지 쪽에 서 있는 보수 유튜버 중에서도 대통령 사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궁금하다. 대통령이 ‘이 XX’라는 비속어를 썼다 치고, 그래서 사과해야 할 필요가 있다치자. 그런데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대통령실은 대통령 발언속 국회가 대한민국 국회라고 해명했다. 국회 중에서도 야당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에 사과하는게 맞는다. 더불어민주당에 묻는다. ‘대통령이 귀당과 소속 의원을 ‘이 XX’라 부른데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해온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가’.

그럴 용의가 없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은 비속어가 가리킨 대상은 미국 의회이며 따라서 이 사건의 본질은 외교 참사라는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내가 욕한 것은 당신들이니 사과 받으시오’하면 받겠느냐 이 얘기다.

민주당이 사과를 받아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비하했다는 MBC의 보도는 날조된 오보로 확정된다. 한미관계와 대한민국 국익을 위태롭게 만든 아주 악성의 오보 말이다. 그렇다면 그 MBC에 대해 무슨 조처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사고를 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사과 대상을 분명히 하지 않고 포괄적인 유감 표명을 한다고 하면 그건 더 큰 화근이 될지 모른다. 그 유감 표명은 ‘외교 참사’의 기정사실화에 악용될 수 있다. 결국 기록은 남게 되고 국가간 기억은 기록을 통해서만 유의미하다. 미국 의회와 정부가 지금은 무심해 보여도 ‘그때 당신이 우리 욕 했지 않나. 그래서 사과도 했지 않나’고 나오면 어떻게 할 건가. 국내정치를 위해 한미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하지하책이 될 것이다.

‘사실관계는 틀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신중하지 못한 언어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 송구하다.’ 이런 식의 사과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있다. 미국 의회를 비하했다는 주장은 분명히 부인하되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국민을 상대로 사과하라는 것이다. 한국 정치를 걱정하는, 타협을 중시하는 보수층 인사들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싸우지 말라고 하니 듣기는 좋은데 문제가 있다.

첫째 근자의 한국 정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대통령 사과가 문제를 일단락지었던 역사적 사례는 없다. 대통령 사과는 제2, 제3의 사과를 부르고 그때마다 강도는 올라간다. 그 결과가 탄핵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장기는 고사하고 지금은 단기 해법도 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자 이 문제는 이쯤에서 덮고 갑시다’ 할 야당이 한국에 있나. 그런 양식이 통하던 여.야 관계가 어느 시절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언뜻 감으로는 YS, DJ가 야당 하던 시절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대통령 사과가 통하려면 중도층이 다수인 정치 지형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 사과한다 했을 때 그 국민은 ‘사과에 마음이 움직일 여지가 있는’ 유동적 층위로 가정된다. 최근 대한민국에는 이런 유동층이 거의 실종 직전이다. 이런 지형에선 대통령 사과가 문제의 일단락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 될 공산이 더 크다. 제1야당을 비롯한 반대 진영에게 대통령 사과는 본격적으로 대통령을 쥐어박기 시작하라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YS나 DJ같은 정치 거장들도 대통령 임기 후반에 그렇게 쥐어박혔다.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도 넘는 공격을 자제시킬 중도층이 없고, 윤 대통령은 정치 거장도 아니고, 지금 임기 1년차다. 그렇게 쥐어박히기 시작하면 남은 임기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 5년 동안 사과를 몇 번 할 작정인가.

둘째 사과의 대상이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 되면 ‘이게 이렇게 사과할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말한 대로 대통령실이 ‘이 XX’의 대상으로 지목한 민주당에 사과하면 그건 말이 된다. 안 보이는 데선 무슨 말을 할망정 일단 탄로 나면 피차 민망해진다. 그러면 사과하고 가는 것이 편하다. 사인들끼리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 사과를 받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국민에 사과하고 상황을 일단락짓는다? 무엇을 사과한단 말인가. ‘켜진 마이크’를 의식하지 못한 부주의함에 대해?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 선택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켜진 마이크에 대고 욕설한 여러 사례가 있었지만 당사자 이외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기자를 욕했으면 그 기자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도덕적이고 예의가 발라야 해서 ‘이 XX’가 들통나면 대국민 사과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가 피곤할 때가 많은데 그런 사과까지 들어줘야 하나. 그건 정말 한가한 나라 국민이 할 일 같은데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가을이라 그런가. 사과로 모든걸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 뜻은 알겠지만 세상도,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 대충 미안하다 말하면 좋게 받아들이고 싹 잊어버리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물어보자. 그런 시대가 언제 있었나.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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