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이토 이름 등장하자 日 환호했다…아베 국장일의 두 단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말도 많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국장도 끝났다. 한편에선 아베를 추모하고, 다른 한편에선 국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저마다 생각은 달랐겠지만 1967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이후 55년만에 국장을 치른 27일 일본 도쿄의 모습은 뭔가 기이하다 할까 색달랐다.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일본 특유의 모습들이 동시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중앙일보

지난 27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모습.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27일 국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의 감성에 찬 추도사였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추도사를 읽었지만 밋밋했다. 아베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스가의 추도사 때 유일하게 눈물을 흘렸다. 스가 전 총리는 먼저 자신이 7년 8개월 동안 관방장관으로 있으면서 모셨던 아베 전 총리와의 비화를 소개했다.

"마지막에는 둘이서 긴자의 야키토리(꼬치구이) 집에 가 내가 열심히 당신을 설득했죠. 그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시간 뒤에 겨우 고개를 끄덕여줬습니다. 난 이 일이 '스가 요시히데, 생애 최대의 달성'이라고 언제까지나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2008년 지병으로 총리직을 내던졌던 아베가 2012년 재도전에 나서게 된 뒷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중앙일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지난 27일 국장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기리는 추도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가는 추도사 말미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죽음을 접한 친구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말로 마무리했다.

"중의원 1회관 1212호실 당신이 책상에는 당신이 읽다가 만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오카 요시타케(岡義武·일 정치사 권위자·1990년 사망)'가 쓴 '야마가타 아리토모' 입니다. 접어놓은 페이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형광펜으로 줄을 그은 곳이 있었습니다. 야마가타가 오랜 맹우(盟友·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먼저 떠나보내며 읊은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 구절만큼 지금 나의 마음을 제대로 묘사하는 건 없을 겁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모든 힘을 다한 이들만 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지요….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누가 이끌 것인가요'. 아베 총리,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순간 국장 행사장인 무도관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엄숙하게 국장을 지켜보던 조문객이 일제히 큰 박수를 보낸 것이다. 이날 4시간 이어진 국장에서 나온 유일한 박수였다.

SNS 등에는 "스가의 추도사에 눈물 났다. 멋지다" "이거 없었으면 국장 완전 망가졌는데, 스가가 살려줬다"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정치인의 말에 이런 반응이 나온 건 최근 일본에 없었다.

중앙일보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와 야마가타는 아베와 같은 조슈(長州·현 야마구치현)번 출신으로 '정한론'을 펼친 쇼카손주쿠(松下村塾) 문하생이다. 나이는 야마가타가 3살 위지만, 이토 뒤에 총리직을 맡았다.

일각에선 스가가 아베와 자신과의 관계를 이토-야마가타에 대입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스가 또한 아베보다 6살 위지만 아베에 이어 총리를 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 입장에선 식민지 수탈을 통해 일본을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올리려 했던 이토-야마가타 두 사람의 이름이 아베 국장에 등장한 것, 그에 환호하는 일본의 모습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2 같은 날 27일 도쿄 금융가 간다 뒷골목에 자리 잡은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우즈(UZU)'의 입구에 안내문이 붙었다. "2012년 10월부터 영업을 해 왔지만, 2022년 10월 31일부로 폐점을 합니다. 10년간 많은 손님이 와 주시고, 많은 좋은 추억이 생기고, 많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UZU."

중앙일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이 운영하던 도쿄의 선술집 '우즈(UZU)'의 출입문에 오는 10월31일부로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28일 오전 한 행인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즈'는 아키에 여사가 남편 아베의 고향인 야마구치에서 직접 수확한 무농약 쌀, 유기농 야채를 활용한 요리가 메인이다. 아베가 총리로 복귀한 2012년에 오픈했다.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배어나는 가게였다.

하지만 이곳도 아베의 사망과 함께 이별을 고했다. 28일 이른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를 찾았다.

실은 2014년 9월 이곳에서 아키에 여사는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아키에 여사는 "1~2년 지나서도 적자면 문 닫기로 남편과 약속하고 시작한 사업"이라며 "남편이 만나지 못하거나 남편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전하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아키에 여사가 지난 2014년 9월 'UZU'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은 미소를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베는 몇 점이냐"는 질문에 "80점"이라 답했던 기억이 난다. 일각에서는 아키에 여사가 가게를 정리한 뒤 시기를 봐 도쿄에서 야마구치현으로 거주지를 옮길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 특유의 '이별의 미학'일까. 아베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