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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사전에 있으니 ‘바보’ 써도 돼? 네이버·카카오 “비하·차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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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O ‘포털 국어사전 내 차별·비하 표현 보고서’

‘낮잡아 이르는’ 뜻 표제어 1만여개 분석

총 546개는 “차별·비하 표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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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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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는 말은 차별·비하 표현일까, 아닐까? ‘초딩’, ‘예수쟁이’는 어떨까? ‘서방’이라는 말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계집애’란 말에 비해 많을까, 적을까? 앞으로는 특정 단어를 다른 사람을 향해 쓸 때 주의해야 하는지 여부를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 어학사전 서비스가 일러준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30일 ‘포털 국어사전 내 차별·비하 표현에 대한 보고서’ 발표회를 열어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앞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지난해 8월 포털 사전 서비스 이용자 보호를 위해 어학사전 자문위원회를 출범하고, 올해 초부터 ‘차별 표현 바로알기’ 캠페인을 벌여왔다.

자문위원회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연구팀(팀장 김상민)의 도움 아래 네이버와 카카오가 제공하는 국어사전에서 뜻풀이에 ‘낮잡아 이르는, 얕잡아 이르는’ 등이 담긴 표제어 1만여개를 검토했다. 이 중 사람을 대상으로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690개를 최종 검토 대상으로 뽑았다. 연구팀은 이들 단어가 최근 3개월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블로그·뉴스 등에 언급된 말뭉치 빅데이터의 긍정·부정·중립 비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총 690개 분석 대상 표제어 중 546개가 차별·비하 목적으로 자주 쓰인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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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별 차별·비하 표현 판단 사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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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비하 표현 유형별 비율.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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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546개 표제어를 유형별로 뜯어보면, ‘게으름뱅이’, ‘겁쟁이’, ‘얌체’ 처럼 개인의 성격이나 습성과 관련된 표현이 25.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딴따라’, ‘장사꾼’ 등 능력이나 직업과 관련한 표현이 22.4%로 두 번째로 많았다.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처럼 장애인을 가리키거나 ‘가난뱅이’ 처럼 경제적 형편을 가리키는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을 지칭하는 표현(10.9%)과 ‘말라깽이’, ‘드럼통’ 등 외모나 차림새를 지적하는 표현(9.1%)도 자주 발견됐다. 이외에 인종·출신지(6.5%), 성별(4.3%), 나이(4.2%), 성적 대상(3.7%), 종교(1.1%)와 관련된 표현 또한 차별·비하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빈번하게 관찰됐다.

연구에 참여한 유현경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날 발표회에서 “이번 분류는 절대적 판단이 아닌 상대적 판단의 결과”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유 교수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인 비율이 긍정적인 경우보다 확연히 높은 표제어라고 해도 차별·비하 표현으로 분류해도 되는지를 자문위원끼리 두시간 넘게 갑론을박을 주고받은 예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바보’는 끝내 차별·비하 표현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 ‘딸바보’ 처럼 긍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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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국어사전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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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카카오는 이번 연구 결과를 곧바로 국어사전 서비스에 적용하기로 했다. 실제 이날 오전 두 포털 사이트 국어사전 서비스에서 ‘바보’를 검색하자,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첫 번째 뜻풀이 아래에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돼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안내 문구가 표시됐다. 해당 문구를 클릭하자 “어학사전 속 표현이 지역·종교·장애·인종·출신국가·성별·나이·직업 등 특정 집단의 인격권과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 누리집으로 넘어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내 대표 온라인 어학사전 서비스를 운영하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먼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에 의뢰해 이뤄졌다. 이은경 네이버 파파고사전팀장은 “특정 표현을 잘못 사용하면 상대방이 기분나빠 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학부모나 선생님이 주의를 주면 ‘국어사전에 있는 말인데 왜 쓰면 안 되냐’고 맞받아치는 경우가 있다”며 “만약 일정한 기준에 따라 차별·비하 표현을 분류하고, 이를 각 표제어 뜻풀이 아래에 표기하면 교육·양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조금이나마 편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현경 교수도 “최근 특정 단어가 공적 담화에서 쓰여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특정 표현이 차별·비하 표현이 맞는지 판단하고 자율규제 필요성을 따질 때 이번 연구 결과가 객관적인 근거로 쓰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문위원장을 맡은 황창근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의 주관적 의견에 바탕해 차별·비하 표현 여부를 판단한 게 아닌 일상생활속 용례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 인식을 환기하는 작업을 지속해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혐오 표현 소위원회를 오는 10월 공식 출범하고, 이르면 내년 초 ‘이용자 보호를 위한 차별·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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