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백남준의 기술자'가 본 다다익선 복원…"답은 간단한데 어렵게 생각해서 문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복원 자문한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
한국일보

백남준과 1988년부터 세계를 누빈 기술자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사무실에서 수리를 기다리는 백남준의 작품 'TV 첼로' 옆에 섰다. 김민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백남준의 기념비적 작품 ‘다다익선’이 3년여의 휴식을 마치고 지난 15일부터 다시 불을 밝혔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에 설치된 '다다익선'은 탑처럼 쌓아 올린 브라운관(CRT) 모니터 1,003개에서 백남준이 제작한 영상 8개가 재생되는 대형 미디어 아트 작품이다. 30년간 크고 작은 보수 작업을 거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의 노후화, 발열, 화재 위험 등의 문제가 커져 지난 2018년 2월 전면적인 복원을 위해 휴동했다. 1988년부터 백남준과 세계를 누비며 그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기술 작업을 해왔고, 이번 복원 작업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정성(78) 아트마스타 대표에게 백남준 작품의 원본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19일 세운상가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에게 백남준 작품의 원본을 지켜나갈 방법을 묻자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답은 간단한데 자꾸 어렵게 생각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지 뭐가 어렵냐”는 것이었다. 백남준이 생전에 그에게 일렀듯이 모니터는 그 시대에 가용한 제품을 사용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다익선' 복원 과정을 설명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만큼 ‘원본’ 복원을 두고 격론이 오갔던 탓이다. 볼록한 화면이 두드러지는 브라운관 모니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전문가가 있었던 반면, 브라운관의 부품을 수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니터를 최신 기계로 대체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이 대표 주장이었다. 미술관은 원형을 가능한 한 유지하되 일부는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737대는 각지에서 수급한 부품으로 브라운관 모니터를 수리했고, 266대는 외형은 유지한 채 평면 디스플레이(LCD) 모니터로 교체됐다.
한국일보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백남준이 지난 2003년 이정성 대표에게 다다익선 보수를 일임하며 써준 쪽지의 사진. 이정성 대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백남준이 이정성 대표에게 전달한 작업 지시 가운데 하나. 이정성 대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백남준과 전문가들이 뉴욕의 한 식당에서 작품 제작을 논의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백남준, 레이저 기술자 노먼 발라드, 이정성, 도형태 현 갤러리현대 대표. 이정성 대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정성 대표가 백남준과 함께 작업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진들을 넘겨 보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통상 미술계에선 작가가 처음 작업한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이 담긴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다익선'의 경우도 브라운관 모니터라는 외적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원본을 지키는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다다익선' 복원에서 본질은 모니터가 아니라 영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남준과 작업하면서 받았던 여러 쪽지들을 보여주면서 "백 선생은 원래 화질만 맨날 따졌다"고 말했다. 기계 장치는 두 번째 문제라는 것이다. "엘지든 동양이든 삼성이든 껍데기 벗겨내고 이렇게 쇠통에다가 알맹이만 넣어도 작품이 형성된다고 본다는 게 여기에 쓰여 있잖아요." 최신 화질의 모니터로 교체해 영상을 재생하는 게 백남준의 뜻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백 선생님은 늘 저한테 그 시대에 제일 좋고 적합한 모니터를 갈면 되지 뭘 걱정을 하냐고 하셨다"면서 "모니터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편집한 비디오를 틀기 위한 장치로 작가의 정신이 모니터에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술자로 평생을 살아온 이 대표의 사무실 한편에는 보수를 위해서 들어온 백남준의 ‘TV 첼로’ 작품이 서 있었다. 그는 현재도 국내외에서 들어오는 자문에 응답하고 때로는 직접 작품을 수리하고 있다.
한국일보

20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다익선의 상부. 김민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20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다익선의 상부 모니터들. 김민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20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다익선의 하부. 브라운관 특유의 볼록한 표면이 보인다. 김민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다익선' 복원 과정의 의견 충돌은 향후 미디어 아트 작품의 복원에서 계속 제기될 수 있는 문제다. 미디어 아트 작품이라도 기계 장치까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앞으로는 어떻게 작품을 보존해야 할까. 이 대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 시대 사람들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무슨 얘기를 했든 그때 또 대중의 합의는 따로 있는 거니까, 지금 그걸 짐작해서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땐 또 좋은 아이디어가 있겠죠.”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