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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성범죄자 71% '반성문'에 감형…전주환, 살인전 반성문 3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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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전주환(31)이 ‘신당역 살인’의 선행 범죄인 스토킹 혐의 1심에서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요인 중 하나는 “(전주환이) 여러 차례 반성문을 낸 것과 상반되게 피해자 A씨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었다. 전주환은 앞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안동범)가 심리한 이 재판에서 수십장의 반성문을 3번 제출했다. 그런데 선고 예정일 전날인 지난달 14일 A씨를 살해한 이유를 “징역 9년의 구형을 받은 게 다 피해자 탓이라는 원한에 사무쳤다(경찰 진술)”고 진술했다.



‘진지한 반성’하면 감형…5만~15만원짜리 반성문 대필업체 성황



중앙일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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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형사재판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하는 데 일반 감경요소 중 하나로 ‘진지한 반성’이 고려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의 하나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형사사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거나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징표 중 하나로 반성문이 고려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피의자나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을 허위로 꾸며낼 수 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을 감경받기 위한 목적에서 마치 진지하게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반성문을 꾸민다는 이유에서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체 성범죄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 30.3%가 ‘처벌 전력 없음’이 인정돼 감형을 받았다.

실제 반성문이 감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이어지자 서울중앙지법 등 주요 법원 인근에선 일부 업체들이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며 반성문 대필을 홍보하기도 한다. 5~15만원을 내면 반나절 안에 A4용지 3~4장가량 되는 반성문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 3월 28일 ‘진지한 반성’을 인정하는 구체적 조건을 정했다. ▶범행을 인정하게 된 구체적 경위나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을 조사해서 피고인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지를 따져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라는 정의 또한 여전히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 예로 일부 피고인들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성단체에 거액의 돈을 기부한 다음 영수증을 재판부에 제출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지난달 28일 화장실 불법촬영 혐의를 받는 피고인 B씨 측은 “(피해 회복을 위해) 화장실 비상벨 설치를 위해 기부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도 지난해 11월 25일 “후원 계좌에 1000만원이 입금되었다”며 “여성폭력 가해자가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후원 목적을 확인하고 전액을 반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판사에 죄송하다"가 반성? 감경요소 제외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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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형위원회 제119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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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지한 반성을 감경요소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고인이) 판사에게 죄송하다고 해서 피해자에게 죄송한 것은 아니다”며 “진지와 반성의 주체와 객체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 관점에서 실질적으로 피해가 회복되고, 감경 요인으로 삼을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들이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피해자 중심의 양형을 위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송기헌 의원이 지난 1월 28일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에는 피해자의 연령, 피해 정도, 형사처벌에 관한 의견 등을 양형을 정하는 데 있어 참작해야 할 사유로 명시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인의 반성을 양형기준에서 단순히 제외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청소년의 우발적인 범행 등의 경우 반성문 외엔 별다른 감경요소가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실제로 반성하는 사람과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을 동등하게 볼 수 없다”며 “반성문 자체를 감경요소에서 뺀다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형사 사건을 다수 맡아 온 김성훈 변호사는 “진지한 반성은 양날의 검이다. 재판에 따라 피고인의 반성이 적절하게 다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합의금 등이 반성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반성문은 피고인의 진심을 법관에게 전달하는 몇 안되는 경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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