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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일제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하버드대 교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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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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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의 한국사 기술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교재는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국 관련 문제를 토의할 때 활용하도록 만든 자료인데, 고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기술은 단 19줄이다. 이 짧은 기술이 논란이 되는 것은 한국 역사, 더 나아가 오늘날의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려가 중국의 '조공국(tributary state)'이었다는 기술이다. 조공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방식이다. '속국(dependent state)'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조공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미국에서는 별도 설명이 없으면 'tributary state'를 '속국'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이 더 산업화되었고 인프라도 개선되었으며, 행정 등 시스템이 근대화되었다는 기술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일본의 침략전쟁 및 식민지 수탈구조와 연계해 설명하지 않으면, 마치 일본의 지배로 한국이 근대화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한편 '식민지로 만들다(colonize)'가 아닌 '병합하다(annex)'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일본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브리태니커 사전이나 국제법 문헌을 보면 'annex'는 강제적이고 불법적인 영토 취득을 의미한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본의 불법성을 명확하게 보여줄지 등 번역 용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만약 하버드대에서 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교재를 만들었다면 BTS의 노래나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넣었을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제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영문으로 된 한국 역사에 관한 연구와 자료가 국제학계에서 제대로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하버드대 교재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이번 하버드대 교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대학과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를 존중하면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교재를 만들 때 많은 연구 성과 가운데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저자의 몫이다. 학문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영문으로 된 우리의 연구 성과와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저자의 책임은 무겁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학을 국제화하기 위해 여러 기관에서 많은 노력들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인문학 연구성과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관련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BTS나 영화 기생충처럼 국제사회에 통용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고 유통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일보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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