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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핫마이크에 가린 尹 북미 외교성과…카이스트 뉴욕·IRA반전·脫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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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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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지난주 미국·캐나다 방문이 '핫 마이크(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발언해 생긴 사고)' 사태로 번졌지만 정작 한미 외교가에서는 꽤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원조로 탄생한 KAIST(카이스트)가 미국 뉴욕대(NYU)와 공동 인재 양성에 나서기로 하면서 달라진 한미동맹의 위상을 실감했고, 윤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언 이후 미국 내 분위기도 반전됐다는 것이다. 특히 순방 마지막 날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캐나다 방문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한국의 조용한 탈(脫)중국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참석한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는 카이스트와 뉴욕시 간 협정서 전달식 겸 카이스트·NYU 조인트 캠퍼스 현판 전달식이 진행됐다. 카이스트는 1971년 미국이 원조한 자금 600만달러로 설립된 과학기술 전문 교육기관이다. 그렇게 시작한 카이스트가 50년이 지나 거꾸로 미국에 진출해 인재를 공동 육성할 정도로 커진 게 한미동맹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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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포럼에서 진행을 맡은 마크 리퍼트 삼성 북미총괄 부사장(전 주한미대사)은 다음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관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날 행사가 이뤄진 뉴욕대는 카이스트 설립의 기초를 제공한 한국인 물리학자가 교수로 있던 곳"이라며 "카이스트가 뉴욕대에 공동 캠퍼스를 낸 것은 완결형 순간(full circle moment)이었으며, 600만달러는 미국이 한국에 지원한 가장 값진 돈이었다"고 술회했다.

리퍼트 부사장이 말한 '한국인 물리학자'는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당시 미국 브루클린공대(현 뉴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카이스트 설립의 산파역을 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나 IRA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이후 워싱턴 조야에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16일 미국 IRA 법안이 발효된 이후 약 한 달 반 동안 한국의 장차관급 인사들이 수차례 미국을 드나들면서 행정부와 의회를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다. IRA로 인해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게 주요한 요구사항이었다.

미국 측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 당국자들은 이 법이 미국에서 친환경 소비를 가속화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만든 것이지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주장만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에서도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톰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지난 22일 뉴욕에서 "올해 상반기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약정한 규모는 276억달러로 미국의 우방국인 일본·캐나다·독일 3개국 투자약정 규모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며 "미국이 진정한 글로벌 전략 파트너십을 시도하려면 국내법 제정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결과에 주의해야 한다(be mindful)"고 밝혔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이후 삼성전자 170억달러, 현대차 50억달러 등 대규모 미국 투자를 약정했지만 IRA로 한국이 미국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CSIS도 같은 날 'IRA, 유엔총회에서 주목받다'는 제목으로 논평을 내고 "윤 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유엔총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양국관계에 가시가 된 IRA를 논의하면서 주목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북미 순방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윤 대통령이 지난 23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조용히 탈중국 행보를 한 것이다. 이번 한·캐나다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는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소재 광물에 대한 협력 강화 방안이었다.

윤 대통령 순방을 계기로 한국과 캐나다 기업 및 정부기관 간 핵심 광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4건도 체결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 경제질서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뿐만 아니라 당장 IRA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미국이 FTA를 맺고 있는 나라에서 핵심 광물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캐나다·칠레·호주 등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게 절실했던 것. 이에 따라 최근 캐나다산 광물을 수입하기 위한 각국 경쟁이 치열해지던 중에 한국이 이를 선점하면서 배터리 등 소재기업들도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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