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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으로 다시 본 유방과 항우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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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초한전쟁

이동민 지음 | 흠영 | 432쪽 | 2만3000원

고립무원 상황을 의미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가? 중국의 첫 통일제국 진(秦)나라가 무너진 뒤 항우의 초(楚)나라가 유방의 한(漢)나라와 천하를 두고 건곤일척 쟁패를 벌이다, 기원전 202년 최후로 싸운 해하 전투에서 발생한 것이다. 항우는 이 전투에서 패하고 자결했지만, 그 직전 고릉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둔 항우는 도대체 왜 졌는가? 유방 편이었던 한신과 관영이 북쪽 후방에서 침공했고, 결국 항우가 ‘싸움에선 이기고 땅을 잃은’ 것이 패인(敗因)이 됐다.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초한전쟁을 ‘지리·지정학적’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왜 그토록 숱한 영웅이 난세에 등장했을까. 진나라의 관(官)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지역이 산림과 늪지대를 일컫던 ‘택(澤)’이었는데, 오늘날의 뒷골목처럼 건달이나 무법자, 반체제 인사들이 활동하던 곳이었고 여기서 세상을 뒤엎을 주인공들이 나왔다. 유방이 형양을 사수하려 한 것은 북쪽의 곡식 창고 오창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고, 한신이 면만수에서 배수진을 친 데엔 구릉성 산지 지형을 활용하려는 군사 지리학적 의도가 있었다는 등 흥미로운 분석이 이어진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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