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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나라 밖 떠도는 문화재 안타까워…조선 관리 ‘묘지’ 일본서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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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재일동포 고미술품 전문가 김강원 대표

한겨레

재일동포 사업가 김강원 대표가 28일 조선시대 백자도판 묘지(墓誌) 기증식에 참석하고자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을 찾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고미술품 유통업을 하면서 우리나라 유물을 종종 보지만 대부분 내력이나 출처가 불분명해 안타까워요. 그런데 ‘묘지’(墓誌)는 워낙 기록도 분명하고 원소유주도 명확해 그 후손들에게 돌려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난해 직접 사들여서 전달할 방법을 수소문했지요.”

일본 도쿄에서 ‘청고당’을 운영하는 재일동포 김강원(54) 대표가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와 ‘백자철화 이성립 묘지’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한국에 기증하게 된 연유다. 그는 어떤 보상이나 조건도 없이 무상기증했다.

고인의 행적을 적은 돌이나 도자기판인 묘지는 묘지석 또는 지석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조선시대 유교 풍습에 따라 관과 함께 묘지를 매장했는데, 개인이나 문중사를 넘어서 시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28일 경북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묘지 기증·기탁식에 참석한 김 대표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고인 행적 기록한 조선시대 ‘묘지’ 발견

영조 때 문신 ‘의성김씨 김경온 묘지’

인조 때 무신 ‘경주이씨 이성립 묘지’

사비로 구입…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도쿄 고미술거리 22년째 ‘청고당’ 운영

“나라밖 떠도는 문화재들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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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 문신인 1755년 의성김씨 김경온의 ‘백자청화 묘지’.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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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때 무신 경주이씨 이성립의 ‘백자철화 묘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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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증한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는 영조 2년(1726) 진사시에 1등으로 급제해 건원릉 참봉을 지낸 의성 김씨 김경온(1692~1734)의 묘지로 1755년 제작된 것이다. 참봉은 능이나 원 또는 종친부·돈령부 등 여러 관아에 속했던 종9품 벼슬로, 김경온은 관직에 오른 뒤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전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묘지는 총 5장으로 된 구성이 완전히 남아있다. 희고 부드러운 백토로 만든 판 위에 청화 안료를 사용해 정자로 바르게 쓰인 묘지문이 선명하다. 특히 이 묘지는 조선시대 사옹원(궁중의 음식에 대한 일을 맡던 관아)에서 쓰는 사기를 만들던 분원에서 청화백자 묘지를 민간용으로 구워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백자철화 이성립 묘지’는 조선 인조 때 무관으로 급제한 경주 이씨 이성립(1595~1662)의 묘지이다. 묘지 내용을 보면, 이성립이 묻힌 장지는 평안도 철산 지역으로, 지금의 북한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사 안료를 써 문양을 내는 철화 기법과 음각을 활용했고, 2장의 묘지가 분리되지 않도록 마주 포개어 묶는 데 쓴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어 제작 방식 또한 독특하다. 다른 묘지와 비교하면 내용은 간결한 편이나 17세기 후반 조선 변방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관들의 혼맥과 장례 등 생활사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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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8일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김강원(오른쪽 여덟번째) 대표가 참석한 ‘묘지 기증·기탁식’이 열렸다. 경북도 제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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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묘지 기록의 주인이 분명한 덕분에 각각 500년, 300년 만에 조상의 유품을 되찾게 된 두 문중에서는 답례의 마음을 전하고자 김씨를 초청해 기증식을 열었다. 또 유물을 오래도록 안전하게 보관하고 연구하고자 기록문화유산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기로 했다.

의성 김씨 문중의 한 후손은 이날 “조상의 묘를 이장하며 새로 묘지를 써서 묻고 기존의 묘지는 집안에서 보관한 것으로 안다”며 도굴품이 아니라 보관본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증식에서 두 문중의 후손들이 고마워하는 한편으로 어떻게 일본으로 유출됐는지 안타깝다고도 했어요. 저 역시 기쁘면서도 착찹했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부친이 인사동에서 고미술품 매매업을 했지만 특별히 관심이 없어 대학에서도 이과 계열을 전공했단다. 졸업 뒤 뒤늦게 부친의 권유로 일본 지인을 소개받아 도쿄로 건너온 그는 일본인 갤러리에서 7년간 실무 경험을 쌓은 뒤 2000년 부친의 상호였던 ‘청사당’을 본떠 ‘청고당’을 열어 독립했다. 청고당이 자리한 도쿄 츄오구의 니혼바시-쿄바시 거리는 태평양전쟁 이후부터 고미술·공예·일본화·근대 회화·조각·판화 등 약 150개의 노포 고미술점이 밀집해, 긴자에 버금가는 미술의 명소로 유명하다.

“우연히 묘지 거래 소문을 듣고, 일본은 매장을 잘 하지 않아 묘지를 만드는 문화도 없어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 하니 후손에게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일본인 소장자를 설득했어요. 앞으로 묘지를 잘 활용해달라는 뜻을 전하고 싶어 기증식에도 참석했고요.”

김 대표는 “지금도 나라 밖을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가 많다. 우리 역사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문화재는 국가 차원에서 반환을 위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기회가 되면 또 기증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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