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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속이고 튀었다” 론스타 판정문 공개…“韓책임 0” 소수 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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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6년 3월 30일 검찰이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내 론스타코리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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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선고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대 한국 정부의 국제투자분쟁 소송과 관련해, 법무부가 411쪽에 달하는 판정문 전문을 28일 공개했다.

법무부는 “정부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중재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판정문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고, 론스타 측도 판정문 공개에 동의하였다”라며 “사인의 개인정보와 외교기밀에 관한 사항 등 공개가 불가능한 최소한의 내용을 제외하고 판정문 원문을 그대로 공개한다”라고 밝혔다. 판정문 전문은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 판정부는 론스타가 배상금으로 요구한 46억7950만 달러 가운데 2억1650만 달러만을 인정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매각하는 과정에서 한국 금융 당국이 부당한 목적으로 지연시켜 매각 가격이 4억 3300만 달러만큼 낮아진 점만 문제 삼은 건데, 론스타와 한국 정부에 반반씩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고 한국 정부에 “4억 3300만 달러의 50%인 2억 1650만 달러를 론스타에 배상하라”라고 선고한 것이다. 한화(1440원/달러)로 계산하면 이자를 제외하고 3100억원가량이다.



“론스타, 속이고 튀었다…검찰수사 직전 철수 시점 유감”



판정문 전문에 따르면 론스타의 잘못은 한마디로 “속이고 튀었다”라고 요약된다. 판정부는 “론스타는 ‘먹고 튀는(Eat and Run)’ 투자자의 일반적 속성 외에도 심각한 금융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속이고 튄(Cheat and Run)’ 투자자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론스타가 한국에서 철수를 시도한 시점이 유감스럽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헐값 논란을 일으키고 2006년 1월 매각 추진을 발표했다. 그런데 매각 추진을 착수한 시점은 2005년 9월 시민단체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을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를 준비하는 시기와 겹친다. 이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6년 3월부터 네 갈래(외환은행 헐값 매각 및 비자금 조성, 론스타 탈세, 외환카드 주가조작)로 론스타 측을 강도 높게 수사했다.

수사 결과 특히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외환카드를 헐값에 인수·합병하기 위해 ‘허위 감자(減資)설’을 퍼트려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2012년 2월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다. 론스타 펀드 법인은 벌금 250억원을 확정판결 받았다.

판정부는 “주가조작 유죄 판결로 인한 한국 금융위원회의 외환은행 주식매각 명령에 따라 론스타 측은 2012년 5월 18일 이후 외환은행의 대주주 지분을 더는 보유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금융당국이 매각가격 인하를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라고 밝혔다.

또한 판정부는 “론스타가 자신들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다른 해외 투자자들은 유죄 판결의 낙인이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2022년 9월 2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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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정치적 압력이라는 부적절 동기로 매각 지연”



반면 한국 정부는 ‘부적절한 동기’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판정부는 “사인 간 계약 조건에 관여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권한 내의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외환은행 매각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했다”라며 “가격 인하를 달성할 때까지 승인심사를 보류한 것은 금융당국의 규제 권한을 자의적이고 악의로 행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금융위원장에게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가격 인하 이후에는 가격 인하 성공을 축하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책임 0”이라는 소수 의견…한 푼도 안 낼 길 열까



법무부는 판정문 내 소수의견에 근거해 2억 1650만 달러 배상 선고가 취소되도록 판정 취소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소수의견을 낸 인물은 한국 정부 측 중재인인 프랑스 파리1대학의 브리짓 스턴 명예교수로, 그는 한국 정부의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우선 스턴 교수는 “한국 금융위가 명시적으로 인수자인 하나은행 측에 매각 가격 인하를 지시한 증거가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는 “금융위가 매각 가격 인하를 원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파악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는 정황일 뿐”이라며 “단순 정황에 의존해 국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전례도 없다”라고 밝혔다.

혹여 명시적인 가격 인하 압력이 있었을지라도 문제가 없다는 게 스턴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론스타의 금융 범죄로 빚어진 전례 없는 상황에 한국 금융감독 기관으로서 합리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론스타가 본 손실은 유죄 선고에 따라 계약 당사자들이 가격 인하를 합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향후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 등 론스타 사건 후속 절차에 대해서도 신속히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법무부와 별도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에서 열린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2’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판정에 아쉬운 게 있다”라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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