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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자"는 장애인 교장, 그 말에 시험 때려치운 비장애인 교사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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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강연... 야학교사로 장애운동 시작, 사회적 아픔과 연대해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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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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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선 자리는 세상에서 제일 많이 비어 있는 자리다. 첫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세 번째, 네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한데 두 번째 자리는 그렇지 않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슬퍼했다거나 분노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뻘게진 눈알을 본다. 무엇보다 두 번째 사람이 선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다. (...)"

철학자 고병권은 그를 '두 번째 사람'에 비유했다. 시설장애인과 세월호 참사 유족, 화상 경험자,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생존자들... 슬픔의 첫 번째 자리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을 알아가며 함께 앓아가는 사람, 함께 비를 견디는 사람 말이다.

이제는 인간을 넘어 비인간 동물의 옆에 서 곁을 내어주고 있는, 자신의 시야를 넓혀 세 번째·네 번째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씨가 옥천을 찾았다.

'골목길 인문학' 네 번째 순서로 홍은전씨를 초청한 강연 '과거의 나로부터 떠난다는 것 - 삶을 바꾸는 앎의 순간들'이 지난 8월 20일 오후 2시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열렸다. 2시간을 넘기며 열띠게 이어진 현장에서는 그가 어떻게 노들장애인야학과 인연을 맺게 됐는지부터 시작해 그간의 장애운동 이야기가 펼쳐졌다.

내 머릿속 '좋은 사람'은 늘 비장애인의 모습이었음을

떠난다는 것은 무언가와의 이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와의 만남,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홍은전씨에게 '떠남'이란 앎의 순간이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기쁨이었다. "기존의 렌즈가 깨지고 균열이 생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그래서 "그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며 '떠남'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화두가 됐다.

2001년 노들장애인야학(노들야학) 교사가 됐던 때, 2013년 노들을 떠나 인권기록활동가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던 때, 2019년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인권에서 동물권으로 관점이 달라진 때 등 총 세 번이 그가 말하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떠난' 순간이다.

그는 첫 번째 떠남의 순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던 때를 회상했다.

"원래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2001년의 저는 서울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400명의 수험생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앉아 앞사람 등만 바라보며 공부하는 그 여름을 지나며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거 같아요. 이게 정말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일까 고민하다가 야학 봉사활동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만나게 된 게 노들야학이었어요."

2001년 8월 23일. 홍은전씨가 노들야학에 처음으로 찾아간 날, 그리고 그가 생애 처음 장애인을 만나게 된 날. 장애인 야학에서 봉사하겠다는 포부로 가득 찼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실존하는 장애인을 만난 그는 얼어버리고 만다. 휠체어를 탄 4명의 장애인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논의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간 자신도 모른 채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편견을 말이다.

"나에게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이 있다는 걸 자각한 거죠. 그 전엔 장애인을 직접 만날 일이 없었으니 전혀 몰랐던 거고요. 그런 편견을 깨달으며 노들야학에 발을 들여놓을지 말지를 고민한 짧은 5분의 시간은, 그때는 몰랐지만 제 인생의 거대한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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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 당시 모습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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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 당시 모습. 사진 속 인물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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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야학 봉사활동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집회 참석을 권유받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싸우러 가시죠"라는 제안에 그는 '천사를 기대하며 왔는데 전사가 있는 곳'임을 직감했다고.

"구호가 뭐죠?"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입니다."
"버스를 왜 타죠?"
"(약간 어이없어 하며) 버스를 못 타니까 타죠."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며) 그러면 지하철을 타면 되지 않나요?"

이 대화는 당시 그가 얼마나 장애인 문제에 무지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니, 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 문제에 무심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 웃지 못할 대화는 비장애인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접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게 하므로.

며칠 후 장애인 이동권 집회 장면을 영상으로 보게 된 홍은전씨는 노들야학에 다시 가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버스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스를 타게 해달라'고 소리 치는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신체, 비장애인 중심의 언어만 보다가 장애인의 시위를 보게 됐으니 그 충격이 굉장히 컸던 거죠. 한편으로는 '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깨지는 때이기도 했던 거 같아요. 신자유주의 철폐, 주한미군 철수 같은 거대한 구호만 보다가 굉장히 다른 운동을 만나게 된 거잖아요. '여기(노들야학) 이상한 곳이다, 그러니까 한 번은 더 가봐야겠다' 생각하면서,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훨씬 더 용기를 내어 찾아갔지요."

그렇게 그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박경석 교장(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을 만나게 된다.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형형한 눈빛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던 휠체어 장애인, 그가 야학의 교장이라는 사실은 그를 또 한 번 깨웠다.

"제 머릿속에서 '좋은 사람'은 늘 비장애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저에게 장애인은 도와줘야 할 대상이었고, 그들은 얌전히 앉아 자신을 구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라는 걸 직접 본 거예요. 내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장애인이 리더가 된다는 것을 보며 엄청난 전복을 경험한 거죠. 노들야학에서는 계속 그런 경험을 했던 거 같아요."

매일 심호흡을 하면서도 매일 용기를 내 새로운 세계로 발을 옮기게 한, 노들 활동 13년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이기지 않아도 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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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장애등급제 가짜폐지 1년 규탄 결의대회 및 전동행진 현장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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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장애등급제 가짜폐지 1년 규탄 결의대회 및 전동행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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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야학은 장애인의 학습을 돕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장애인 인권 문제를 알리고 외치는 운동 단체이기도 했다. 최소한의 장애인 이동권조차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노들야학의 운동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공부를 하려면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도보를 이용하든 어찌됐건 이동권이 확보돼야 하는데, 이 도시의 모든 것이 장애인의 이동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학에 오는 길 자체가 장애인, 그리고 야학 교사나 활동가들에게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야학에 나오는 휠체어 장애인과 함께 지하철역에서 야학까지 오는 길은 정말 온 우주가 우리의 이동을 방해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때만 해도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휠체어로 이동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꼭 필요했죠.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을 찾으면서 더 예민하게 세상을 봤던 거 같아요.

'저 사람은 다정할까.' '저 사람은 혹시 지금 너무 바빠서 우리를 도와줄 수 없는 상태일까.' 그렇게 계속 예의주시하게 되죠. 그러면서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요. 우리의 존재가 취약해졌을 때, 내가 누군가의 선의로만 움직일 수 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신경 쓰게 되고 낯선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간신히 야학에 도착하면 이미 고단해서 공부할 기력도 모두 없어진 상태죠(웃음)."

그러나 이 시간은 그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세상을 낯설게 보고 세상과 다른 경험을 하면서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서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세상과의 싸움, 등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던 일은 그들 스스로 경험을 나누고 쌓으며 성장하는 시간을 통과하게 했다. 홍은전씨 자신 역시 세계에 대한 이해가 급격히 바뀌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낮의 세계의 홍은전, 밤의 세계의 홍은전이 있었던 거예요. 낮의 세계에서는 가산점에 매달리고 엄청난 경쟁 속에 선착순으로 달리기를 하며 끝없는 불안에 시달렸는데 그 세계의 바깥, 밤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났던 거죠.

차별 받고 억압 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도, 막상 갔더니 에너지가 넘치고, 낮의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들을 보게 돼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그것을 도모하는 사람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단단하게 연결된 사람들. 그런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앞으로 내가 이들과 함께 산다면 더는 무서울 게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콩나물시루 속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그가 "아무도 이기지 않고 교사가 된" 순간이었다.

"장애운동이 말하고자 하는 건 '네 몸을 이기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장애를 극복하도록 평생 재활훈련을 해요. 자기 몸을 바꾸는 혹사인 건데, 노들야학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네가 학교에 못 가는 것은 네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학교가 너를 가르칠 능력이 없어서야'. 장애인의 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의 몸을 문제로 만드는 사회 구조가 문제라는 것, 그런 가르침을 준 노들야학은 저에게도 해방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해방됐던 거예요."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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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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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들야학에서 장애인권활동가로, 이후엔 노들야학 밖에서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보고 듣는 기록활동가로 일한 그는 이제 비인간 동물을 향한 연대에 나서고 있다. 고양이 '카라'와 만나면서부터다.

"그간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운동 속에서 살아왔던 거 같아요. 글을 쓰면서 단련하고 싶었던 것도 인간의 고통, 인간의 저항, 기쁨, 슬픔 이런 것을 잘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고양이와 살게 된 이후 제가 쓰는 언어와 제가 새로 만나게 된 고통의 세계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 거죠. 말하자면, 제가 장애운동을 할 때 느꼈던 비장애인의 논리 같은 거예요, 제가 쓰는 언어들이."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의 자리에서, 누구의 시선으로, 누구의 옆에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다른 세계를 알게 된다는 것, 그래서 과거의 나를 떠난다는 것은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토록 경이롭고 설레는 일이다. 그의 말대로 "앎은 내 안에 들어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지만, 그런 붕괴가 사실은 더없이 기꺼운 것이다.

"싸우는 소수의 사람들이 거대한 세계에 몸을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전선에 따라 그 사회의 정의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렌즈에 균열을 내게 하고요. 그 균열을 통해 예전에 보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 거예요. 경쟁하던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적응하는 세계에서 저항하는 세계로 가는 길이 그렇게 열립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하나 소개했다. 노들야학 사무실에 붙어있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민 투쟁의 구호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골목길 인문학' 강연은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전국교집원노동조합 옥천지회·사회적기업 고래실·옥천민들레읽기모임·옥천동화읽는어른모임이 공동 기획해 올해 5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9월 17일 사회학자 엄기호씨에 이어 11월 11일 문화평론가 손희정씨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월간 옥이네 통권 63호 (2022년 9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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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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