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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단히 벼르고 온 해리스, 윤여정 김연아 만나고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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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 방한 일정 속 한국 여성 리더들 만나
바이든 행정부, '성 평등' 국가 핵심 정책 선정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 尹 젠더 인식과 대조
한국일보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미대사관저에서 각 분야 여성 대표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정숙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회장, 김연아,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김사과 작가, 최수연 네이버 대표, 배우 윤여정, 이소정 KBS 앵커가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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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에 참석한 뒤 한국을 찾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8시간에 불과했다. 그 짧은 일정 속에 해리스 부통령은 오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하고, 떠나기 전엔 비무장지대(DMZ)를 찾았다.

그 분주한 동선 속에 잡힌 유일한 일정은 한국 여성 리더들과의 간담회였다. 행사 명칭은 '신기원을 이룩한 여성들과의 라운드테이블'. 이 자리엔 배우 윤여정씨,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최수연 네이버 대표, 김정숙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회장,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이소정 kbs 앵커, 김사과 작가가 참석했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 리더들이다.

빠듯한 일정 속, 해리스 부통령은 왜 한국 여성 리더들을 한데 초청했을까.
여성이 성공하면, 사회 모든 부문이 성공한다고 강하게 믿는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성 평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한국일보

29일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의 간담회에 윤여정(왼쪽 두 번째) 배우, 이소정 KBS 앵커, 김사과 작가가 참석해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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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부통령의 '뼈있는' 모두발언에 답이 있다. 간담회 일정을 통해 한국 사회와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제고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방한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은 여성 리더 간담회 행사를 '예고'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문제(성평등)를 제기할 것"(뉴욕타임스 인터뷰)이라고 단단히 벼르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성 평등 논의했나' 질문에... 해리스 "예스")

윤석열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안일한 젠더 인식을 드러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장 NYT는 해리스 부통령 인터뷰 말미에, 부유한 선진국 가운데 한국이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크고,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은 5분의 1 미만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성 평등 사회를 위한 해리스 부통령의 노력은 '진심'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이 된 그 자신부터, 남성·백인으로 대변되는 주류 사회에서 벗어난 소수자 정체성의 삶을 살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도계 어머니를 둔 해리스 부통령은 특히 성 평등 문제에 관해서 외할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인도는 뿌리 깊은 여성 차별과 인권유린이 심각한 국가로 꼽히지만, 그의 외할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남녀차별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를 북돋아줬다고 한다. 전 세계 여성들을 울렸던 해리스 부통령의 승리 연설의 한 대목이었던 "제가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여성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란 말도 해리스 부통령의 어머니가 늘 당부했던 말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깨어 있는' 아버지 덕분에 유방암 연구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 '성 평등' 핵심 과제로... "다른 나라도 동참하라"

한국일보

젠 사키(오른쪽) 백악관 대변인이 5일(현지시간) 일일 브리핑 도중 카린 장-피에르 후임 대변인을 소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 백악관을 떠나는 사키 대변인의 후임으로 장-피에르 수석부대변인을 임명했다. 아이티 이민자 2세인 장-피에르는 백악관 첫 흑인 여성이자 첫 성소수자(LGBTQ) 대변인이 됐다. 워싱턴=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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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부통령 취임 이후 미국 행정부에도 가시적 변화가 일었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성 평등 달성을 위한 전략 계획을 국가 핵심 어젠다로 발표한 게 단적인 예다. 모든 정책에 성 평등 관점을 포함시키겠다는 목표로 △젠더 폭력 근절 △남녀 임금격차 해소 △정부 기관에 여성 리더 진출 장려 △성소수자 권리 보호 등 구체적 과제도 제시됐다.

'선언'으로 머물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각에 여성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해리스 부통령 외에도 미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인 재닛 옐런 장관, 최초의 흑인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최초의 아메리카원주민 여성 장관인 데브 할런드 내무 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 내 여성 고위직 인사는 12명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미 행정부의 성 평등 증진 계획이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거다. 동맹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성평등 제고 정책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고위직 인사들, 방한 때마다 여성·성 소수자 '메시지'

한국일보

방한 중인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맞아 6월 7일 방송인 하리수씨,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만나 간담회를 열었다. 셔먼 부장관 트위터 계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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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고위직 인사들의 방한 일정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지난 5월 윤 대통령의 취임 축하 사절단으로 방한했던 해리스 부통령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성소수자 방송인 홍석천씨를 만났고, 6월 한국을 찾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국내 스타트업 여성 창업가들을 만났다. 7월 방한한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한국은행 여성 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9월 해리스 부통령의 여성 리더들과의 만남까지. 미국은 일관되게 성 평등, 다양성에 관해 메시지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우리는 성 평등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때 가장 강하고, 모든 사람들이 외면당할 때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며, 우리가 당신들 옆에 서서 함께 싸워줄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지난해 7월 성 평등 증진을 위해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을 윤석열 정부와 한국 사회가 두고두고 새겨야 할 이유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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