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별명은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그 전쟁을 마무리하는 1919년 파리강화조약은 패전국 독일에서 극우파 나치가 부상하여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했다. 오늘날 중동 문제도 그때 싹텄다. 돈이 궁했던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태계 독립국가 설립을 지지한다”는 밀서를 통해 유태계 자본가들을 유혹했다. 밸푸어 선언(1917년)이다. 그것은, 17세기 말 프랑스와 전쟁하려고 영국 정부가 상인들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들이 세우는 영란은행에 발권 독점권을 준 것과 똑같은, 물밑 거래였다.
밸푸어 선언대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주변 아랍국들이 즉각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제1차 중동전쟁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자 이집트 국민은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했다. 현역 중령 나세르가 왕정을 무너뜨리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고 아랍 세계의 각성과 단결을 촉구했다.
나세르가 주도하는 아랍 민족주의가 불안했던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이집트를 선제 공격했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이다. 나세르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 편에 선 영국과 프랑스에서 수에즈 운하를 빼앗아 국유화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 “운하를 계속 이용하고 싶으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주저앉히라”고 요구했다. 미·소의 중재로 전쟁은 멈추고, 영국과 프랑스는 운하만 잃었다.
1859년 9월 25일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다. 1970년 오늘 그 운하를 국유화한 나세르가 사망했다. 그는 없지만, 중동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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