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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4,780살 먹은 나무가 살아 있다고? "지구는 식물의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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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식물의 세계
한국일보

극한 식물의 세계ㆍ김진옥, 소지현 지음ㆍ다른 출판ㆍ368쪽ㆍ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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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식물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유 국유림’에는 브리슬콘소나무가 분포해 있다. 그중에 하나는 오래 살았다 하여,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 산 인간(969세)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무 입장에선 당혹스럽기도 하겠다. 므두셀라 나이는 올해 기준 4,789살이다. 영겁의 시간을 보내며 석가모니와 예수,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본 나무다.

오래 산 배경도 경이롭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 날씨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고, 흙엔 영양분이랄 게 없다. 경쟁 식물은 사라진 지 오래, 나무들도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자라 산불에도 안전하다. 근검절약의 왕이다. 에너지를 아끼고 아껴 매년 둘레 성장이 고작 2.5㎜. 대신 줄기 조직이 매우 촘촘하고 단단해 균과 곤충의 침입을 완벽히 차단하는 옹골찬 식물이다.
한국일보

장수 식물인 브리슬콘소나무. 보호를 위해 실제 므두셀라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다(왼쪽).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을 피우는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위키미디어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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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정적이고 고요해 보이지만, 사실 어떤 생명보다 경이롭고 열정적이다. 극한의 조건을 견뎌내고 마하의 속도로 꽃가루를 발사하며 생존을 위해 동물 살을 찢는 데다, 성실한 곤충을 등쳐먹기도 한다. 책 ‘극한 식물의 세계’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고 진화해 끝내 살아남은 식물 31종을 소개한다.

어떤 식물은 정말 빠르다. 뽕나무 수술은 0.7마하의 속도로 꽃가루를 방출한다. 학자들은 그 속도를 촬영하기 위해 1초에 4만 장의 사진을 찍는 고속카메라를 동원했다. 파리지옥은 트랩처럼 변형된 잎에 앉은 곤충을 0.1초 만에 가둬 잡아먹는다. 반대로 안데스 산맥에 사는 푸야 라이몬디는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 10m 높이 거대한 꽃대 위에 2만 개의 꽃이 피는 모습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여왕처럼 보인다 하여 별명이 ‘안데스의 여왕’.

내부 수분을 99%까지 잃어도 물만 만나면 다시 살아나는 '불사신' 바위손, 달라붙은 식물을 옥죄어 죽게 만드는 ‘교살자’ 무화과나무, 스치기라도 하면 날카롭고 뻣뻣한 털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살식물' 짐피짐피 등의 사례는 눈을 의심케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스스로 동물인지라 우리 눈에는 동물만 보이지만, 지구는 식물의 행성이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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