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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태양광 도박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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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도매가 작년의 2배로

에너지난과 무관한데도

가스발전 전기값에 연동시켜

작년 상반기 대비

月 3200억원씩 더 지불

천당·지옥 오가는 사업자들

조선일보

전남 영암군 학산면의 농지 사이로 곳곳에 태양광이 설치돼 있는 모습. 지난 3월 촬영했다. 전남 지역에선 최근 5년간 농지 가운데 1977ha가 태양광으로 바뀌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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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이 2600억원대 태양광 위법·부정을 적발하자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의 비리”라고 했다. 이어 금융감독원이 태양광 대출 전수 조사에 나섰고, 검찰도 합동수사단을 만든다고 한다. 태양광 주변이 일시에 찬바람이다. 태양광 보조금 비리는 도려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일을 갖고 전체가 비리에 물든 것처럼 몰아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탄소중립은 태양광·풍력과 원자력이 에너지의 두 축을 이룰 때 가능하다. 태양광은 더 권장해야 하지 배척하는 건 곤란하다.

그와 별개로, 요즘 태양광 사업이 엄청난 ‘횡재(橫財)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불법, 비리 때문이 아니다. 전적으로 정부의 정책 설계 실패 탓이다. 한국전력은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구매해 공장·사무실·가정에 나눠 판다. 그런데 한전이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전기 도매 가격이 올 들어 유례 없이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전 세계 에너지난으로 천연가스·석탄 수입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7월 중 한전이 가스발전소에서 사들인 전기의 평균 도매가는 작년의 두 배가 됐다. 석탄발전소 전기도 1.5배로 뛰었다. 원자력 전기만 작년보다 20% 이상 싼 가격을 유지하면서 전기요금을 버텨주고 있다.

문제는 태양광·풍력 전기 가격이 덩달아 요동을 쳤다는 점이다. 태양광·풍력은 일단 설치해 놓으면 20~30년 가동 기간 동안 연료비·운영비가 거의 안 든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내린다고 태양광·풍력 전기 가격이 따라 움직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태양광·풍력 전기의 올해 1~7월 도매가는 작년의 두 배가 됐다. 태양광·풍력 전기 가격을 가스발전소 전기에 맞춰 움직이도록 연동시켜 놨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한전의 태양광·풍력 전기 구입 비용은 작년 1~7월 2조470억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4조8800억원으로 2.4배가 됐다. 구입 전력량은 21% 늘어났을 뿐이다. 여기에다 태양광·풍력 전기에 주는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라는 보조금이 붙게 된다. 이 보조금도 지난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작년 상반기 ㎾h당 35원 선에서 올해 55원 안팎, 8월엔 64원까지) 뛰었다. 결과적으로 태양광·풍력 사업자들은 한전이 지불하는 도매가에 REC 보조금을 합해 ㎾h당 230원 정도를 받고 팔 수 있었다. 원자력 전기(53원)의 4배를 훨씬 넘고 에너지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가스 전기(205원)보다도 비싼 가격이다. 태양광·풍력 전기의 도매가와 보조금이 작년 수준으로 유지됐다고 가정할 때에 비해 태양광 업계가 매달 평균 3200억원(추정)씩 더 벌고 있다.

가스·석탄 전기의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LNG·석탄의 수입 가격이 워낙 뛰었기 때문이다. 올해 30조원으로 예상된다는 한전 적자도 LNG·석탄 수입가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제 에너지난과 관련 없는 태양광·풍력 전기는 경제를 돕기 위해서라도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에너지 위기에 편승해 가스·석탄 전기와 같은 수준으로 덩달아 인상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부의 타성적인 가격 결정 방식 때문이다. 오랜 기간 전력 발전단가는 원자력과 석탄이 싸고, 가스발전은 비싸고, 태양광·풍력은 가스보다 더 비싸게 유지돼 왔다. 그런 상황에 젖어 있던 정부는 태양광·풍력 전기를 사들일 때 전력 도매가 기준치 역할을 해온 가스 발전단가에다 재생에너지 보조금(REC)을 얹어주는 제도를 채택했다. 천연가스 값이 오르면 태양광·풍력 전기 가격도 따라서 오르는 구조로 설계해 놓은 것이다. 천연가스 값이 이번처럼 급등하거나 또는 급락하는 경우를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 5월 궁여지책으로 전력 상한(上限) 가격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가격이 너무 올랐으니 거래 규칙을 바꿔 인위적으로 가격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그 발표 후 넉달이 지났지만 후속 소식이 없다. 발전사들과 직거래하는 태양광 단지만 5년 전 2만4000곳에서 현재 11만6600곳으로 늘었다. 강력한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반발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태양광·풍력 투자 확대를 유도하려면 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안정된 가격을 제시해줘야 한다.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 아래에선 태양광·풍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돼 있다. 전기 도매가는 2020년 11월엔 지금의 4분의 1 수준이었고, 그땐 지옥을 경험했다. 태양광·풍력 사업자들은 정부가 개설해 놓은 도박장에 들어가 운명을 운에 맡기고 판돈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스스로 설계한 불합리한 제도 탓에 난감한 상황으로 몰렸고 한전은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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