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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책&생각] 오스트랄로 ‘루시’보다100만년 빠르다…인류의 조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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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고인류학 패러다임 흔들어

한겨레

화석맨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끝없는 모험

커밋 패티슨 지음, 윤신영 옮김 l 김영사 l 3만2000원

“루시보다 앞선 화석, 인류 조상의 역사를 앞당기다”(<뉴욕타임스>), “인류 진화에 관한 이론을 뒤엎은 화석”(<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인류 가계도를 다시 그린 새로운 조상”(<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9년 10월. 화이트, 러브조이, 요하네스, 기다이 등 ‘아르디 팀’은 워싱턴 디시(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인류의 가장 오랜 조상으로 알려진 ‘루시’보다 100만년 앞선 440만년 전(플라이오세)에 산림지대에 거주했던 인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아르디)를 공개했다. 유인원 크기의 뇌, 다이아몬드 모양의 송곳니, 그리고 이상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과 인간의 특징이 조합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종이었다.

연구팀은 자세한 해부학 기술과 사진,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등을 포함한 384쪽 분량의 논문 11편을 <사이언스>를 통해 학계에 투하했다. (<사이언스>는 이때 아폴로 11호 달 착륙 때처럼 특별호를 발행했다.) 그 팀이 1994년 아프리카 동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가 지나는 에티오피아 저지대에서 관련 화석을 발굴한 이래 15년 만의 일이다. 통상적인 연구 기간을 훨씬 넘기며 비밀을 지킨 탓에 ‘고인류학계의 맨해튼프로젝트’라는 비아냥을 받았는데, 발표 내용이 핵폭탄급이었으니 맞는 말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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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트 제이 매터네스가 상상한 아르디의 모습. 부러지거나 발견되지 않은 뼈까지 그려 전체 골격을 표현했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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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처음 라미두스의 존재를 보고했을 때는 그간 알려진 인류의 조상 가운데 침팬지와 가장 닮았다고 설명했는데, 이번에는 인류 조상의 침팬지 유사설을 반박하는 것으로 뒤바뀌었다. 초기 인류를 현생 아프리카 유인원과 연결시키려는 기존 모든 학파를 깡그리 무시하는 내용이었다. 서식지가 숲이었음을 밝혀 기후변화로 숲이 사라지면서 걷기 시작했다는 사바나 패러다임의 종말을 선언하고, 인류 계통에 가지가 더 많다는 세분파에 맞서 아르디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가 여기에 속한다), 호모속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화석맨>(원제: Fossil Men·2020년 초판)은 아르디 팀이 에티오피아의 정변으로 인한 작업 중단, 원시 부족의 총격, 열대기후와 자칼의 위협 속에서 아르디를 발굴하고, 달걀 껍데기처럼 잘게 쪼개진 머리뼈를 포함해 신체 골격을 꿰맞추고, 기존에 발굴한 고인류, 고 유인원 화석과 비교하고, 현생 침팬지, 인간의 뼈와 대조하고,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등 이웃 학문의 성과를 빌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상술한다.

이 책의 두 축은 팀 화이트와 오언 러브조이. 존 덴버를 닮은 화이트는 <사이언스>에 논문을 기고하면서 ‘동료 평가’에서 빼달라고 요구한 인물이 한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적이 많았지만 작업에서만큼은 수도사와 같았다. 러브조이는 한때 창조론자였다가 고인류학자로 변신해 인간의 이동에 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밖에 치아 연구 분야에서 우뚝 선 스와 겐, 투옥과 고문을 이겨내고 에티오피아 최고의 고인류학자가 된 베르하네 아스포, 아르디 팀과 틀어진 ‘루시’의 발견자 돈 조핸슨, 수십년간 고인류 관련 발굴을 주름잡은 리키 가문 등이 등장한다.

지은이 커밋 패티슨은 ‘먼 거리를 걷고 달릴 수 있는 인간의 특이한 능력의 진화’라는 주제의 책을 구상하면서 아르디에 관해 한두 페이지 쓰려고 조사하다가 결국 8년을 빠져들었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기자 출신답게 철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현장답사를 거친 덕에 스토리가 탄탄하고 현장감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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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와 갈비뼈, 골반의 비교해부학. 왼쪽부터 마카크원숭이, 기번, 인간, 침팬지. 침팬지는 긴 엉덩뼈가 아래 허리뼈에 갇혀있고 허리가 뻣뻣하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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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침팬지, 아르디, 인간의 골반. 침팬지는 엉덩뼈가 길고, 볼기뼈 가운데에는 잘록한 협부가 위치하고 있다. 인간은 엉덩뼈가 회전해 좀 더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 아르디 복원 결과는 이족보행과 나무타기 요소가 결합돼 있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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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침팬지, 아르디, 인간의 발바닥뼈. 아르디의 뼈가 ‘쥐는 발’임을 보여준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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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침팬지, 아르디, 인간의 손뼈. 아르디는 길고 구부러진 손가락을 지녀 나무타기에 적합했다. 손바닥은 침팬지보다 짧고 엄지는 침팬지보다 상대적으로 길지만 인간보다는 짧다. 손목은 유연하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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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디가 발견된 곳의 지층은 인근 화산이 두차례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두 개의 응회암 지층 사이에 끼인 퇴적층. 화산암에 포함된 포타슘(칼륨)의 반감기로써 지층의 정확한 연대 측정이 가능했다. 아르디 팀은 항공사진을 통해 특정지층을 찾아내 집중 발굴하는 방식을 택했다.

발굴현장은 범죄현장 조사와 비슷했다. 팀원들이 서로 어깨가 닿도록 바짝 붙어 땅을 훑었다. 뭔지 모르겠다고? 일단 모아놓고 봐! 돌 같다고? 아무튼 가져와! 발굴은 반드시 오르막에서만 하도록 했다. 내리막에서는 눈이 화석에서 멀어져 놓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 화석은 부스러지기 쉬워 흙에서 파내기 전에 화학경화제를 뿌렸다. 밤에는 그 냄새를 좋아하는 자칼이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중요 부위가 모두 포함된 125개 이상의 뼈를 발굴했다. 루시처럼 여성이었다. 다음 10여년 동안 같은 종의 화석 36점을 추가했다.

발굴 이야기는 앞부분 3분의 1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자칫 지루할 발굴 이후를 다루는데, 책 읽는 맛은 거기부터다. 뼛조각은 뼛조각일 뿐. 분석하고 연구해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장정의 끝이 ‘루시보다 앞선 인류의 조상’인데 요체는 ‘첫 직립보행’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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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에톨리에서 팀 화이트.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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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와 클라크가 새로 발견한 화석을 침팬지 및 인류 머리뼈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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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디의 발은 이상했다. 나무 타는 유인원처럼 마주 볼 수 있는 발가락과 휘어진 발가락을 지녔고, 인류와 달리 아치가 없는 편평한 발이었지만 발 측면에는 땅을 미는 이족보행에 적합한 관절이 있었다. 후대의 인류처럼 충격을 흡수하기 좋은 단단한 뒤꿈치는 없었다. 러브조이는 입방뼈의 관절면이 윤이 나는 점에 주목했다.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종자뼈의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개코원숭이의 발에서, 1500만년 전 또는 2000만년 전 마이오세 유인원들의 발에서 관절면을 확인했다. 여기서 현생 아프리카 유인원들은 우리 조상의 발 연구에 적합한 모델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 밖에 아르디의 머리뼈 바닥면은 곧추선 척주 꼭대기에 그것이 위치해 있고, 골반은 나무타기와 땅 위의 직립보행 양쪽에 적응해 있으며, 넓은 엉치뼈와 짧은 볼기뼈 유연한 척주는 직립보행의 조건에 맞음을 밝힌다.

왜 이족보행으로 진화했을까. 직립보행은 무릎, 고관절에 충격이 가고, 허리가 망가지고 햄스트링이 끊어지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이동방식. 러브조이는 물건을 나르는 데만 편리하다며 먹을거리와 섹스를 교환하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위험한’ 내용이라 그는 단독명의로 논문을 냈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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