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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정부가 끌고 재계가 밀지만…한국 지지 선언 아직 없는 '2030 부산 엑스포'[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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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부산 엑스포 유치' 국정과제로
삼성 31개국·SK 24개국 등 전담국 할당
초반, 사우디의 '오일머니' 공세에 밀려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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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지원위 전략회의 및 민간위 출범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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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가 한창이던 23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주재로 ‘한국의 밤’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에는 주유엔 대표부에 파견된 10여 개국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참석자 면면이 흥미롭습니다. 잠비아에서는 유엔 대사가, 미국 일본 스위스 에스토니아 이스라엘 멕시코 등에선 차석 대사가 다녀갔습니다.

언뜻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 국가 외교관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을까요. 바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달려드는 ‘2030 부산 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에 한 표를 행사할 투표권이 있는 것이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엑스포 유치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 회장이 일종의 선거운동을 한 셈입니다.

이에 못지 않게 또 다른 재벌 총수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유치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입니다. 그는 추석 연휴를 전후로 네덜란드 총리에 이어 멕시코와 파나마 대통령을 직접 만나 부산 엑스포 개최 지지를 요청했습니다. 삼성 각 계열사 임원들도 스페인 베트남 네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각 대륙의 관계자들을 만나 한 표를 호소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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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파나마시티에 위치한 파나마 대통령궁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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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이들 국가를 포함해 캄보디아 피지, 동티모르 등에 부산 엑스포를 홍보하는 옥외광고까지 설치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강력한 엑스포 드라이브를 걸면서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엑스포 유치 선봉에 서고 있습니다. 삼성이 맡은 홍보 전담국가는 31개국에 달합니다. 이외에 SK(24개국), 현대차(21개국), LG(10개국), 포스코(7개국), 롯데(3개국) 등이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엑스포 유치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대전ㆍ여수엑스포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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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제38회 부산-서울간 대역전경주대회에 참가한 선수가 93대전엑스포 행사를 알리는 선전탑 옆을 달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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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재계는 2030년 부산 엑스포 개최에 그야말로 사활을 건 모양새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엑스포 유치를 국정과제로 채택하는가 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벌 총수들에게 전담국까지 일일이 지정해 할당하며 압박 아닌 압박(?)에 나섰습니다.

외교부는 재외공관에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을 공관장 인사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지침까지 내렸고요. 여기에 요즘 해외 한류 열풍의 가장 핫한 주인공인 이정재와 방탄소년단(BTS)을 홍보대사로 위촉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엑스포 유치에 난리일까요. 정부가 추산한 경제효과는 무려 61조 원이나 됩니다. 한국 경제에 불어넣을 새 바람을 넘어 엑스포를 통해 판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엑스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제ㆍ산업ㆍ문화’ 분야 올림픽입니다. 1851년 ‘만국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영국 런던에서 열린 것이 시초인데요. 영국은 당시 증기기관차를 처음 선보이며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에펠탑 역시 파리 엑스포의 히트 상품이었고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서양 화가 반 고흐의 그림에서 유독 일본 색채가 강하게 풍기는 것도 일본이 1867년 파리 엑스포 때 판화를 전 세계에 소개한 영향이라고 합니다.

엑스포는 우리에게도 낯선 단어는 아닙니다. 1993년 마스코트 ‘꿈돌이’를 내세운 대전엑스포가, 2012년에는 여수엑스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정 엑스포’라 불리는 일종의 간이 엑스포로 차원이 다릅니다. 이번에 부산이 도전하는 ‘등록 엑스포’는 5년마다 열리는 ‘본 게임’인 반면 인정엑스포는 그 중간중간에 쪼개서 개최되는 ‘미니게임’인 셈이죠.

6개월간 진행되는 등록 엑스포는 개최국이 부지만 제공하면 참가국이 자국 경비로 알아서 전시관을 세웁니다. 이에 반해 3개월간 열리는 인정 엑스포는 개최국이 각 국가의 전시관을 세워 참가국에 임대하는 구조입니다. 두 엑스포의 규모와 위상이 하늘과 땅 차이나 마찬가지죠. 2030년에 열리는 등록 엑스포에 부산을 비롯해 사우디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 우크라이나 오데사가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투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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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오른쪽), 박형준 부산시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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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내년 11월 선거에서 판가름납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올림픽과 달리, 엑스포는 170개 BIE '회원국'의 선택에 달렸는데요. 국가가 크든 작든,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공평하게 똑같이 1표를 행사합니다. 따라서 이들 170개국의 표심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최초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지지를 얻은 국가가 없으면 최저 득표국을 떨어뜨리고 또다시 투표를 하는데요. 이후 투표에서도 3분의 2 이상 얻은 국가가 나오지 않으면 최종 2개국이 남을 때까지 진행하고 마지막 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은 국가가 유치 자격을 얻습니다.

자연히 투표가 임박하면 '표 계산'을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될 겁니다. 유치를 희망하는 입장에서 최대 관건은 공들였던 국가들이 투표장에서 지지 약속을 지키느냐 여부일 텐데요. 하지만 실제 투표에서 어느 회원국이 뒤통수를 친다 해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지는 데다, 각 회원국을 대표해 투표장에 누가 들어가는지도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투표함을 열 때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투표자는 각국이 정하기 나름인데요. 통상 BIE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주재 대사나 BIE를 별도로 전담하는 외교관이 투표장에 간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딴 마음을 품고 국가 방침이 아닌 개별 선호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해도 대통령이 알 수 없는 구조인 거지요. 외교부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보면 우리가 계산한 것보다 실제 득표수가 덜 나왔다”며 “그런 상황까지 감안하고 유치전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에선 “한국을 뽑겠다” 해놓고서 투표할 때는 지키지 않은 이탈표가 적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우디 오일머니 공세, '표 매수행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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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사우디를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알 살람 왕궁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는 모습. 제다=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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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탈표 걱정’이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현재 판세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의 경우 57개국이 가입한 이슬람협력기구(OIC)를 포함해 프랑스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모로코 등 최소 60여 개국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한국을 뽑겠다”고 입장을 밝힌 국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박진 외교부 장관은 26일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교섭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많은 국가들이 아직 지지 국가를 결정하지 않았다"며 "최종 투표까지 시간이 충분이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데 주력했습니다. 정부는 현재까지 비공개로 우리나라 지지를 표명한 국가를 20여개국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우디 실권자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2030 엑스포 유치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습니다. 2017년 권력을 잡은 그는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경제 구조를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핵심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선포했는데요. 이를 구현할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네옴시티’ 완공 시점 역시 2030년입니다. 이에 같은 해 엑스포 잔치까지 함께 벌여 ‘비전 2030’의 완벽한 성공을 보여주겠다는 구상입니다.

사우디의 오일머니 공세가 ‘페어 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건 아닐까요.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회원국에 접근하는 것이 표를 돈으로 사는 '매표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딱히 문제삼기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도 유치 공약으로 사회 공헌 차원에서 개도국에 공적개발원조(ODA)를 약속하는데, 이 역시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사우디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좀더 정교한 전략으로 사우디 오일머니 공세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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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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