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킹달러發 '오징어게임'…환투기 세력, 원화 노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금융시장 대혼란 ◆

매일경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이 13년6개월 만에 최저치인 1439.9원까지 떨어진 28일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피곤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원화값은 장 마감 후 역외 차액결제선물환 시장에서 1440원 아래로 밀리기도 했다. 이날 아시아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2.45%, 3.47% 하락했다. [김호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킹달러발(發) 오징어 게임이 본격화했다.'

미국 감독, 미국 주연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이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때마다 한 단계 한 단계 게임 강도가 세진다. 앞 단계에서 스리랑카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미국의 긴축 충격을 견디지 못해 국가 부도를 선언하며 일찌감치 나가떨어졌다. 다음은 어느 나라가 될지 세계 금융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게임의 룰은 단순하다. 시장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다른 나라보다 금융·외환시장을 잘 지키면 충격은 다른 나라로 옮아간다. 그러면 그 나라는 일단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생존을 결정하는 과정은 이렇다. 미국발 긴축에 경제 기초체력에 문제가 생긴다. 그다음은 그런 나라 외환시장에 하이에나 같은 환투기 세력이 가세한다. 그들이 물어뜯기 시작하면 미국을 제외한 어느 국가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킹달러발 오징어 게임'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경제체력이 떨어지고 투기 세력이 가세하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때 사후약방문 식으로 만든 것이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위기를 조기에 파악하고 한발 앞서 대비하자는 취지다. 조기경보 시스템에서 살펴보는 몇 가지 지표가 있는데 이를 검토한 결과 우리나라는 현재 6개 지표 중 5개에서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위기경보를 본격적으로 울려야 할 때다.

먼저 원화값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달러당 원화값은 28일 장중 한때 1440원 밑으로 추락하다가 18.4원 떨어진 1439.9원으로 마감했다. 일주일 새 3.2%, 한 달 새 6.2%나 급락했다. 주요 국가 중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겪었던 영국을 제외하고 하락폭이 가장 크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환투기 세력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5년 만기)의 부도 위험도를 표시해주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도 이날(오후 1시 기준) 52.9bp(1bp=0.01%포인트)를 기록하며 일주일 전보다 18.4bp나 올랐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제의 기초체력도 튼튼하지 못하다. 무역수지는 매월 적자를 내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면 달러 공급이 줄어들고 원화값은 더 떨어진다.

투기 세력이 현물환 시장과 선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공격적으로 사고팔아 이익을 내기 좋은 구조가 형성된다. 자본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주식과 채권을 던지고 떠나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1조892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날에도 외국인은 하루 동안 1459억원어치 주식을 내다팔았고 이 결과 코스피는 2.45%나 하락했다.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8월 한 달 동안 1조8520억원의 채권을 순수하게 팔았다. 실물경제에서는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자본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금융상품을 매도하면서 달러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반면 환투기 세력이 공격할 때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대응 능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9월 기준금리를 연 3.0~3.25%로 올리면서 우리나라(연 2.5%)와 금리 차이가 최대 0.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에 따라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재정 여력이 갈수록 소진되고 있는 것도 투기 세력에 약점을 노출시키는 부분이다. 지난 7월 기준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는 56억달러 적자를 기록했고 국가채무비율도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지표는 외환보유액이다. 8월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64억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2063억달러)보다 2배 이상 많고 1997년 외환위기 때(204억달러)에 비해서는 20배 이상 많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느냐는 점이다. 올해 들어 달러당 원화값이 1180원대에서 1440원대로 260원이나 떨어지는 동안 정부는 수차례 구두 개입에 나섰고 실제 외환보유액을 털어 달러를 사들이는 물량 개입도 여러 차례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투기 세력에는 단호하고 확실한 개입을 통해 본때를 보여줘야 함에도 우리 외환당국은 '찔끔찔끔' 개입하면서 오히려 투기 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필요하다.

매일경제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