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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폭력 인정… "국가가 성매매 조장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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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정부가 성매매 조장·미군 의한 폭력 묵인"
대법, 1인당 300만~700만 원 국가 배상 책임 인정
"주변의 멸시와 차별 속에서 지낸 우리들이, (이제) 위로받을 수 있게 돼 감격을 느낍니다."
기지촌 여성 피해자 김숙자 할머니
한국일보

국내 주둔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국가배상소송 상고심 선고 판결 기자회견에서 원고인 김숙자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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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 선 기지촌 미군위안부 피해자 김숙자씨는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양공주'라는 멸시에서 벗어나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았다며 감격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김씨를 포함한 미군 기지촌 여성 95명에 대해 "국가가 1인당 300만~7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1950~1980년대까지 국가가 미군 주둔지 주변에 기지촌을 관리하고 성매매를 조장하는 폭력을 저질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속아서 왔는데도 정부가 묵인"…보건증 없는 위안부 강제격리도

한국일보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이 나온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원고들과 두레방, 사)햇살사회복지회 등 관련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이모씨 등 12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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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57년부터 미군 주둔지 인근에 위안시설을 지정하고, 1980년대까지 강제 성병 검진과 치료 등의 규정을 마련해 관리했다. 법령에 따라 성매매는 금지였지만, 미군위안부는 예외였던 것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무허가 직업소개소에 속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다른 생계 수단을 찾지 못해 유입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씨 등은 기지촌이 사실상 국가가 관리한 시설이었다고 주장했다. 관리 공무원들은 도망쳐 나온 여성들을 다시 성매매 알선업자에게 돌려보내기 일쑤였다고 한다. 미군이 기지촌 여성들을 폭행해도 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안부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며 미군에게 우호적으로 행동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성병검진도 받아야 했다. 1990년대 경기 의정부 보건소에서 근무한 문정주 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성병 검사) 도장이 없으면 여성들은 제재를 받고 '수용소(속칭 몽키하우스)'에 감금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감금된 여성 일부는 공무원이 무차별적으로 놓은 페니실린 주사에 쇼크로 사망하기도 했다.

법원 "국가가 성매매 정당화하고 조장…배상해야"


1심은 격리수용 치료에 한해 정부 책임을 인정했다. 국가에 의해 강제격리 경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57명에 대해서만 1인당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정부가 기지촌 성매매를 적극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보고, 모든 기지촌 여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여성들이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했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원고로 소송에 참여한 박영자씨는 이날 판결에 "너무 감격스럽다. 드디어 국가가 우리 얘기를 들어줬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소송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 해마다 언니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며 "하늘에 있는 언니들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처음 소송를 제기할 당시 참여했던 120여 명 중 현재는 95명만 원고로 남았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대법원 판결은 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정부가 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책임감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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