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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약관 위반이라더니 소송 걸자 보험금 내준 HUG…세입자 두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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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 소송 취하 조건으로 보험금 지급

HUG “적극 보호 위해 내부 규정 변경”

아시아경제

28일 서울 강서구 화곡로 대한상공회의소 내 위치한 전세피해 지원센터에서 한 시민이 전세사기 피해 접수 관련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상담을 받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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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수도권에 거주 중인 A씨는 올해 초 원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보다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전세로 살고 있는 원룸 앞으로 수십억원의 가압류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해 발생한 가압류였다. 이사를 앞두고 있던 A씨는 집주인에게 퇴거 통보를 했지만, 역시나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A씨는 곧장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안심대출보증 지급을 신청했다.

그런데 HUG는 A씨가 약관을 위배했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A씨가 이사 하루 뒤 전입 신고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가 변호인을 선임해 재차 보증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HUG 측은 “집주인이 변경되면서 권리관계가 보험 가입 당시랑 상이해졌다”면서 “약관을 위반한 사안인 만큼 보증금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

결국 A씨는 변호인과 상의 후에 HUG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상황은 여기서부터 급변했다. 소송 제기 직후 HUG 측에서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보증금 지급을 약속한 것. A씨는 소송을 취하하고서야 보증금 수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전세 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에게 약관 위반 등을 이유로 보험금을 미지급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소송을 제기한 일부 세입자들에게만 보험금을 돌려준 것으로 나타나 빈축을 사고 있다.

30일 HUG에 따르면 보증효력 미발생으로 인한 보증보험 미지급 건수는 2020년 1건(1억7000만원)에서 2021년 8건(17억3700만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1분기 중에만 6건(9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실제 청구가 접수돼 심사 진행한 건만 집계한 것으로, 상담 과정에서 포기한 경우를 합치면 미지급 건수는 드러난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A씨 사례도 마찬가지다. A씨가 위배한 약관은 ‘제13조에 따른 보증채무 성립 요건(대출 실행일에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를 갖춰야 한다)’이었다. 당시 HUG는 "A씨가 약관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소송 직전까지 갔다가 보험금을 지급받은 A씨는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다”면서 “같은 피해를 본 세입자들인데 누구는 보험금이 지급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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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따르면 HUG의 약관과는 무관하게 보험금 지급 불가 통보를 받더라도 법적 다툼을 통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HUG의 설립 취지나 임대차보호법 등의 법리적 해석을 통해 보험금을 지급받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소송 취하 후 보험금을 지급한 것과 관련해 HUG 측은 “적극적으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매매 당사자 간 임대차 계약 승계가 입증되고, 전입신고 전 저당권 등 권리침해 사실이 없는 경우 보증이행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내부 규정을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내부 규정 변경으로 구제받은 또 다른 사례가 있는지 여부와 그 숫자에 대해서는 “기존 면책 결정에 따라 소송이 제기된 해당 사례에 대해서 소 취하 후 보증 이행을 진행한 것이며, 유사한 건들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규정 변경으로 구제를 받은 피해 임차인은 총 4명, 보험금 액수는 9억~10억원 수준이다. 이 중에는 소송을 진행한 임차인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HUG는 이전까지 지급 이행 거절을 통보받았던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규정 변경과 관련된 사항을 안내한 뒤, 순차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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