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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준의 맛과 섬] [112] 제주도 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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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국은 제주 바다에서 막 건져 온 멸치에 봄에는 봄동을, 여름과 가을에는 배추를 넣고 끓인다. 이 멜은 모슬포 바다에서 잡은 큰 멸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비린내도 없고, 시원하기는 복국을 능가한다. 5월에 잡아서 급속 냉동해 사철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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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멜국/김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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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로 만든 음식으로 회와 구이와 조림은 익숙하지만 멜국은 생소하다. 비린내가 없이 조리하려면 재료로 쓰는 멸치가 싱싱하고 상처가 없어야 한다. 그 비밀은 제주 멸치잡이의 특성에서 엿볼 수 있다. 멸치는 빛을 좋아하고 표층에서 생활하기에 집어등을 밝혀 챗대에 매단 그물로 유인해 잡는다. 그물에 꽂힌 멸치를 털어서 잡는 것과 달리 그물로 떠서 잡기에 상처도 없고, 그날그날 잡아 파는 당일 바리라 싱싱하다.

이렇게 유인하는 불빛에 홀려 모여든 멸치 떼를 ‘멜꽃’이라 한다. 멸치 챗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불잡이다. 그래서 ‘불잡이가 오백 냥을 결정한다’고 했다. 추자도나 가거도에서도 챗배를 이용해 멸치를 잡았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멸치잡이 어법은 원담에 들어온 멸치를 족바지(뜰채)로 떠서 잡는 것이었다. 원담은 육지에서 독살이라 부르는 전통 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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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담을 보수하는 금능리 원담지기 이방익씨(2004년 촬영)/김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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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은 조차가 큰 서해안이나 남해안 조간대에 돌담을 쌓고 들어온 멸치, 숭어 등 물고기를 잡는 어법을 말한다. 제주도 한림읍 금능리에서는 최근까지 원담을 이용해 멜을 잡았다. 원담을 지키는 원담지기가 ‘멜 들업서. 하영 들업서(멸치 들었다, 많이 들었다)’라고 소리치면 주민들이 모두 족바지를 가지고 나와 멜을 잡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귀포 상인들도 금능리 원담 멸치를 구입하려고 줄을 섰다.

이렇게 원담에 멜이 드는 날이면 집마다 멜국을 끓였다. 원담이 없는 마을은 공동으로 그물을 사서 멜을 잡았고,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상인이 가져온 멜을 구해 멜젓을 담기도 했다. 멜이 많이 잡히면 밭에 뿌려 거름으로 사용했다. 먼바다에서 큰 그물로 멜을 잡기 시작하면서 원담에 드는 멸치도 줄어들었다. 금능리 원담에서는 여름철이면 멸치잡이 대신 여행객을 위한 원담 축제가 열리고 있다.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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