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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유럽증시에 포르셰가 온다…‘100조 빅이벤트’ IPO 감상법 [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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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증시에 11년 만에 최대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로 포르셰 기업공개(IPO)입니다. 개구리 모양 911로 상징되는 독일 자동차 회사, 다들 아시지요? 우리가 포르셰 차는 못 사더라도, 포르셰 주식은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 포르셰 IPO에 숨은 스토리들-포르셰 가문과 폭스바겐의 얽힌 역사 & 전기차 시대 도래와 럭셔리 스포츠카의 고민-이 아주 흥미진진하다고요. 이걸 다 풀자면 대하드라마 수준의 이야기거리이지만 그렇게까지는 말고, 그 중 핵심만 뽑아서 깊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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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IPO는 유럽에선 11년만의 최대 규모, ,독일에선 사상 최대규모이다.  포르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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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750억 유로로 상장 예정

포르셰는 이달 20~28일 수요예측과 공모청약을 거쳐 29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됩니다! 혹시 우리도 공모주 청약할 수 있냐고요? 아니요.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스위스 국적의 개인투자자가 공모 청약에 참여할 수 있다는 군요.

분위기는 어떠냐. 나쁘지 않습니다. 기관투자자 주문이 밀려들어서 공모가가 목표가격의 상단(82.5유로)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군요. 이대로라면 시가총액이 750억 유로(약 103조원)가 됩니다. 사실 유럽 IPO 시장은 얼어 있었거든요. 요즘 다른 시장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유럽은 전례 없는 에너지 위기(러시아…ㅂㄷㅂㄷ)로 경제가 암울합니다. 그래서 ‘무슨 이 타이밍에 IPO냐’라는 비판여론이 적지 않긴 한데, 역시 포르셰는 포르셰인가 봅니다.

그럼 상장 뒤 포르셰, 투자할 만할까요? 포르셰가 발행하는 전체 주식 수는 9억1100만 주인데요(대표 모델인‘911’을 기념하는 뜻으로 주식 수를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이 중 절반이 우선주(의결권 없음), 나머지 절반이 보통주(의결권 있음)이죠. 이번에 상장하는 건 우선주인데요. 그 우선주 중에서도 25%만 공모로 풀립니다. 즉 전체 주식의 12.5%만이 공모물량인 거죠. 그런데 카타르투자청이 이미 2.5%는 가져가기로 찜해두는 등 큰손투자자들이 일찌감치 물량을 선점해뒀거든요. 이렇게 되면 공모물량도 적은데, 그나마 유통되는 물량은 더 적겠죠. 보통 공모주는 전체 주식 수 대비 유통물량이 20% 이하이면 ‘품절주’라고 불리는 데요. 이렇게 유통물량이 적으면 주가 변동성이 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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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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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주가가 비싸냐 싸냐는 동종업계 경쟁 업체와 비교하죠. 이미 유럽증시에 상장된 고급 스포츠카 제조업체로는 이탈리아 페라리가 있습니다. 페라리(티커 RACE)는 2015년 뉴욕증시에 상장해 꽤 성공적인 기록을 쓰고 있죠(공모가 52달러로시작, 현재 190달러대). 두 종목을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시가총액이 상각전이익(EBITDA)의 몇 배냐’를 봤을 때 페라리는 23.1배, 포르셰는 10.2배입니다. 이렇게놓고 보면 투자자 입장에선 공모가가 그리 비싸진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포르셰는 페라리만큼 럭셔리는 아니다'라는 시각도 있는 건 사실입니다.

기업의 펀더멘털 면에선 괜찮냐고요? 그건 좀더 깊이 들여다 봅시다. ‘왜 포르셰가 이 시기에 IPO를 결정했을까’와도 관련 있는 질문이거든요.

전기차 시대, 럭셔리 스포츠카의 자리는?

포르셰가 이번 IPO로 조달할 자금 규모는 총 94억 유로(13조원)에 달합니다. 포르셰는 이 돈으로 뭘 하려고 IPO를 한 걸까요. 미래 전기차를 위한 투자를 하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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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전기차 타이칸. 포르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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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는 이미 ‘타이칸’이란 순수전기차 모델이 있죠. 타이칸은 지난해 4만대 넘게 팔리면서 대표 모델 911의 판매량을 넘어섰습니다. 포르셰는 한해 약 30만대를 판매하는데, 2025년엔 판매량의 절반을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로, 2030년엔 80%를 순수 전기차(하이브리드 빼고)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야 모르는 사람 없죠. 전기차 투자는 포르셰뿐 아니라 모든 자동차 제조사의 발등의 불이긴 합니다. 그런데 포르셰 같은 고급 슈퍼카 브랜드는 대중차 브랜드보다 더 초조합니다. 왜냐. 차값은 무지 비싼데, 내연기관의 한계 때문에 제 아무리 슈퍼카라 해도 해도 전기차만큼의 성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요. (최고출력 포르셰 911 GT3 R 565마력 VS. 루시드 에어 1111마력) 한마디로 가성비가 너무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계속 3억, 4억원씩내며 슈퍼카를 사고 ‘옵션질(문짝에 포르셰 스티커 붙이는데 60만원!)’까지 이어가게 만들려면 지금처럼 ‘최고의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연히 성능 좋은 전기차, 그것도 ‘주행의 즐거움’과 ‘감성적 터치’까지놓치지 않는 차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겁니다. 쉽지 않은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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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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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가 속한 폭스바겐 그룹 입장에서도 포르셰의 전기차 전환 성공은 중요합니다. 포르셰의 지분 100%를 가진 모회사는 폭스바겐(그 독일 국민 자동차 회사!)인데요(왜 그렇게 됐는지 스토리는아래에 다시 설명). 포르셰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53억 유로(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16%)이었는데, 폭스바겐 영업이익은 25억 유로(영업이익률 3.3%)에 불과합니다. 포르셰(30만대)는 폭스바겐 판매 대수(490만대)의 16분의 1만 팔고도 영업이익은 2배넘게 올렸으니, 그룹에선 황금알을 낳는 알짜인 거죠. 럭셔리슈퍼카 브랜드 포르셰를 지켜야만 폭스바겐 그룹도 미래에 투자할 여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포르셰 가문이 돌아온다

포르셰 IPO로 포르셰 가문은 10년만에 다시 포르셰 경영에 입김을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10년간 포르셰 경영은 지분 100%를 들고 있는 폭스바겐이 해왔는데요. 이번에 IPO하면서 포르셰 가문이 보통주 25%+1주를 취득(비공개 매수)하기로 하면서 창업자의 자손들이 다시 등장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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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창업자 페르난디트와 친손자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셰(왼쪽), 외손자 페르디단트 피에히(오른쪽).훗날 사진 속 친손자는 포르셰 911를 디자인하고, 외손자는폭스바겐 그룹을 이끌게 된다. 포르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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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포르셰 가문은 왜 포르셰를 폭스바겐에 넘겼을까요. 이게 또 드라마 16부작 같은 내용이지만 요약하자면. 포르셰는 2002년 폭스바겐과 공동개발한 SUV '카이엔'이 대성공을 거두자, 폭스바겐을 인수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2005~2008년 폭스바겐 지분을 야금야금 매입해서 지분율을 마침내 75%까지 높였죠. 이 과정에서 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한 헤지펀드가 폭스바겐에 대규모 공매도(지분 12%에 대해)를 쳤는데 이미 시중에 폭스바겐 주식 물량이 바닥난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숏스퀴즈(공매도 손실을 메우려고 단기간에 주식을 매수)에 나서면서 하루 동안 폭스바겐 주가가 5배나 뛰고 난리가 났죠(잠시나마 엑슨모빌 제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등극).

어찌 됐든 ‘다윗(포르셰)과 골리앗(폭스바겐)의 싸움’으로 불리던 포르셰의 폭스바겐 잡아먹기 작전은 거의 성공하는 것 같았지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빚을 너무 많이 냈던 포르셰(부채가 100억 유로 넘음)가 파산 위기에 처한 거죠. 그러자 역으로 포르셰를 인수하겠다며 나선 게 폭스바겐입니다. 포르셰는 지주회사(포르셰SE, 폭스바겐대주주)와 사업회사(포르셰AG, 포르셰 자동차를 제조)로 나뉘는데 사업회사를 폭스바겐이 사들여서 지주회사 빚을 갚아줬죠. 결국 포르셰AG는 2012년폭스바겐의 자회사로 통합됩니다(이번에 상장하는 게 바로 사업회사인 포르셰AG이죠).

먹으려다 오히려 먹힌 포르셰 이야기가 더 흥미로운 건 이 싸움이 ‘포르셰가문 사촌들 간의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폭스바겐 감독이사회 의장(=최고 실력자)은 포르셰 창업자의 외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였죠. 그와 맞붙은 포르셰 CEO 벤델린 비데킹의 뒤엔 포르셰 박사의 친손자 볼프강 포르셰가 있었고요. 피에히는 젊어서 사촌(포르셰 친손자)들과 갈등을 빚다가1972년 쫓겨나다시피 포르셰를 떠났는데요. 40년 만에 포르셰를 접수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5년 볼프강 포르셰가 노조와 힘을 합쳐 폭스바겐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피에히를 몰아내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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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과 포르셰 CEO를 모두 맡고 있는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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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IPO로 포르셰 가문은 완전히 잃었던 포르셰AG(사업회사) 지분을 일부 다시 회복하게 됐는데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번 IPO가 포르셰 가문에게 포르셰 소유권을 되돌려주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의결권 있는 보통주는 자기들이 가져가고, 의결권 없는 우선주만 공모 상장하는 것부터 그런 의도가 들여다 보이죠.

물론 포르셰는 IPO로 좀더 독립적인 경영이 가능해질 거라고 홍보합니다. 하지만 폭스바겐과 포르셰 CEO가 같은 사람-올리버 블루메-인데? 흠, 정말 그럴 지는 두고 봐야겠군요.

지금까지 포르셰 IPO 뉴스를 들여다 봤는데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이번 IPO는 유럽 증시에서 11년만에 가장 큰 규모에요.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현재로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요.포르셰가 페라리만큼 '럭셔리 브랜드'로 증시에서 인정받게 될지가 관전 포인트.IPO로 번 돈은 전기차 전환에 써요. 슈퍼카일수록 전기차 시대에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거든요.포르셰 가문이 10년 만에 포르셰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아요. 기업지배구조 면에서는 후진하게 된다는 비판도 꽤 있어요. By. 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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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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