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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0기가 인터넷 비추" 실제 속도 공개해…회사 대표 사과받아낸 이남자[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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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잇섭` 채널 사무실에서 황용섭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구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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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한 유튜버가 '10기가 인터넷을 비추하는 이유'라는 영상을 올렸다. 그는 자신이 월 8만8000원 요금의 10기가(Gbps)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 중인데, 실제 속도를 측정해본 결과 그보다 훨씬 느린 100Mbps 속도를 제공받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월 2만2000원인 100Mbps 요금제보다 4배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당초 약정된 10Gbps보다 100분의 1 수준의 속도로 서비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고객에게 속도 측정 의무와 잘못을 떠넘기는 듯한 고객센터 직원의 불친절한 대응 등도 영상에 담았다.

그가 쏘아 올린 인터넷 품질 문제는 곧장 통신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 유튜버가 구독자 220만명을 보유한 정보기술(IT) 인플루언서 '잇섭' 황용섭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컸다.

해당 영상은 3일 만에 조회 수 200만건을 기록했고, 2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통신사 대표는 "장비 증설과 교체 등 작업 과정에서 속도 정보 설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직접 사과했다. 정부는 업계 전반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섰다.

국회에선 '인터넷 속도 저하 방지법'까지 발의됐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해당 통신사에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는 한편 제도 개선과 시정조치 사항을 발표했다.

이동통신 3사에 10기가 상품 등의 최저 보장 속도를 상향 조정해 보상 대상 기준을 끌어올리고, 이용자가 직접 속도를 측정했을 때 기준에 미달할 경우 별도 보상을 신청하지 않아도 통신사가 요금 감면을 자동 적용하도록 개선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국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약 2246만명에 달한다. 한 유튜버의 폭로가 수많은 소비자의 해묵은 갈증을 해소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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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일경제가 만난 황용섭 씨는 국내 IT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뷰 전문 인플루언서로 평가받는다.

통신사 등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그의 인생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송두리째 달라졌다. 2016년부터 '잇섭' 채널을 운영하며 2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그가 올리는 영상은 평균 조회 수가 수십만 회에 달한다.

영상 누적 조회 수는 8억회를 넘는다. 광고를 주는 기업 위주가 아니라 소비자 관점에서 하는 솔직한 리뷰가 채널의 인기 비결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는 결국 끊임없는 진정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 '국민 유튜버'가 된 원동력과 인플루언서·IT업계 트렌드를 물었다.

―'10기가 인터넷' 영상의 파장을 예상했나.

▷솔직히 이 정도로 이슈가 커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상을 만든 계기는 '불편함'이었다. 두 번 정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돼 영상을 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한 달에 10만원짜리 요금제를 쓰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속도가 느린 것 같다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통신 3사(인터넷) 속도를 테스트했고 (문제가 있다는) 결과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화가 나고 궁금했던 점은 '왜 (인터넷) 속도를 강제로 낮췄는지'였다. 영상을 올릴 때 구독자들이 내 편이 돼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해당 영상이 수많은 구독자(소비자)의 불편함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T 기기를 리뷰하는 유튜버 입장에서는 IT 회사와의 관계도 중요할 것 같다.

▷앞서 언급한 '10기가 인터넷' 같은 영상은 광고가 주목적이면 만들기 어려운 콘텐츠다. '잇섭' 채널의 주 수입원이 외부 광고 수익이 아니라 구글 애드센스(유튜브 조회 수로 받는 수익)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6년 넘게 유튜브를 하면서 든 생각은 롱런하기 위해선 돈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보통 유튜버들이 채널이 커지면 브랜디드(광고) 콘텐츠를 많이 한다. 이게 과하면 채널이 무너져버린다. 수익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쌓는 게 더 중요하다. 광고 수익이 조회 수 수익보다 커지면 분명히 채널이 망가진다. 돈의 맛에 길들여지면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돈을 벌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구독자가 떠나간다고 본다. 특히 테크·리뷰 콘텐츠는 신뢰도가 매우 중요하다. 광고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 반드시 제품을 직접 써보고 엄선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어렸을 적 꿈이 유튜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유튜버가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 어려서부터 전자기기를 워낙 좋아했다. 특히 휴대폰(피처폰)을 너무 좋아해서 우드록 모형을 만들곤 했다. 기계적인 느낌에 새로운 기술이 적용·집약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휴대폰을 만드는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도 관련 전공으로 진학했다.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리뷰하면서 살고 있으니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는 셈이다.

―학창 시절엔 어떤 생활을 했나.

▷사실 대학교에 진학할 시기에 집안 형편이 별로 좋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도 여럿 하게 됐다. 학교를 반 학기 다니고 군대를 다녀와서 노가다(막일)를 뛰었다. 그 시기 부업으로 블로그도 시작했다. 전자기기를 워낙 좋아해서 IT 리뷰를 주로 했다. 차곡차곡 하다 보니 한때 파워블로그 수준으로 방문자가 많아졌다. 블로그로 수익을 내기도 했지만, 광고 콘텐츠의 경우 제품 단점을 지적하거나 이슈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블로그는 콘텐츠의 방향성에서 '자유도'가 떨어지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유튜브에 발을 들인 계기는.

▷유튜브는 26세,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시작했다. 당시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자공학·정보통신 전공이라 주변에선 자연스럽게 통신사나 삼성 같은 대기업 취업을 진로로 삼았다. 늘 새로운 도전에 갈증이 있었다. 유튜브가 떠오르던 시기였지만 당시에도 '레드오션'이란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취업을 해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더 컸다. 결국 휴학을 하고 유튜브를 하게 됐다. '내가 어차피 인생에서 1년 더 늦게 되어도 그 또한 값진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1년 동안 유튜브를 해보고 성공하지 못하면 복학해서 다시 취업 준비를 한다는 생각이었다.

―초기 반응은 어땠나.

▷처음 콘텐츠를 올렸을 때 주위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았다. 2~3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 3시간 넘게 찍었다. 리뷰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을 사야 했는데 초기부터 수익은커녕 마이너스가 났다. 악플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지방 사람이다 보니 말투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댓글에서 오히려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드백을 받은 대로 적용하면서 노력하니 더 많은 사람이 콘텐츠를 봐주더라. 전자기기 덕후 같은 모습이 함께 즐기는 재미를 줬다는 반응도 있었다. IT 분야 전문가들이 영상을 보고는 댓글로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알려주는 등 오히려 배움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계획했던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나.

▷유튜브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키울 수 있겠다'는 확신은 있었다. 실제로 채널을 키워 돈을 제대로 벌기 시작하기까지는 3~4년 걸렸던 것 같다. 채널을 시작할 때 종잣돈이 1000만원이었는데 현재는 전자기기 구입비용으로 한 달에 1000만원을 소비할 정도로 채널이 성장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채널은 이제 인생에서 9할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해졌다. 채널 운영이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유튜브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공개되면 오히려 큰 문제가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면서 유튜브 자체가 광고판이 돼버리고 결국엔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직접 경험해보니 브랜드나 기업에서 광고를 받지 않아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제약이나 불편함이 없다. 유튜브에서 주는 보상은 시청자에게 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큰 동기 부여가 된다. 사실 구독자와 끈끈한 관계를 만들고 팬덤을 구축하면 채널 멤버십이나 슈퍼챗, 슈퍼스티커 등을 통해 더 큰 보상을 얻을 수도 있다.

―유튜브 채널을 키우는 팁이 있을까.

▷유튜브가 뜨면서 요즘엔 구독자를 늘려주는 업체도 많다. 구독자를 돈으로 산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콘텐츠의 질'이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는 분들의 경우 알고리즘에 내 콘텐츠가 노출되지 않아서 채널이 크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다고 무조건 채널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이를 누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에 걸렸을 때 구독자가 퀀텀 점프할 수 있다. 즉, 해당 채널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도 결국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게임 체인저'가 될 혁신 폼팩터가 어디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나.

▷다음 폼팩터는 롤러블이 될 것 같다. 지금 폴더블폰을 쓰고는 있지만 결국 접고 펴는 것 자체가 귀찮아지는 순간이 올 것 같다. 옛날에 피처폰에도 슬라이드폰과 폴더블폰이 있었지만, 결국 접는 것에 대한 번거로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롤러블의 경우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고, 실제로 봤을 때 시장성을 느꼈다. 평소엔 바(Bar)형으로 쓰다가 버튼을 한 번 누르면 화면이 커지는 식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 vs 애플'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직업 특성상 한 제품을 쓰지 않는다. 1년 중에 반은 안드로이드폰을, 나머지 절반은 아이폰을 쓴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 리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용자 경험인데, 잠깐 써보는 것과 생활 속에서 쓰는 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시청자 수가 백만 단위로 넘어가면 구독자들이 귀신같이 알아챈다. 스마트폰 취향과 관련해서 만지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면 안드로이드폰을, 순정 그 상태로 쉽고 감각적인 감성을 원하면 아이폰을 추천한다.

―앞으로 목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가 판을 키우는 게 목표다. 네이버 블로그만 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유튜브의 장점 중 하나는 국가 간 장벽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 유튜버가 세계적인 유튜버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가 전자제품 강국이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훌륭한 브랜드가 많다. 이를 전 세계인에게 더 잘 알리고 싶다. 현재도 콘텐츠마다 영어 자막을 제공하고 있는데, 영상을 어떤 색다른 방식으로 어필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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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크리에이터 '잇섭'(본명 황용섭)은…

1991년생으로 대학에서 정보통신학과를 전공했다. 2016년부터 전자기기 유튜브 채널 '잇섭(ITSub)'을 운영 중이며 구독자 222만명과 함께 채널을 꾸려 가고 있다. 스마트폰, PC, 게이밍 기어, 전기차까지 리뷰 분야를 넓혀 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등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인기 있는 정보기술(IT) 채널로 '잇섭'을 꼽는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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