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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4만장 못따면 소쿠리당 월급 깎아도…이주노동자 못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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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119, 이주노동자 334명 상담결과 발표

한겨레

충북 논산의 한 농장이 외국인근로자에게 제공한 숙소. 외국인근로자시설표에 기재한 숙소와는 다른 비닐하우스 안 샌드위치 패널 가설물을 제공했다. 이주노동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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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우리 욕실을 훔쳐봤고, 우리는 그 농장을 떠났습니다. 그 숙소에서는 더는 불안해서 지낼 수가 없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나 질렸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도, 추가된 노동 시간에 대해서도 더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7월 전북 익산의 한 딸기 농장에서 일하던 농업 이주노동자 메이메이(가명)는 지난 7월 일한 지 5개월 만에 사업장을 옮겨야 했다. 메이메이의 고용주가 여성 노동자의 숙소 샤워실을 훔쳐보다 들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메이가 이런 성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고용주에게 사업장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사업장 변경엔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출신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임금체불· 부적합한 숙소·성폭력 등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주노동 지원 단체인 ‘이주노동 119’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간 캄보디아 출신 농업 이주노동자 334명(상담건수 594건)을 상대로 임금·숙소·성폭력 문제 등을 상담한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해 고용허가제(E-9)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는 3477명(33%)으로, 허가제 도입 16개국 가운데 가장 많다.

이주노동 119가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 31일까지 1년간 상담한 결과를 보면 344명이 594건을 상담받아, 상당수의 노동자가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사업장 변경’ 문제가 114건(19.2%)으로 가장 많았고, 임금체불·초과노동·퇴직금 등 ‘임금 문제’가 87건(14.6%), 부적합한 숙소나 과도한 숙소비 등 ‘기숙사’ 문제가 83건(14%)으로 뒤를 이었다. 상담자의 76%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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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 메이메이(가명, 오른쪽 두번째)가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농업 이주노동자 주거·노동환경 대책을 촉구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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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3명 가운데 1명(30.8%)는 임금체불·과도한숙소비·장시간노동 등 임금 문제를 호소했다. 경남 밀양의 깻잎 농장에서 일하던 보파(가명) 역시 매일 40㎏(4만장)의 깻잎을 따야했다. 고용주의 강요에 못 이겨 ‘하루 분량에 모자라는 소쿠리 수만큼 임금에서 공제된다’는 동의서에 사인했기 때문이다. 보파의 계약서상 휴게시간은 3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1시간만 쉬고 2시간 더 일을 했다. 상담 사례 중에는 표준 근로계약서에 ‘근로 장소’인 주소가 없거나, 휴게시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매일 2시간 더 노동을 하고, 이를 숙식비 등으로 상계한다’는 내용의 상계 합의서 등도 경기도 이천, 충북 음성 등에서 발견됐다.

숙소 문제도 열악했다. 상담 과정에서 숙소에 문제가 있거나 숙소비가 과도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이주노동자는 83명(14%)였다. 숙소를 이른바 ‘샌드위치패널’에서 인근 주택으로 옮기고, 과도하게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 등이다. 지난해 충남 논산과 경남 밀양에서는 주택대장이 없는 공가나 폐가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고 노동자에 제공해, 겨울 난방비가 6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숙소 유형이 파악된 66명의 거주지를 보면, 비닐하우스 거주자가 30명으로 가장 많았고, 샌드위치패널 15명, 컨테이너 8명, 아파트 6명, 폐가 5명 순이었다.

불안정한 주거 문제는 성폭력과 연결됐다. 이주노동 119는 11건의 성폭력 상담이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봄 충남 논산에서는 40대 고용주가 20대 이주노동자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고용주는 여름에는 이주노동자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게 하고 겨울철에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임시로 지내게 하며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정영섭 이주노동119 활동가는 “이런 다양한 인권 침해 피해를 겪어도 (사업주의 동의 없인)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현 정책이 이주노동자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막는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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