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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어이 없이 착한 기업 만들고, 4.2조원 통째 기부한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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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잘나가는 친환경기업 파타고니아의 비결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최근 미국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친환경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84) 회장이 회사를 통째로 환경 단체와 관련 비영리 재단에 기부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비상장사인 파타고니아의 지분은 쉬나드 회장을 비롯해 그의 아내(말린다), 2명의 자녀가 100%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는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에 달한다. 쉬나드 회장은 연 평균 1억달러(약 1390억원)가량의 회사 수익도 전액 환경 보호에 쓰겠다고 했다. 억만장자가 자산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공공 재단을 설립해 사회·환경 운동을 펼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아예 회사를 헌납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쉬나드 회장은 발표 후 “삶을 올바르게 정리할 수 있게 돼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 설립 후 지난 50년간 이처럼 상식에 반하는 일들을 숱하게 해왔다. 환경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면 회사를 먹여 살리는 제품이라도 생산을 중단했고, 유기농·재활용 원료를 쓰느라 단가가 몇 배 높아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파타고니아의 새 옷을 사지 말아 달라”는 불매 광고를 내기도 했다. 납품가를 후려쳐 가격을 낮추고, 기업 및 제품 홍보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여느 기업들과는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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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라운 건 이런 반(反)상식적 경영에도 파타고니아가 별 다른 위기 없이 수십 년째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전 세계 아웃도어 시장이 정체된 가운데서도 파타고니아는 연평균 10% 넘게 성장하고 있다. 이윤에 관심 없어 보이는 이 회사는 어떻게 돈을 벌고 성장할 수 있을까. WEEKLY BIZ가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과 성공 비결을 파헤쳐 봤다.

◇‘원칙’이 돈보다 앞선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 속에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을 기치로 내걸고 ‘착한 기업’ 행세를 한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이런 친환경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파타고니아의 전신(前身)은 쉬나드 회장의 이름을 딴 등산 장비 업체 ‘쉬나드 이큅먼트’다. 미 서부의 대자연 속에서 성장한 쉬나드 회장은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10대 시절부터 암벽 등반에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등반에 필수적인 피톤(망치로 때려 바위 틈 사이에 끼워 넣는 금속 못)은 당시만 해도 튼튼하지 못한 데다 현지 조달이 어려웠다. 이에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쓸 피톤, 카라비너 등의 장비를 만들기 위해 19세였던 1957년 고철상에서 석탄을 때는 화덕과 집게, 망치 등을 사들여 대장간 일을 시작했다.

이후 그가 만든 장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구매를 원하는 등반가가 늘었고, 주문이 폭주하면서 얼결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몇 년은 같이 등반하는 친구들을 불러 작업했다. 기업가가 될 마음은 없었고, 등반 적기인 5~11월 세계 각지를 떠돌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부업에 가까웠다. 사업 초기부터 그와 함께 일하며 13년간 파타고니아의 사업부장 겸 CEO(최고경영자)를 맡았던 크리스 맥디비트는 “이본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저는 산에 갑니다’라고 말하고 훌쩍 떠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베테랑 등반가였던 쉬나드 회장의 머리에서 나온 제품 아이디어와 제조 노하우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1970년에는 미국 내 등산 장비 시장 점유율이 75%에 이를 정도였다.



쉬나드 회장이 환경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피톤이 암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1970년대 초반부터다. 이에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매출의 70%를 차지했던 강철 피톤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손으로 바위 틈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암벽을 보호하는 알루미늄 ‘초크’를 개발하고, 초크를 이용해 친환경 등반(클린 클라이밍)을 하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쳐 등반 문화의 대전환을 일궜다. 공장에서 계속 피톤을 찍어냈다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자연과 함께한다’는 창립 원칙을 고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칙을 첫머리에 두는 경영 철학은 1973년 등반용 의류를 판매하는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이후에도 극단적인 친환경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가는 원동력이 됐다. ESG경영연구소인 이노소셜랩의 서진석 연구위원은 “환경·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쉬나드 이큅먼트가 이를 돌파한 방법은 파타고니아 철학의 기본 뼈대가 됐다”고 말했다.

◇비싸도 소비자 지갑 여는 ‘가성비’

선한 기업은 많지만 모두 파타고니아처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며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환경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제품·서비스를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히려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1985~1990년 사이 매출이 5년 만에 2000만달러에서 1억달러로 수직 상승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그 어떤 기업보다 높은 수준의 사회·환경적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파타고니아가 온갖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비결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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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파타고니아의 핵심 경쟁력으로 ‘우수한 품질’을 첫손에 꼽는다. 제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든 제품이라도 품질이 떨어지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파타고니아는 쉬나드 이큅먼트 시절부터 물건을 튼튼하고, 기능적이고, 단순하게 만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1980년엔 선박용 로프, 인조모피 등에 주로 쓰이던 폴리프로필렌(PP)이라는 합성섬유가 신축성과 방수성이 좋다는 점에 착안해 아웃도어용 기능성 내의로 처음 개발했다.

재활용 음료수 병에서 얻은 폴리에스터로 만든 원단 ‘신칠라’를 사용해 업계 최초로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플리스를 선보인 것도 품질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아웃도어 애호가들은 등산, 캠핑 등의 활동에서 편의성을 크게 높여주는 파타고니아 제품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쉬나드 이큅먼트 시절에도 장비 품질이 워낙 뛰어나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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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는 자사의 새 제품이 많이 판매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 회사다.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옷을 만든다 해도 탄소가 배출되고, 대량의 물이 소비되는 등 지구에 해를 입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는 고객들에게 "꼭 필요한 경우에만 새 제품을 구매하고, 망가진 옷도 최대한 수선해서 입어달라"고 당부한다. 파타고니아 재킷을 수선한 것을 나타내는 'worn wear' 마크를 부착한 고객의 모습.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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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는 기능 면에서 혁신을 추구하면서 내구성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옷을 한번 사면 오래 입을 수 있어야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환경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의 캠페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광고(2011년)도 내구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광고는 파타고니아 재킷이 재활용률이 매우 높은 상품이지만 그럼에도 물 소비, 탄소 발생 등의 측면에서 환경에 피해를 준다고 설명하며 되도록 새 상품 구매를 자제하고, 기존 제품을 계속 써달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파타고니아 제품은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워낙 오래 입을 수 있다 보니 ‘가성비’ 측면에서는 다른 브랜드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옷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제품을 본사로 보내면 수선, 대체, 환불을 보장하는 ‘철갑 품질 보증서(ironclad guarantee)’ 제도도 운영 중이다. 파타고니아코리아 최우혁 지사장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입던 옷을 손주가 물려받아도 될 만큼 내구성에 신경을 쓴다”며 “파타고니아의 미국 통합 물류 수선센터에는 1970년대 만들어진 옷도 심심찮게 입고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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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은 일관성과 투명성에서

엄격한 환경 기준을 준수하며 생산되는 파타고니아 제품은 나이키, 아디다스 등 다른 주요 스포츠 브랜드보다 최소 20~30% 이상 비싼 편이다. 주요 브랜드들이 할인 행사를 하면 2~3배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품질이 우수해도 가격 차이가 이 정도 나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소비자들이 흔쾌히 파타고니아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진정성 때문이다. 친환경인 척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에 신물 난 소비자들이 ‘사업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파타고니아의 대의(大義)에 동의해 ‘가치 소비’에 나서는 것이다.

ESG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30년 전 파타고니아는 회사 정관에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고 못박았다. 2018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로 사시(社是)를 바꿨다.

릭 리지웨이 파타고니아 부사장은 2017년 국내에서 열린 강연에서 “회사를 매각한 돈으로 환경 운동을 했을 때의 효과와 기업을 유지하면서 환경에 기여하는 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는데,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지구에 더 나은 것으로 결론이 났기에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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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이 이런 말을 진심이라고 믿어주는 건 이 회사가 30년 넘게 행동으로 보여온 일관성과 투명성 덕분이다. 파타고니아는 1980년대 초부터 순이익의 2%를 환경 단체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그 비율을 순이익의 10%(1985년), 매출액의 1%(1996년)로 꾸준히 늘려왔다. 이 밖에 요세미티 자연 복원 및 댐 해체 캠페인(1988·2014년), 폴리에스터·나일론·울·다운 재활용제품 생산(1993·2008·2010·2016년), 100% 유기농 면직 제품 생산(1996년), ‘지구를 위한 1%’ 단체 발족(2001년) 등 수없이 많은 친환경 사업 및 활동을 펼쳤다.

파타고니아는 기업의 환경 및 사회적 책임을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령 다운(거위나 오리의 깃털) 재킷을 만들 때 의류 생산 공장부터 시작해 다운 처리 공장, 도축장, 동물을 기르는 농장, 부화 농장, 알 생산 농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주체별로 환경·사회·동물복지 차원의 문제가 발생하는지 하나씩 체크한다. 재활용·유기농 제품도 해당 원재료를 납품받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 및 수거 단계부터 문제 요소가 없었는지 일일이 점검한다. 파타고니아는 이러한 활동을 기록으로 남겨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른 기업에도 관련 정보를 공유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실수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노동을 부당하게 이용하고, 환경을 훼손하고, 소비주의를 장려하는 산업에 참여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며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는 것도 진정성을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이 밖에 경영 철학에 공감해 크게 동기 부여된 직원들,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 데이터를 경쟁 업체에 공개해 자신들이 주도하는 분야의 외연을 넓혀가는 전략도 파타고니아의 성공 비결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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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진짜 힘은 ‘혁신’

파타고니아가 친환경 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는 것과 별개로 회의에 찬 목소리도 있다. 파타고니아처럼 극단적 친환경 정책을 펼치며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업이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 현대, SK와 같은 국내 대기업은 물론 대표적인 ‘착한 기업’으로 꼽히는 유니레버, 네슬레와 같은 기업조차 환경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처지다. 유니레버와 네슬레는 세계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 중 하나이고,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농산물을 수급하는 과정에서 삼림을 크게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마다 업종과 경영 환경이 모두 다르므로, 모든 기업들이 당장 파타고니아 같은 친환경 정책을 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파타고니아처럼 할 수 없다고 해서 파타고니아식 친환경 경영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멈춰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현재의 기후 위기 추세와 소비자 인식 변화, 각국의 친환경 정책 강화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현재 파타고니아식 경영은 가까운 미래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페트병으로 옷이나 신발을 만든다고 하면 허황된 얘기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익숙한 방식이 됐다. 마찬가지로 파타고니아처럼 옷을 재활용, 유기농 자재로 만드는 방식이 미래에는 일상이 될 수도 있다. ESG 컨설팅 및 임팩트투자업체인 엠와이소셜컴퍼니(MYSC)의 김정태 대표는 “파타고니아는 20~30년 뒤의 미래에서 혁신의 모티브를 가져온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밤낮없이 기술 개발에 몰두한다”며 “친환경 기업이기 이전에 뼛속까지 혁신 DNA를 가진 기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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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 회장이 4조2000억원 가치의 회사 지분 100%를 환경 재단에 기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그는 회사를 '지구 수호'를 위해 헌납하며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株主)는 지구"라고 밝혔다.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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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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