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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반지하에 다시 산다는 것은…서울 폭우 50일 현장 둘러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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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반지하주택 내부 모습.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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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서자 새집 냄새가 났다. 벽지와 장판에는 얼룩이 없었다. 옷장도, 침대도, 책상과 화장대도 새 것이다. 불과 두 달 전 변기와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 무릎 높이까지 침수됐던 반지하 집이다. 물에 젖은 벽지와 장판은 떼어냈고 망가진 가구는 모두 버렸다. “얼핏 보면 괜찮죠? (벽지를) 뜯어보면 난리도 아닐 거예요.” 황진영씨(가명·38)가 말했다.

지난 8월 8일 수도권 등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시간당 100㎜ 이상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서울에서는 15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반지하 주민들은 집에서 숨지거나 살림살이를 전부 잃었다. 폭우 50일이 지났다. 대피소나 모텔에서 생활하던 반지하 주민들은 물에 잠겼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대부분 벽지를 다시 바르고 장판도 새로 깔았다. 새집인 듯 보이는 반지하에서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새집 단장 했지만 원상복구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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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은 서울 동작구 황진영씨(가명·38)의 집. 당시 황씨의 반지하 집은 성인 무릎 높이까지 물에 잠겼다. 황진영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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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은 서울 동작구 황진영씨(가명·38)의 집.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 깨끗해진 모습이다. 황씨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벽지와 장판이 모두 울어 있다”고 말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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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벽지며 장판이며 다 들떠 있어요.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더라고.”

지난 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만난 황씨가 침대 옆 벽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새로 바른 회색 벽지가 쭈글쭈글한 채 들떠 있었다. 장판에도 손바닥을 갖다 대자 습기가 느껴졌다.

황씨는 “원래도 빨래를 말리려면 제습기를 하루 꼬박 틀어야 하는데 침수된 이후로는 2~3일씩 돌려도 잘 안 마른다”고 했다. 벽이 마를 때까지 도배를 미룰지 고민했던 그는 “반지하는 어차피 안 마른다”는 주변의 얘기를 듣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벽지를 발랐다고 했다.

관악구 신사동 신정태씨(22)의 반지하도 사정이 비슷하다. 신씨네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이곳은 침수 이후 장판을 새로 깔았지만 마루 부분이 울어 있었다. 물이 천장까지 차올랐던 터라 복구 작업을 해도 금세 소용이 없어진다. 작은 방 창가에는 벌써 곰팡이가 올라왔다.

한번 물에 잠긴 반지하는 원래 상태를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다. 정기황 엑토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요즘은 지하 주차장을 지을 때도 (침수를 고려해) 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그사이 물길이 통할 통로를 만들지만, 1980~90년대 후반에 지어진 반지하는 애초 이런 부분을 고려해 건축하지 않았다”면서 “1~2층 공간이 같은 피해를 겪었다 해도 반지하의 회복력은 이와 비교도 안 되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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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관악구 신사동 신정태씨(22)의 반지하 집 창가에 곰팡이가 올라와 있다. 신씨의 집은 지난달 침수 피해를 격은 후 복구작업을 했으나 여전히 습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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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관악구 신사동 신정태씨(22)의 옆집 반지하 모습. 옆집 주민이 이사를 해 지난달 침수를 겪은 이후 방치돼 있다.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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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집은 새로 단장했지만 같은 반지하인 옆집은 침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살던 사람이 이사해 방치된 곳인데, 건조 작업을 하지 않아 온통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옆집 문을 열면 신씨의 집 거실까지 역한 냄새가 흘러들어온다. 도배 장판을 했더라면 옆집도 새집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신씨와 가족들은 “집을 다 말린 후에 들어오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주민센터에 있는 대피소는 지난달 말까지만 머물 수 있었거든요. (집으로 온 이후) 자치구나 동주민센터는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요. 명절에 구호품 가져가라고 했던 것 외에는 연락도 없었고요. 임대주택에 대해서도 물어본 적이 있는데…. 소득 기준이 까다로워서 ‘(들어갈 가능성이) 적다’는 말만 돌아오더라고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적으니 이곳저곳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신씨 가족들은 심리적으로도 점점 위축된다고 했다. 침수 피해 이후 마련한 냉장고, 텔레비전, 청소기 등 필수 가전제품은 모두 친척들의 도움을 받았다. 정부의 침수주택 보상금 200만원과 지자체 지원금 50만원을 합하면 도배·장판 비용만으로도 빠듯했기 때문이다. 신씨의 어머니 최지애씨(49)는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고 친척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침수 경험이 불러오는 ‘연쇄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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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은 서울 동작구 황진영씨(가명·38)의 집 앞에 황씨가 가구를 내놓은 모습. 황진영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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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로 인한 ‘주거 상실’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개인이 이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든다. 침수 피해는 단순히 가구와 생활용품을 잃는 것 이상의 문제로 번진다.

실제 동작구에서 침수 피해를 당한 황씨는 한 달 사이에 허리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매일 집을 치우려 무거운 물건을 옮긴 데다, 2주 가까이 콘크리트 위에서 매트만 깔고 선잠을 잤던 탓이다.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았더니 5번 척추뼈가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리치료도 받고 약도 먹어봤는데 소용이 없어요.” 그는 불면증과 두통, 소화불량에도 시달리고 있다.

취미도 잃어버렸다. ‘집순이’로 불리던 황씨가 유일하게 좋아한 바깥 활동은 ‘스쿠버 다이빙’이다.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돈을 아껴 장비를 사 모을 만큼 물속 활동을 좋아했다. 이제는 옷걸이에 가득 걸어놨던 ‘보물’들을 모두 처분할지까지 고민 중이다. 강원도 바다에 갈 때 쓰던 노후 경유 차량도 언니 집에 보내버렸다. ‘다이빙 마니아’ 황씨는 이제 물이 싫어졌다.

모든 걸 잃은 와중에도 유일하게 새로 생긴 게 있다. 뭐든지 ‘위’를 지향하는 습성이다. 황씨가 뒤늦게 산 침대는 유난히 높다. 바닥에서 매트리스까지 50cm 가까이나 된다. “혹시 또 비가 와서 잠길지 모르잖아요. 매트리스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해서 일부러 높은 침대를 고른 거예요.” 그는 침대 아래 수납장이 넉넉해도 중요한 물건을 절대 넣지 않는다. 물이 차오를까 두려워서다.

반지하 주민들은 침수의 악몽을 겪은 이후 터전을 옮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으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아내는 것부터 걸림돌이다. 특히 전세 반지하인 경우 월세보다 보증금이 높아 집주인을 설득하기 더 까다롭다. 황씨는 “집주인은 정부 지원금을 나눠 가져가 놓고 집수리를 해달라는 연락도 받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3년 전 이곳 반지하를 전세금 9000만원에 계약했다는 황씨는 계약만료 시점인 내년 8월까지 “쳐다보기도 싫은 집”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

침수된 집을 나와도…돌고 돌아 다시 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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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이정필씨(가명·64)가 침수 피해를 겪은 집을 떠나 정착한 강남구 논현동의 새 반지하 집. 텅 빈 방 한 구석에 이씨가 누워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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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더라도 적절한 주거를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돌고 돌아 옥탑방·고시원을 택하거나 아니면 침수 피해가 그나마 덜했던 반지하로 간다.

강남구 논현1동에 있는 이정필씨(가명·64)의 반지하는 폭우 당시 그의 키 높이까지 잠겼다. 그가 두 달가량 이곳저곳 전전한 끝에 가까스로 거처를 구한 곳도 인근의 ‘또 다른 반지하’였다. 조금 비싸더라도 지상층 원룸으로 갈지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일대 대부분의 지상층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80만원 수준이었다. 이씨가 택한 반지하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다.

“돈만 있으면 지하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시 반지하에 사는 게 괜찮냐고 묻자 이씨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아쳤다.

이씨의 새 반지하는 이전 반지하와 불과 3분 거리,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그는 “여기는 전에 살던 곳보다 지반이 높아 반지하라도 침수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곳에는 연식이 오래된 냉장고 외에 가전제품이나 필수 가구가 없다. 오토바이 배송 업무를 끝내고 들어와 몸을 누일 침대도, 매달 5만7000원씩 대여료를 내고 쓰던 ‘유일한 사치’ 안마의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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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록적 폭우로 이정필씨(가명·64)가 침수 피해를 겪은 강남구 논현동의 기존 반지하 집. 침수 당시 이 집은 천장의 3분의2 높이까지 물이 찼다. 이씨가 나간 이후로 수리 공사를 시작해 새집처럼 변해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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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왕십리 가구점에 가서 침대와 책상 등을 주문하고 왔다는 그는 “오늘 쓴 돈만 150만원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마련할 살림살이까지 가늠하면 막막한 마음만 앞선다. 정부 지원금 200만원은 신씨 가족뿐만 아니라 홀로 사는 이씨에게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씨가 침수 피해를 겪은 반지하 주택을 찾아가 보니 5가구 중 3가구가 이사를 한 상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 벽지와 새 장판으로 단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간관리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반가운 얼굴을 하며 말을 쏟아냈다. “집 보러 오셨어요? 더 보고 가시지. 싱크대는 새로 들여놓을 거고요. 비 와도 전처럼 잠길 일은 없을 거예요. 집주인이 이번엔 진짜 신경 써서 고쳤다고 들었거든.”

이씨가 뛰쳐나온 6평짜리 반지하는 새로운 세입자를 받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 서울 비 쏟아진 ‘8월8일’, 어느 구청장이 자리를 지켰을까
https://www.khan.co.kr/local/Seoul/article/202209281739001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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