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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저평가 받던 韓국채, 재평가 받을 기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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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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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선진국 국채 클럽'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 불안감에 달러당 원화값이 급락하고 국채금리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30일 WGBI를 관리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그룹은 "한국을 잠재적으로 시장 접근성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는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WGBI는 러셀그룹이 관리하는 채권지수로 미국, 일본, 영국 등 23개 주요국 국채를 아우르기 때문에 선진국 국채 클럽으로 불린다. 추종하는 자금만 2조5000억달러(약 3584조원)에 달한다. 외환당국은 원화 채권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며 전 세계 투자자가 한국 국채시장에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FTSE 러셀은 개별국 투자 환경을 평가해 매년 3월과 9월에 워치리스트를 발표한다. 이 리스트에 올라가면 실제 제도 운용 현황 등을 검토해 다음해 3월과 9월 연례심사에서 최종 편입이 결정된다. 따라서 한국은 이르면 내년 3월 최종 편입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유형철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은 "최고 시나리오는 내년 3월 편입이 결정돼 6개월 유예기간을 거친 뒤 9월에 실제 편입과 외국인 자금 유입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WGBI에 편입되면 이를 추종하는 외국인 자금이 유입돼 국내 채권 몸값은 올라가고(채권금리는 하락) 한국이 지불해야 하는 이자는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업계에서는 최종 편입 성사 시 50조~100조원이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국고채금리가 하락하며 이자비용이 연간 5000억~1조1000억원 절감될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 자금이 유입돼 원화값과 국고채금리가 안정되면 한국 국채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제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날 한국의 관찰리스트 편입 소식으로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금리는 오전 중 전일 대비 10.9bp(1bp=0.01%포인트) 내린 연 4.2140%에 거래(채권값 상승)됐다. 10년물 금리는 연 4.109%로 11.8bp 하락했다. 한 증권사 채권 운용 관계자는 "미국 국고채금리 상승에도 한국 국고채금리가 하락한 것은 내년 WGBI 편입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지수에 실제로 편입되기 전에 포트폴리오를 사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1년 동안 예상 금액의 10%인 5조원 이상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WGBI 편입 도전 역사는 1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기재부는 WGBI 편입을 위해 외국인이 한국 국채에 투자하면 이자소득(최대 세율 14%)과 양도차익(세율 20%)에 비과세하는 세제 개편안을 2009년 추진했다. 개편안은 정부 지지 속에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이듬해 정부는 비과세 방침을 철회했고, WGBI 편입도 무산됐다. 전 세계 금융위기로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며 투기성 외국인 자금(핫머니)이 대량으로 밀려든 탓에 방어 조치가 시급했던 것이다.

WGBI 편입은 정량·정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FTSE 러셀은 정량 요건으로 국채 발행 잔액과 신용등급 두 가지를 본다. 국채 발행 잔액은 액면가 기준 500억달러 이상, 신용등급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A-', 무디스 'A3' 이상이어야 한다. 한국은 S&P 신용등급 AA-(안정적), 무디스 Aa2를 유지하고 있고, 국채 잔액은 작년 말 현재 843조7000억원이다. 일본계 신용평가사인 JCR도 30일 한국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상향했다. 남은 관문은 정성 요건인 '외국인 투자에 제한이 없는 시장 접근성'이다. FTSE 러셀은 국가별 조세 등 제도를 감안해 레벨 0부터 2까지 정성평가를 하는데, 한국은 일부 제한이 있는 레벨 1이다. 레벨 2가 돼야 WGBI 편입이 가능하다.

FTSE 러셀은 이번에 한국을 관찰 대상국에 올리며 "한국이 외국인 국고채·통화안정증권 투자에 대해 비과세, 외환시장 선진화 방침, 국제예탁결제기구(ICSD)를 통한 국채 거래 활성화 계획 발표 등 외국인 투자 저해 요인을 놓고 제도적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레벨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지난 7월 세제 개편안에서 외국인이나 해외 법인이 국채·통안채에 투자할 때 이자소득과 양도차익에 비과세하는 내용을 다시 포함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법 개정에 동의할지가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WGBI 편입을 위한 법 개정 자체는 야당 동의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법인세 감세 등 야당 반발이 심한 다른 세법과 함께 묶여 있여 자칫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이종혁 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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