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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전국서 모인 12~42세 여성 17명, 아이스하키판 ‘우생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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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번째 女클럽 ‘드림링커스’

리그 참가하며 매주 4시간 훈련… 평창올림픽 뛴 조수지씨가 감독

포항서 8시간 왕복 13세 소녀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 될래요”

조선일보

지난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제니스아이스링크장에서 드림링커스 선수들이 수원시청 실업팀과의 경기 중 최정현 코치의 지휘를 받고 있다. /드림링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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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해. 모든 걸 쏟아붓는 거야!”

지난 23일 오후 6시쯤 서울 구로구 제니스아이스링크장 라커룸. 아이스하키 클럽팀 ‘드림링커스’ 조수지(28) 감독의 단호한 말에, 15명의 여성 선수가 “네!”라고 힘차게 답했다. 이들은 유니폼과 각종 보호대를 갖춰 입고 링크로 향하며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쳤다. 지난 8월 창단한 드림링커스는 국내 두 번째로 여성 선수로만 구성된 아이스하키 클럽팀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기관인 영리더스 프로그램의 비영리 스포츠 육성 사업으로 2년간 후원을 받는다. 여성으로만 된 클럽팀은 2016년 ‘전주한옥마을’팀이 최초다. 한 발 더 나아가 드림링커스는 선수 17명과 코치 5명 모두 여성이다. 지난 18일 시작된 국내 첫 여성 아이스하키 정식 리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날이 이들의 세 번째 경기였다.

이 팀은 “한국에서 여성은 아이스하키 꿈을 꾸기 어렵다”는 현실의 벽에 도전하고 있다. 국내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생긴 것은 1998년, 하지만 여성 프로팀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거치면서 생긴 수원시청 실업팀 하나뿐이다. 초등학교~대학교 가운데 학교 운동부는 남춘천여자중학교 한 곳이다. 아이스하키를 직업으로 삼는 건 물론 취미로도 할 기반 자체가 취약하다. 그런 와중에 열두 살부터 마흔두 살까지 나이도, 여건도 제각각인 이들은 이번 리그 참여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 7시 30분부터 경기 수원시나 과천시 등에 모여 밤 11시까지 훈련을 받고 헤어졌다. 아이스하키 경기를 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이들에게 이 팀이 생긴 것은 흔치 않은 기회라서다.

팀에서 골리(골키퍼)를 맡고 있는 이승아(13)양은 포항에서 살아 훈련이나 경기를 위해 수도권까지 매주 차로 왕복 8시간 길을 온다. 어릴 때 남자 아이스하키 동호회에서 골리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이스하키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매일같이 아이스하키협회 홈페이지를 뒤지며 18세 이하 여자 대표팀 선발 공지를 확인할 정도였지만, 최근엔 선수의 꿈을 접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국내 여건 때문이다. 승아양은 “그런 찰나에 드림링커스 선수 모집을 알게 돼 꿈을 포기하지 않게 됐다”면서 “왕복 8시간을 운전해주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김지유(12)양도 훈련이 있는 날이면 왕복 4시간 거리를 달려 온다. 그는 평소 클럽팀에서 아이스하키를 하지만, 지유양이 유일한 여성이다. 힘이나 키 등 신체 조건이 달라 함께 연습하고 경기하는 게 힘이 부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 김주용(41)씨는 “여성 아이스하키는 학교 운동부도 없고, 실업팀도 하나라 차라리 아이스하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야 하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의 꿈을 접었다가 이번 기회에 다시 꺼내든 이도 있다. 안재명(26)씨는 대학교 1학년 때 아이스하키 동아리를 하며 이 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져 직업 선수를 꿈꿨다고 했다. 안씨는 “클럽팀 2곳에서 활동하며 매달 70만원씩 써가며 1년간 훈련도 했지만 현실의 벽을 깨닫고 취업해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고 했다. 그는 드림링커스를 통해 다시 한번 프로 선수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드림링커스 감독이자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에서 부주장을 했던 조수지씨는 “국가대표 선수들조차 연습경기를 하려고 해도 여자팀이 없어 해외로 가거나, 남자 중학생들을 상대했다”면서 “새 여성 클럽팀이 생긴 것을 계기로 국내에도 한 걸음씩 변화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IOC 영리더로 드림링커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총괄한 이상은(25)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 전문 요원으로 일할 당시 남북단일팀 이슈로 집중된 관심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걸 느꼈다”며 “아이스하키 선수의 꿈을 키우는 여성들이 마음껏 운동하고 실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고 이런 도움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노력 중이다”고 했다.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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