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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동원령 내렸는데 전쟁 이겼다고? '러빠'들의 기가막힌 공통점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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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외교안보팀장의 픽 : 러시아 옹호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20일이 지났다. 현재 러시아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는 ‘부분’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동원령을 내렸고, 요즘 들어 핵위협을 부쩍 자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현실을 달리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러시아 군사ㆍ무기에 흠뻑 빠진 ‘러빠’들은 여전히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전황 분석을 내놓는다는 얘긴 들어본 적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동호인이나 아마추어급을 넘어선 꽤 유명한 연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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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름반도 세바스토폴에서 동원령에 소집된 러시아 예비군들. 이들 중 일부는 충분한 훈련과 변변한 무기 없이 바로 전선에 끌려간다는 보도가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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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A씨와 B씨라고 부르겠다. 최근 이들이 러빠와 비슷한 견해를 얘기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배경과 연구 분야가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미국ㆍ유럽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다. CNNㆍ뉴욕타임스ㆍ워싱턴포스트 등은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실과 다른 기사로 전 세계를 속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전세는 아직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A씨는 “우크라이나가 하르키우에서 반격에 성공한 게 아니라 러시아가 전선을 축소하기 위해 일부러 철수한 것”이라면서도 “그 과정이 일부 매끄럽지 못한 건 인정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는 전쟁을 질질 끌면서 상대의 역량을 말리는 소모전(Attrition Warfare)의 도사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번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이란 전망도 덧붙인다.

A씨와 B씨는 전쟁의 책임을 우크라이나로 돌린다. B씨는 사석에서 “우크라이나의 역적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라며 “전쟁 전 러시아와 협상에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해 그 피해를 애꿎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대에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인의 피로 미국과 나토의 이익을 지켜주고 있다”고 강조한 적 있다.

과연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A씨와 B씨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이 자리에선 A씨와 B씨의 주장에 대해 반박만 하겠다.

물론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걸고,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 범죄를 일삼는 러시아를 증오하는 서방 미디어가 편향적인 논조를 가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언론사 특파원이 전쟁터에서 취재한다고 하더라도 전투 현장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도 국민과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선전전을 편다.

이 모든 걸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서방 미디어의 기사가 러시아의 공식 발표보다 신뢰성이 더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180개국 중 언론자유지수가 155위인 러시아의 미디어는 일단 논외로 하자.

러시아는 승리하려면 여론 조작도 해야 한다는 ‘하이브리드 전쟁’ 이론을 만든 나라다. 그래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일례로 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이 지난 4월 우크라이나의 대함 미사일 공격에 침몰했다. 러시아는 아직 단순 화재로 탄약고 일부 폭발한 모스크바함을 항구로 예인하다 폭풍우를 만나 끝내 가라앉았다는 공식 발표를 굽히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밀리고 있다는 사실오릭스와 같은 객관적인 공개정보(OSINT)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친러 밀리터리 블로거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오릭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격파ㆍ노획ㆍ유기 무기와 장비의 숫자를 하나하나씩 세고 있다. 이미 시리아 내전과 아제르바이잔ㆍ아르메니아 무력 분쟁에서 정확도와 객관성을 인정받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책임론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절대로 가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러시아에 일부 영토까지 떼주면서까지 협상하더라도 전쟁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야욕은 크름반도ㆍ도네츠크ㆍ루한스크에서 만족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역사에 속해 있는 하나의 지역”이라고 주장한 그다.

러시아의 속내는 우크라이나를 모두 삼키려는 것이다. 역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38년 영국ㆍ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팔을 비틀어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에 주데텐란드를 넘기는 뮌헨협정을 맺었다. 영국ㆍ프랑스는 평화를 지켰다고 기뻐했지만. 히틀러는 곧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1년 후 폴란드에 쳐들어가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협상에서 러시아에 양보하더라도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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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에서 셋째)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헤르손, 자포리자, 도네츠크, 루한스크의 수장들과 손을 모으고 있다. 이날 러시아는 국민투표 결과 이들 4개 지역을 러시아로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같은 러시아 지지 국가 중 어느 누구도 아직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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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우크라이나에서 이뤄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전적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거의 확신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8%였다. 전체의 98%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믿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이런 나라일진대 젤렌스키 대통령이 탄핵을 부를 수 있는 결단을 내린다고 믿긴 힘들다.

명분론에 눈이 멀어 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를 지금 예단한다면 지나치게 섣부르다. 러시아는 전쟁에 지지 않았고, 푸틴 대통령도 실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러나 전쟁이 러시아의 패배와 푸틴 대통령의 실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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