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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 급증…R의 공포 속 복합위기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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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골든아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같은 긴박함 때문에 비상 경영 시행이 불가피하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중간 지주사인 현대제뉴인 손동연 부회장이 최근 밝힌 담화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건설기계 계열사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가동했다. 조직 효율화, 현금 확보에 주력하면서 수익이 낮은 제품 비중을 줄이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 세계 최대 건설기계 시장인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여파로 수요가 급감하는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28만대의 건설기계가 판매됐다. 하지만 올 상반기 중국 시장 판매량은 9만대에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19만대) 대비 절반 이상 급감한 수치다. 현대중공업그룹 건설기계 계열사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20%, 12%에 달한다(올 1분기 기준). 두 회사 모두 중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등 공격 경영을 펼쳤지만 최근 수요가 꺾이면서 실적 부진 우려가 커졌다. 현대건설기계의 2분기 영업이익은 3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감소했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코로나 확산으로 건설기계 수요가 위축된 데다 원재료, 운임 등 비용이 급증해 현대건설기계 실적이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이들 회사는 담화문에서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지금 고삐를 당기지 않으면 단기 실적도, ‘2025년 글로벌 톱5 달성’ 목표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서는 야심 차게 추진해온 대우조선 인수가 무산된 상황에서 또 다른 주력 사업인 건설기계 실적마저 악화돼 내부적으로 고민이 크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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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은 2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음에도 최근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사진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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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비상 경영 돌입

▷실적 좋아도, 현금 확보 안간힘

한국 경제에 복합 위기 경고등이 켜지면서 기업마다 대책 마련에 부심하다.

현대중공업그룹 외에도 포스코, 롯데 등이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7월 최정우 회장 주재로 열린 ‘그룹경영회의’에서 전사 차원의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기로 했다. 지주사 포스코홀딩스가 2분기 23조1000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고, 18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음에도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반기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철강 판매 가격 하락으로 포스코홀딩스와 자회사 포스코의 3분기 영업이익은 2분기보다 각각 34%, 37%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 힌남노 피해로 공장 가동을 멈추면서 2조원가량 매출 손실을 입었다.

최 회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요 위축, 비용 상승, 공급망 위기 등 복합적인 경제 충격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그룹 차원 비상 경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향후 사장단과 전 임원이 참석하는 그룹경영회의를 매 분기 열고, 경영전략팀을 중심으로 ‘전사 통합 위기 대응팀’을 가동하기로 했다. ‘현금 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밀마진(철강 판매 가격에서 원료비를 제외한 부분)’ 등 수익성 확보에 나서고, 해외 법인 리스크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최근 부산에서 연 사장단 회의에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변화한 사업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비상 경영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원화값 하락으로 환율 리스크에 시달리는 기업도 적잖다. 유류비, 항공기 리스료 등 운영비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 업계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다. 원화값이 10원 하락하면 대한항공은 약 3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84억원의 환손실이 발생한다. 실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 환율 변동으로 각각 2051억원, 2747억원 환손실을 입었다.

아예 임금을 삭감해 위기 대응에 나선 기업도 있다. 한국타이어그룹 지주사 한국앤컴퍼니는 지난 4월부터 전 계열사 임원 임금을 최대 20% 삭감하는 등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중소기업 현장 분위기도 심상찮다. 경기도에서 전자부품 제조업을 하는 B대표는 최근 공장 가동률을 70% 아래로 줄였다. 올 들어 시장에 내놓지 못한 재고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외로 수출하는 기계 물량이 꽤 많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확 꺾였다. 연내 재고를 소진하지 못하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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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어렵기에

▷2분기 재고 18% 급증…IMF 이후 최고

기업들이 잇따라 비상 경영을 선언한 것은 환율, 금리, 물가 등 이른바 ‘3고(高)’ 악재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6.9를 기록했다. BSI가 9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셌던 2020년 10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올 들어 BSI는 3월 102.1로 고점을 찍은 뒤 5개월 만에 15.2포인트 떨어졌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기업 경기에 대한 긍정적 전망보다 부정적 전망이 많다는 뜻이다.

기업 재고도 계속 쌓여가는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분기 국내 제조업 재고지수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8%에 달했다.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분기(22%)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폭이다. 재고지수는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기 예측을 위한 주요 경제 지표 중 하나다. 지난해 3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조업 재고가 증가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세로 기업들이 제품 공급 물량을 늘린 영향이 크다. 연초 국제유가,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비해 기업들이 원자재를 초과 확보, 생산해 투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기업 예상과 달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제품 출하가 늦어졌고, 세계 각국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로 수요가 부진했다. “재고지수가 치솟은 것은 대외변수에 따른 일시적 조정이 아닌 본격적인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라는 것이 대한상의 분석이다.

심지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기업도 급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계 기업 수는 2823곳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2283곳) 대비 23.7%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기계장비, 전자부품 등 제조업 비중이 40.4%(1141곳)로 가장 높았다. 한계 기업이란 영업활동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기업으로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이 1 미만인 기업을 뜻한다.

기업들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 고용, 시설 투자가 줄어드는 만큼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경기가 악화되면 한계 기업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산업 안보와 미래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기업을 지원하고, 안정적인 공급망 확충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업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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