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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국민을 이기려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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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인사실패 관련 질문에 손가락을 흔들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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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2일로 다시 돌아간다.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윤석열 대통령의 동영상은 혼자 본 것도 1000명, 1만명이 들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게 뒤틀렸다. 대통령이 아니라니까. 애당초 욕설만 인정한 대통령실은 그조차 가타부타 확답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욕한 게 미국 의회도 한국 야당도 아니란다. 그럼, 뭐란 말도 없다. 대통령의 영연방 순방이 파장을 맞은 뉴욕에서 대한민국도 쪼개졌다. 들리는 대로, 믿는 대로, 다수의 ‘바이든’과 ‘날리면’과 ‘말리믄’과 ‘발리면’으로….

경향신문

이기수 논설위원


차례차례 짚을 게 있다. 진보·보수를 떠나, 순방을 보는 눈은 차갑다. 런던의 조문 불발에서 움튼 의아심이 엉망이 된 유엔 정상외교에서 한숨으로 바뀌고, 욕설 동영상에서 폭발했다. 대통령 국정지지율(한국갤럽)은 28%로 곤두박질쳤다. 6월 말 6%포인트 폭락해 첫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것도 나토 정상회의 참석 후였다. 대통령들이 점수 따고 정치적 핀치를 빠져나온 인사와 순방이 윤 대통령에겐 망사(亡事)가 됐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사의 통설도 깨졌다.

난항은 짐작됐었다. ‘내각 퇴진’ 경고선(20%)까지 지지율이 근접한 일본 총리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대통령도 제 코가 석 자다. 몸이 단 것은 정상회담 성사를 호언한 한국뿐이다. 일본은 스탠딩 사진만 찍은 약식회담마저 간담으로 낮췄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도 달러 스와프도 얘기해보자는 어음만 비쳤다. 찾아가서 30분, 기다려서 48초 환담에 ‘G10 대한민국’의 국격과 밀당과 당당함은 없다. 그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 됐다. 반복된 다자회의 실수는 무능이다. 꾸역꾸역 5박7일의 상처를 복기하는 이유는 달리 없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털고 또 실망시키면 안 될 게 얼마나 많았는지 되짚었다.

그 후는 모두 지켜봤다. 대통령은 반성의 빛도 없고, ‘진실’은 침묵했다. 파편은 MBC로, 박진 외교장관의 국회 해임안 발의로 튀었다. 많은 기자가 ‘뉴욕 설화’를 알고 취재하던 시간 처음 보도한 방송사만 옭아매면 진실이 덮이는가. 달(욕설과 국격)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언론사)만 물어뜯는 오작동이다. 국민은 바보가 됐고, 배는 산으로 가버렸다.

“내 말이 맞지?” A의 전화가 왔다. 사흘 전 “윤석열 찍은 내 귀에도 바이든이더라” 한 A는 술상 마칠 때 두 마디를 던졌다. “윤석열을 몰라? 검사가 사과하는 거 봤어?” 유감 표명은 할 거라 본 신문사 논설위원이 술 내기에서 교수에게 졌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 윤석열’은 사과한 적이 없다. 오류 시인에 인색하고 먼지털기도 불사하는 검사들처럼…. 그러고 보면, 육두문자 “이 ××”부터 “버르장머리” “골로 간다” 식의 비속어도 서초동에서 피의자 몰아치다 몸에 뱄음직한 어투다. 대통령실은 MBC를 겨누며 ‘독수독과’(毒樹毒菓·위법하게 입수된 증거는 배척한다는 수사 용어)도 들먹였다. 정상외교 뒷마무리까지 ‘검사 대통령’ 그림자가 얹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유체이탈’ 화법도 낯설지 않다. “5세 취학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이도, 경징계로 끝난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를 “국기문란”이라고 한 이도, 영빈관 예산 878억원을 뒤늦게 중단시킨 이도 윤 대통령이다. 유엔총회 연설을 지배한 수많은 ‘자유’에서도 수출국가 대통령의 입에서 자유무역은 빠졌다. 일 커지면 대통령은 빠지고, 자초지종 모를 일만 쌓이는 중에 ‘책임총리’ 반대말은 ‘신문총리’가 됐다.

종종 세상을 움직이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뜻이 깊다. 바를 정(正)과 칠 복(攵)을 합친 정(政)자는 ‘바르게 잡는다’는 뜻이다. 수저를 입에 가져가는 태(台)를 넣은 치(治)자는 ‘물을 다스려 백성을 먹이라’는 것이다. 협(協)자는 농기구(力) 3개의 힘도 모자라 열십(十)자를 붙였다. 법(法)은 ‘물 흐르듯 하라’ 했고, 공자가 군주의 제1덕목으로 삼은 신(信)자는 ‘사람의 말’이다. 이 나라에 정치·법치·협치가 그 뜻처럼 작동하고, 국민이 대통령 말을 믿고, 국회는 민생의 답을 주고 있는가. 끄덕일 사람이 없다. 욕설로 욕보는 대통령은 처음이다. 협치와 민생과 외교를 위험에 빠뜨린 대통령이 이 난세에 이리 오래 배짱부리고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날도 국정지지율은 28%였다. 취임 100일 날 “국민만 보고 가겠다” 해놓고, 윤 대통령은 지금 국민과 싸운다. 묻힌 상처는 언젠가 터지고, 사과를 먼저 구걸할 국민은 없다. 그 마음에 닿을 때까지, 야당이 맞잡을 때까지 대통령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대통령이 사과하는 날 대한민국도 다시 움직인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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