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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제자’ 일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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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레슬링계 대부... 무하마드 알리와도 경기
참의원 의원으로 정치 활동도... 30여 차례 방북
한국일보

지난 2018년 9월 7일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 의원이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을 맞아 북한에 방문하기 위해 7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을 통해 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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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프로레슬러 역도산(본명 김신락)의 제자로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를 이끈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猪木寬至)가 1일 오전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1943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이노키는 어릴 적 부친 사망 후 가세가 기울어 13세 때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육상 경기 선수로 현지 대회에 출전해 포환던지기에서 우승하기도 한 그를 1960년 브라질에서 경기를 하던 역도산이 스카우트한다. 같은 해 9월 30일, 17세의 나이에 박치기로 유명한 김일과 데뷔전을 치렀지만 패배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김일과는 여러 차례 명승부를 펼쳤다.

'코브라 트위스트'란 기술로 유명했던 그는 역도산의 제자인 자이언트 바바, 김일과 함께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프로레슬러뿐 아니라 "언제, 누구로부터의 도전도 받는다"고 자처한 그는 많은 일본인에게 '불타는 투혼'의 상징으로 각인돼 있다. 197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출범시켜 외국인 스타 선수와의 경기를 다수 기획했고, 세계 각국의 권투, 가라테 등 다른 격투기 선수들과 잇따라 경기를 가졌다. 특히 1975년 6월 26일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프로복싱 통일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은 전세계에 중계되며 화제가 됐다. 결과는 15라운드 후 무승부.

1989년에는 스포츠평화당을 만들어 정계에 진출,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1990년 걸프전 당시에는 이라크에 인질로 잡혀 있던 일본인들을 구출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1994년 선거에서 낙선한 후 다시 링으로 돌아와 경기를 가졌다. 1998년 도쿄 돔에서 은퇴 경기를 가진 후 링과 정계에서 모두 은퇴했으나, 2013년 일본유신회에 입당하며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같은 해 참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해 무려 35만표를 획득하며 당선됐다.

함경남도 출신인 스승 역도산의 영향을 받은 그는 1995년 북한에서 처음으로 프로레슬링 공연을 했으며 이후에도 의원 신분으로 여러 차례 방북하는 등 북한과도 인연이 깊다. 2013년 11월에는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로 방북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가운데 방북, 30일 간의 국회 등원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총 30번이 넘는 방북을 거듭하며 북한 간부들과 인맥을 쌓아 온 그는 2019년 분게이슌주(文藝春秋)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자신의 독자적 대북 외교를 무시하고 의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답답해 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도 아베 신조 당시 내각의 경직된 대북 기조 때문에 진전이 안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0년 12월에는 스승 역도산 기념사업 및 투병 중이던 김일 선수 문병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나눔의 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기도 했다.

2020년 7월 아밀로이드 물질이 심장 근육세포 주위에 쌓여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난치병인 ‘심장 아밀로이드증’ 투병 사실을 밝혔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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