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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거래 끊기니… 가구·가전·이사·중개소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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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없고 이사도 안가

관련 산업 매출 직격탄

서울에서 30년 넘게 이삿짐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요즘 직접 이사 현장에 나가 짐을 나른다. 임차료와 홍보비, 사다리차 비용 같은 고정비는 그대로이거나 올랐는데, 일감은 작년의 3분의 1 정도로 줄어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가을 이사철인데도 이달 일이 8건밖에 안 들어왔고 다음 달에는 이보다 더 적다”며 “보통 이사 한 건당 인부 4명 정도가 필요한데 인건비도 올라 예전처럼 일당을 주고 사람을 쓰면 남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 절벽’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부동산 중개업체, 이사 업체, 인테리어 업체, 가구·가전업체 등 부동산 거래에 영향을 받는 업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집을 사고파는 사람이 줄며 공인중개업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고, 이사 업체나 인테리어 업체 일감은 반 토막 났다. 코로나 기간 ‘집콕’ 특수를 누렸던 가구·가전 업계도 줄어든 수요와 원자재 가격 인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급매물이 아니고는 나오는 물건도 거의 없고 사려는 사람도 없다”며 “매매 거래는 그냥 실종 상태고 전세 계약도 많지 않아 매달 사무실 월세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사 안 가니 가구·가전 실적 ‘뚝’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7월 주택 매매 거래량은 34만986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6% 급감했다. 최근 5년 평균치와 비교해봐도 39% 줄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이 작년보다 56% 줄어 지방(-36%)보다 감소 폭이 크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보다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는 매매수급지수도 작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째 기준선(100)을 밑돌고 있다. 업계에선 ‘거래 절벽’을 넘어 ‘거래 단절’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정부가 세종시를 뺀 지방 모든 지역을 부동산 규제 지역에서 전면 해제하는 등 규제를 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이 계속되고 집값이 여전히 비싸다는 인식이 커 거래량 회복이 쉽지 않다고 본다.

집을 사고파는 사람이 줄어들며 관련 산업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소비재 중에선 가구·가전 제품 수요 둔화가 뚜렷하다. 대형 가구·가전의 경우 이사하며 바꾸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수요가 뚝 떨어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구 소매 판매액은 코로나 첫해인 재작년 10조18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급성장했고, 작년에도 9% 늘었지만, 올해 상반기 판매액은 5조24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5조4800억원)보다 줄었다.

주요 업체들 실적도 좋지 않다. 국내 가구 업계 1위 한샘은 지난 2분기 매출액이 5002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 줄었고, 영업이익은 21억5800만원으로 92% 급감했다. 현대리바트는 2분기 매출액이 3600억7200만원으로 2% 늘었지만, 2억8600만원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이케아코리아 역시 2022 회계연도(2021년 9월~2022년 8월) 매출이 전년 대비 10%가량 감소한 6186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에 진출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역(逆)성장한 것이다. 프레드릭 요한손 이케아코리아 대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 완화 뒤 (가구 대신) 여행 등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었고, 부동산 거래 건수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가전 시장도 불황이긴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 정보 업체 GfK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가전 시장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6% 줄었다. 국내 대표 가전 제품 33개의 판매액을 분석한 것으로, 온·오프라인 주요 유통망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제품군은 TV·에어컨·세탁기·냉장고 같은 대형 가전이다. 이 기간 대형 가전 매출은 전년 대비 8.7% 쪼그라들었다. 생활가전(-7.2%)과 주방가전(-3.6%) 역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거래가 줄어든 것뿐 아니라 집값이 내림세인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집값이 오를 땐 고가의 가전·가구 제품을 사는 데 심리적 저항감이 덜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고가 제품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줄어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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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중개 소상공인도 직격탄

동네 곳곳의 소상공인도 부동산 거래 절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업종은 계약 건수가 곧 수입인 공인중개업소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공개중개소 폐·휴업 건수(1066건)는 신규 개업 건수(906건)를 넘어섰다. 올 들어 신규 개업 건수에서 폐·휴업 건수를 뺀 순유입이 1월 934건, 3월 575건, 5월 460건, 7월 61건으로 꾸준히 줄어들다가 지난달엔 아예 폐·휴업이 개업을 역전한 것이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대전·충북·경기 북부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에서 폐·휴업이 개업보다 많았다. 협회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문을 닫더라도 권리금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리겠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임차료 감당이 안 돼 일단 빨리 처분하고 싶다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협회 홈페이지 중개사무소 매매(양도) 게시판에는 23일 하루에만 100여 건의 중개사무소 매매(양도) 물건이 올라왔다. 업계에선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며 매매 거래가 급감한 데다 2년 계약 갱신을 보장한 새 임대차법으로 전세 거래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다 최근 문을 닫은 B씨는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인데도 계약이 너무 없어 부동산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동네 인테리어 업체와 이삿짐 업체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포장 이사 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최근 일감이 줄어 5톤짜리 트럭 한 대를 정리하고, 아파트 이사 외에 원룸 이사도 함께 하고 있다. C씨는 “일을 따내려고 다들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분위기인데 그렇게 하면 하루에 두 탕씩 뛰어야 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가 없다”며 “다들 제 살 깎아 먹기 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때 반짝 특수를 맞았던 인테리어 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사상철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 회장은 “인테리어 업계 일감은 거의 부동산 거래 건수와 똑같이 흘러간다고 보면 된다”며 “지금도 일감이 없어 노는 업체가 많은데 내년 봄쯤엔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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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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