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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탱크 케이크' 뒤 실종 석달…돌연 돌아온 中립스틱왕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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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탱크 연상시킨 케이크가 화근?

당대회 앞두고 中당국 검열 강화

농촌문제 다룬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

스트리밍 사이트서 자취감춰

도농격차, 권력자 문제점 부각

인터넷 만리장성 우회 시도 증가

인터넷 쇼핑 방송 중에 탱크 모양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다가 자취를 감췄던 중국의 유명 왕훙(網紅·인플루언서)이 약 3개월만에 방송에 깜짝 등장했다.

화장품 판매를 잘해 ‘립스틱 왕(王)’으로 불리는 리자치(李佳琦·30)는 9월 20일 오후 7시 알리바바 쇼핑 생방송 플랫폼인 타오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오후 7시30분 10만명대였던 접속자는 그의 등장에 6300만명까지 폭증했다. 그가 이날 소개한 화장품과 의류 등 26가지 제품 대부분은 완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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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팔로워가 1억7000만명에 달하는 리자치. 그는 5분만에 립스틱 1만5000개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립스틱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 리자치 웨이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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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복귀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과거 그는 5분만에 립스틱 1만5000개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립스틱 왕', '립스틱 오빠'란 별명을 얻었다. 페이셜 크림 1230만 위안(약 25억원)어치를 방송 1회만에 판매한 적도 있다.

인기 절정이던 그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건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3일 라이브 방송 때였다. 대포와 바퀴를 닮은 초콜릿 막대와 쿠키를 붙인 '탱크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등장하자 갑자기 방송이 중단된 것이다. 그 뒤 리는 웨이보를 통해 "기술적 문제로 중단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예정됐던 라이브 방송까지 결방되자 '실종설'이 돌았다. 톈안먼 시위를 연상케 하는 탱크가 화근이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포린폴리시(FP)는 “리 자신은 저질렀다고 생각조차 못 했던 ‘실수’ 때문에 잠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한룽빈 미국 조지아대학 부교수는 CNN에 "리자치는 중국 당국의 검열대상이었을 것"이라면서 “무심코 저지른 실수였지만 톈안먼 시위(6월 4일)는 명백한 금기이며 방송 타이밍(6월 3일)도 치명적이었다”고 짚었다.

FP는 "리와 그의 팬들은 톈안먼 시위 이후 태어났고 일부는 시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중국 당국은 어떠한 행위도 놓치지 않고 감시 중이다"라고 분석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복귀한 리자치는 이번 9월에는 케이크류를 아예 판매하지 않았다"면서 "다른 진행자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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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치(왼쪽)가 지난 6월 3일 라이브방송을 하던 도중 탱크 모양의 아이스크림 케이크(가운데)가 등장했다. 사진 타오바오 라이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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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나 중국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콘텐트는 당국의 ‘철퇴’를 맞아 왔다. 특히 오는 16일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검열이 강화되고 있다.

FP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 짓는 이번 당 대회를 앞두고 검열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사이버 관리국은 특히 '역사적 허무주의'검열에 주목하고 있다.

역사적 허무주의란 중국 공산당 역사에 의혹을 제기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는 당이 직면한 7대 이념적 위협 중 하나로 등재됐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는 '역사적 허무주의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200만 건 이상 삭제됐다. 인터넷 게시물 중 주요 신고대상으로 ▶마르크스주의 등에 대한 비판▶당의 역사, 중국의 경제개방 정책에 대한 논쟁▶당과 국가 지도자 비방▶공산주의 역사 패러디▶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악당에 대한 미화 등이 꼽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중국 간쑤 성에 사는 농촌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隱入塵煙)'가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지난 26일부터 자취를 감췄다고 보도했다.

영화는 지난 7월 8일 개봉한 뒤 지금까지 흥행수입 1억 위안(202억원)을 거두며 선전했다. 중국 영화사이트 더우반에서 평점 8.5점을 받았고 올해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중국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주인공은 결혼해 가정을 꾸리지만 현실 문제에 직면한 뒤 암울한 결말을 맞는다. RFA는 "중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당 선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사이트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SCMP는 이 영화가 지난해 절대 빈곤을 종식하겠다고 선언한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영화 속에 등장한 도시-농촌 간 격차문제는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냈고, 권력자들의 행동은 비판을 받았다.

영화가 사라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먼지로 돌아가다'가 정말 먼지로 돌아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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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먼지로 돌아가다'는 9월 26일 중국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진 웨이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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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당국의 검열에 잘려나간 '진실'을 알길 원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만리장성 우회'가 증가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8일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관련 정보가 대표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방화벽(인터넷 만리장성)을 우회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VPN(가상사설망)을 통해 중국 네티즌들이 코로나 정보를 검색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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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열리는 제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를 앞둔 9월 28일, 베이징 시내에 20차 당대회(二十大)라는 장식물이 부착됐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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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코로나 외에도 페이지뷰가 증가한 사례는 시진핑 주석 퇴진을 요구했던 변호사 쉬즈융(許志永), 티베트 봉기의 날, 반중 예술가인 아이 웨이웨이(艾未未), 톈안먼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 등이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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