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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돈벌이에 내몰리는 의사들…만성적자 필수의료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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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필수의료①]

전공의 특정과목 기피에 국민건강권 위험

공공의대 수가 인상 미봉책 불과 지적

지역거점 신생아집중치료센터 모델링

이데일리

아산병원 신관 입구에서 들여다본 내부 모습.(사진=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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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소아암을 전공한 수도권 A대형병원의 B교수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후임을 뽑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장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내가 퇴임하면 누가 소아백혈병 환자를 진료하는냐?”고 물으니 병원장은 “그럼 앞으로 소아백혈병 환자들 보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C병원의 D 성형외과 전공의는 ‘하지 재건수술’을 한 다음 날 병원 이사장의 호출을 받았다. 가급적 재건수술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라는 지시였다. 8시간의 수술에 들어가는 의료진은 의사 4명, 간호사 4명 등 총 8명이지만, 수술비용은 저수가 항목에 해당돼 500만~6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D의사는 다음날 사표를 썼다.

의사들이 돈벌이에 내몰리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의료계에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는 환자는 받지 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공의들의 특정 과목 기피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 건강권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아픈 사람은 있어도 고칠 사람은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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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과목별 전공의 지원 양극화…의정 협의에도 입장차 뚜렷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연평균 3000명의 전문의가 배출돼 지난 6월 기준 활동 중인 전문의는 9만339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에 진학하면 26개 정도의 전공분야를 결정해 4년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특정 분야 쏠림이 나타나며 필수의료 인력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과목별로 전공의들의 지원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다. 미달과목은 핵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병리과,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 가정의학과, 비뇨의학과, 산부인과, 외과, 진단검사의학과 등이었다. 선호 학과는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피부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안과 순이었다. 혼자 개업해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곳으로의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한 관계자는 “산부인과 의사 무과실에도 보상금액의 30%를 의무 지급하도록 하는 의료분쟁 특례법이 정해져 있다”며 “산부인과 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다른 과를 찾아 나서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소아청소년과의 전공 지원율도 낮아지고 있다.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보니 수입을 국가가 정한 의료 수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공의협의회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소아 환자 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감소했다”며 “해마다 출산율 전망도 낮아져 3년 전까지 88%의 지원율을 유지했던 소아청소년과는 2022년 기준 23%의 지원율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전공의 기피 현상의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30대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문제는 병원에서 쓰러졌지만,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뇌질환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3명인데 ‘외과 수술’이 가능한 2명은 학회 참석이나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웠다. 이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후 필수·응급의료 공백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와 병원, 병원·의사단체가 머리를 맞댔지만 합의가 쉽지 않다. 양측 모두 인력 양성과 재정 투입을 강조했지만 차이는 분명하다. 정부는 수가 일부 인상과 공공의대 추진을, 의사협회는 충분한 수가 인상과 더불어 공공의대 반대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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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수가 올려줘도 ‘미달’ 공공육성은 ‘먹튀’…NICU 확대 적용


의료 현장에서는 수가 인상과 공공의대 설립 모두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복지부는 과거 흉부외과 전문의 확충을 위해 건강보험 수가 100% 인상과 가산금액 대비 30% 이상 지원을 약속했다. 이밖에 수련보조수당, 전공의 해외 단기연수 지원 등도 지원했지만, 흉부외과 지원율은 2017년 이후 지원율이 60%대에 그치고 있다. 김남중 대한감염병학회 이사장은 “과중한 업무 탓에 유인책에도 지원자가 없는 것”이라며 “코로나19로 감염전문의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공공의대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공공의대는 의사자격증 취득 이후 10년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구조다. 국방부는 군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장기복무 군의관 제도를 운영 중인데 숙련의로서 활용도가 가장 높은 40대 초반에 전역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공의대 도입시에도 유사한 먹튀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복지부의 성공사례였던 신생아집중치료센터(NICU) 모델을 확대 적용한 지역거점병원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고위험 신생아 치료는 첨단장비와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의료기관들은 경영 적자를 이유로 운영을 기피해왔다. 이에 복지부는 2008년부터 신생아 집중치료 병상이 부족한 지역 대학병원에 시설·장비비와 운영비 등을 100% 국비로 지원했다. 그 결과 미숙아 생존율은 2007년 83.2%에서 2015년 87.9%로 상승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정책이사를 맡고 있는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부교수는 “정부 지원으로 해당과 전문의들은 병원으로부터 적자주범이라는 비판 없이 환자만 볼 수 있게 됐다”며 “이런 시스템이 지역거점병원에 잘 갖춰진다면 서울 수도권으로의 환자 쏠림도 줄어 현장 의료진의 업무 과중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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