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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현장] 지팡이 선물은 못해도 ‘부디 혼자 가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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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노인의 날, 처음 열린 무연고 사망자·자살 노인 추모제

“노인 자살은 사회적 타살”…무연고 사망 등 실태 조사 요구


한겨레

1일 유엔 ‘세계 노인의 날’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앞에서 열린 제1회 무연고 사망 및 자살 노인을 위한 추모제. 무연고 사망 및 자살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의미하는 붓글씨 퍼포먼스로 ‘노인자살과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이다’는 붓글씨를 썼다. 사진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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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살아봐도 이 세상은 가망이 없더군요. 살 곳이 못 되더군요. 마지막 항의와 절규로 홀연히 벗어놓고 떠난 내 육신을 고독사라고 부르지 마세요. 행려사라고 부르지 마세요. 자살자라고 부르지 마세요. 내 팔뚝에 금을 그은 건 내가 아닌 이 국가이니….

- 시 ‘노인들을 위한 국가는 없다’ 시인 송경동

중·장년 무연고 사망자 및 스스로 생을 등진 노인들을 위한 추모제에서 송경동 시인이 추모시를 읊었다.

1일 유엔(UN)이 정한 ‘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앞에서 ‘제1회 무연고 사망 및 자살 노인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노후희망유니온 주최로 이날 처음 열린 추모제에는 한국노년단체총연합회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등 노인단체와 더불어 청년유니온과 한국가사노동자협회, 기본소득당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오늘 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떡잔치와 자랑스런 노인에게 지팡이를 선사하며 자축하는 행사가 여러 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대다수 기층 노인들은 오늘도 아무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 이런 죽음을 방치한 채 순간의 반짝 시혜와 봉사의 잔치만으론 부족하다”며 정부를 향해 요구사항을 외쳤다. 정부가 매년 무연고 사망 및 자살 노인의 실태를 조사해 발표하고, 3년 안에 무연고 사망자 등의 숫자를 반으로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 등이다.

추모제에서는 외롭고 힙들게 살다가 숨진 노인을 위한 살풀이와 넋전춤 공연과 함께 추모시를 전하는 행사 등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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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유엔 ‘세계 노인의 날’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앞에서 열린 제1회 무연고 사망 및 자살 노인을 위한 추모제. 참여자들이 홀로 삶을 등진 노인들을 위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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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제에서 노조희망유니온 김국진 위원장은 “우리 노인세대는 6·25 전쟁의 폐허 위에서 맨손으로 산업화를 이뤘고,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한 역사적 세대인데 무연고 사망노인과 자살 노인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이같은) 노인 자살은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인데도 정부는 이런 노인의 죽음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노후희망유니온이 나서서 작지만 뜻깊은 추모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청년세대로서 발언에 나선 청년유니온 김설 대표도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에서 80대 노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나왔고, 지난달 8월엔 불과 200m 떨어지지 않은 같은 동네에서 90대 노인이 무연고 사망했다. 과연 지금의 청년들은 노후에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는 노인 공공일자리 6만개를 없애고 쪽방과 반지하에 사는 노인에게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 공급도 약 5조원이나 깎아버리겠다고 한다”며 “노인을 위한 기본소득 지급과 주거복지 향상, 질 좋은 노인일자리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의 높은 노인 자살 비율 문제는 오랜 기간 지적돼 왔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65살 이상 노인 자살비율은 42.2명으로, 국내 전체 자살자 대비 노년층 비율은 27%(3619명)에 달한다. 60살 이상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7년 1132명에서 지난해 2359명으로 약 두 배 늘었다.

현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노인복지를 ‘현대판 고려장’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전국사회서비스일반노동조합은 “대한민국 노인복지는 요양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인해 노인이 행복할 수 없는 ‘현대판 고려장’으로 전락했다”며 “2008년부터 15년간 사실상 동결된 노인장기요양기관의 저임금구조가 평균 근속 1.5년이라는 높은 이직률, 종사자 구인난, 근무인력의 고령화를 낳았고 턱없이 부족한 인력배치기준이 서비스질을 하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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