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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성덕' 오세연 감독 "'성덕'에서 '실덕'..'덕질' 통해 사회생활 배워"[SS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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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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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사진|오드


[스포츠서울 | 조현정기자]“‘성덕’(성공한 덕후)에서 ‘실덕’(실패한 덕후)이 됐지만 ‘덕질’을 통해 사회생활을 배웠다. ”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은 세상의 전부였던 ‘오빠’가 어느날 범죄자가 되며 상처받은 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중학생이던 2014년 MBC ‘별바라기’에 출연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정준영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은 자작시를 직접 들려주는 등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성공한 덕후였던 오세연(23) 감독은 5년 뒤 실패한 덕후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 정준영이 2019년 일명 ‘버닝썬 게이트’로 수사받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만들고 단체 톡방에 유포한 성범죄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 감독을 비롯한 많은 팬들이 ‘탈덕’(덕질을 그만두는 것)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같은 오 감독의 경험이 영화 ‘성덕’의 출발점이 됐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배급사 사무실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오 감독은 “처음에 사건이 터졌을 땐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주변에서 얘기를 듣고 나랑 비슷하게 상처를 받고 떠난 팬들만 있는 게 아니라 (스타를) 옹호하는 팬들도 있다는 걸 알게돼 남아있는 팬과 떠난 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진학한 오 감독이 실제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팬 10여명을 3년간 인터뷰해서 만든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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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사진|오드


◇‘성덕’에서 ‘실덕’으로...팬들의 목소리 들어봐

영화에 등장하는 팬들은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정준영 뿐만 아니라 승리, 강인 등의 ‘오빠’를 옹호하는 대신 거침없이 분노와 저주의 말을 내뱉고 자신의 덕질이 ‘오빠’의 범죄를 도운 것 같아 자책하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오 감독은 범죄를 저지른 스타를 지지하는 팬들을 이해해보려고 한 정치인 팬클럽의 집회 현장에 나가 태극기를 들고, 편지를 쓰기도 한다.

스타에게 배신감을 느낀 팬들의 심경을 여과없이 드러낸 인터뷰이에 대해 “덕후 중 유명한 분들도 많고 좀더 깊이 경험한 분들도 있을텐데 그런 분들을 찾아나서야 할까 고민했다가 영화를 목적으로 처음 만나 얘기하면 솔직한 대화를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나도 그랬다’며 자신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 것 자체가 사회적인 현상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 인터뷰이를 주변 친구들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한 친구들일수록 일상에선 짤막하게 대화하는데 그렇게 한명 한명이 시인이 될 줄 몰랐다. 친구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탄식을 많이 했는데 친구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고 나한테는 큰 복이었다”며 “그동안 누가 물어보지도 않고 먼저 드러내기도 그래서 말하지 않았을 뿐 진심에서 우러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아 듣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나온게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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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통해 사회생활 배워...덕질 장려 영화

통상 미디어의 비친 팬덤의 모습은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곤 한다. 그는 “팬덤이라고 해서 똑같은 사람들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100명의 팬이 있으면 100개의 덕절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팬들 개개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성덕에서 실덕에 이은 탈덕까지 경험한 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부모님들이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덕질을 하며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스스로 많이 얻었다. 연예인을 보려고 가는 거지만 팬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많이 하는데 팬들은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만 같고 나이대나 평소 생활환경 등 나머지는 다 다르지 않나. 그런 사람들과 어린 시절부터 만나서 학교 바깥의 다른 사회와 만나 덕질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배운 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팬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진다. 덕질을 통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최대치를 경험한 것 같아 일생일대의 경험이었다. 우리 영화는 덕질을 장려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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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덕’의 한 장면.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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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에는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기 3년 전인 2016년 정준영 불법 동영상 촬영 혐의를 처음 보도했던 본지 박효실기자가 주요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오 감독은 “박 기자님과 2~3시간 대화를 많이 했는데 편집이 많이 돼 아쉽다”면서도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박 기자님이 등장하는 장면 덕분에 팬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만 하기 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게 보여 영화가 확장됐다고 얘기해 주더라”고 고마워했다.

◇차기작? 세상 사람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작품 만들고 싶어

우상이었던 스타에게 배신당한 팬들의 목소리를 담은 신선한 이야기와 대법원 방문, 굿즈 장례식, 정치인 팬덤 집회 참가 등 MZ세대다운 블랙코미디가 적재적소에 어우러져 ‘성덕’은 지난해 제26회 부사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돼 화제가 됐고 광주여성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인천인권영화제, 마리끌레르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 런던아시아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오 감독은 “우리 영화를 자극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보고 나면 좋아하는 마음 자체에 대한 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었는데 특수한 상황에 처한 팬들이지만 팬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 누군가의 덕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해봤고 실망해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대학 진학 후 내놓은 첫 영화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오 감독의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될까. 그는 “첫 영화를 꽤 긴 시간 찍었고 잘 돼서 개봉까지 하게 됐는데 학교로 돌아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졸업하기 위해 찍어야 하는 단편 영화도 있다”며 “평소 작은 실마리 하나라도 내가 경험했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들었거나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다. 작품의 의미로 봤을 때 잘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다음 작품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음달 ‘성덕’의 제작기를 담은 덕질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도 출간할 계획이다. “카메라를 들 힘이 없을 때까지, 타이핑할 힘이 없을 때까지 꾸준히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에겐 영화 ‘성덕’이 사건 이후 팬들의 마음을 생각못했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내가 만드는 영화나 책이 사람들에게 자기 시야안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 사람의 시야에서 다 담을 수 없었던 세상을 보여주는 시야를 넓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hjcho@sportsseoul.com

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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