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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일본 프로레슬링 ‘역도산 3대 제자’ 모두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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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이노키 난치병 투병 끝 별세

1960년대 재일조선인 역도산에게 발탁

‘박치기왕’ 김일·‘권투왕’ 알리와 대결

참의원으로 1995년부터 33차례 방북


한겨레

10월1일 별세한 안토니오 이노키가 2013년 참의원으로 정계 복귀해 북한을 다녀온 뒤 인터뷰를 하던 모습이다. 연합뉴스


일본 프로 레슬링 대부이자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가 1일 오전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79.

1943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이노키는 중학교 때 브라질로 이주했다. 육상선수로 시작해 17살 때인 1960년 원정을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역도산(본명 김신락)에게 발탁되어 일본 프로 레슬링에 데뷔했다.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재일동포 역도산의 3대 제자로, 김일·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일본 레슬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노키는 1960년 프로 레슬링 데뷔전에서 한국 출신 ‘박치기왕’ 김일에게 패했다. 이후 한·일을 오가며 여러 차례 김일과 대결한 그는 '코브라 트위스트'란 기술로 명승부를 펼쳐 한국인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197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설립한 그는 1976년 도쿄에서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와 이종 대결을 벌이는 등 일본인들 사이에 '불타는 투혼'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었다.

사업가 변신한 그는 1989년 스포츠평화당을 만들어 같은 해 참의원(상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했다. 1990년 걸프전 때에는 이라크에 인질로 잡혀 있던 일본인들의 석방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1995년 선거에서 낙선한 뒤 1998년 레슬링과 정계에서 모두 은퇴했다. 이후 2013년 정계에 복귀해 참의원에서 재선됐고 2019년 고령을 이유로 은퇴했다.

한겨레

왼쪽부터 김일(1929~2006), 자이언트 바바(1938~1999), 안토니오 이노키(1943~2022). 재일조선인 역도산의 3대 제자로 1960~70년대 일본 프로 레슬링 전성기를 이끈 거인들로 이제 모두 전설이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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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70년대 김일(오른쪽)과 안토니오 이노키(왼쪽)가 ‘박치기’와 ‘코브라 트위스트’로 맞수 기술을 펼치던 모습이다. 연합뉴스


특히 이노키는 일제강점기 북한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인 스승 역도산이 1963년 12월 야쿠자의 칼에 찔려 39살로 숨지면서 남긴 유지를 따라 북-일 관계 개선에 앞장섰다. 1994년 레슬링광으로 알려진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았으나 김 주석의 돌연한 사망으로 베이징에서 돌아와야 했던 그는 이듬해 첫 방북을 했다. 1995년 4월 북한에서 처음으로 프로 레슬링 행사를 연 그는 38만 명이 관람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2013년 참의원 의원으로 스포츠 교류 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해 김영일 노동당 비서와 회담하는 등 2018년까지 33차례 방북했다.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북한과 합작으로 ‘력도산 술’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2019년에도 추진했으나 참의원의 허가를 받지 못해 중단했다.

1995년 일본에서 평생의 라이벌 김일의 은퇴식을 열어줬던 그는 2000년 12월에는 스승 역도산 기념사업과 투병 중이던 김 선수 문병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그때 성남 나눔의 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는 2020년 7월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난치병인 ‘심장 아밀로이드증’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재활 의지를 밝혔으나 끝내 전설이 되고 말았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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