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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영국 '부자감세안'으로 파운드화 추락…'강달러'로 취약국 불안 가중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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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영국 정부가 내놓은 '부자감세' 정책 여파로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물가 급등에 파운드화 가치까지 하락하며 영국중앙은행(BOE)이 금리인상을 서두르며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함에 따라 달러 강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가파른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강달러에 신음하는 타국 경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쟁의 대가"를 언급하며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낮췄다.

26일(현지시각) 영국 파운드화는 외환 시장에서 5% 가량 폭락해 1파운드 당 1.03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이는 1985년 2월 이래 가장 낮은 값으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올 들어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21%나 하락했다. 이날 영국 5년 만기 국채 금리도 4.6%를 기록해 2거래일 만에 1%포인트나 뛰었다. 채권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이날 파운드화 급락은 지난주 발표된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달 초 감세를 내세우며 당선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정부의 재무장관 쿼지 콰텡은 지난 23일 이전 정부가 추진한 법인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등의 감세안을 발표했다.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감면 혜택을 준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낙수효과'를 통한 성장 촉진을 노린 정책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뒤 치솟은 에너지 요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비용 지출 등 정부의 지출 계획이 산적한 상황에서 뾰족한 자금 조달 방안이 없는 감세 정책이 영국 정부 부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선 파운드화와 달러가 1대 1의 비율로 교환되는 '패리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영국중앙은행(BOE)은 시장에서 기대한 긴급 금리인상 등의 조치를 취하는 대신 26일 성명을 통해 11월로 예정된 통화정책위원회(MPC) 때까지 상황을 평가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하락을 방치했다. 영국중앙은행은 지난 22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해 최근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역시 이달 초 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한 유럽중앙은행(ECB)에 비해 인상폭이 적었다. 영국의 8월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9.9%로 같은 기간 미국(8.3%)과 유로화 통용 지역인 유로존(9.1%)보다 높아 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파운드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올려 이미 연료비 급등으로 생활비 위기에 직면한 영국 가계의 문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영국 통계청이 지난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영국 기업의 4분의 1 이상(29%)이 10월 판매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종업원 10인 이상 기업의 절반 이상(55%)이 가격 인상을 고려하는 이유로 에너지 가격을 꼽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운드화 폭락은 영국중앙은행이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릴 유인을 주고 급격한 금리 상승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라파엘 보스틱 미국 애틀랜타 연방은행 총재는 영국의 이번 정책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킹달러' 지속되며 취약국 불안 가중될 전망…NYT "연준 정책 때 강달러 고통 타국도 고려해야"

지속되고 있는 달러 강세, 이른바 '킹달러(King dollar)'는 파운드화 외에도 주요 통화의 가치 하락을 이끌고 있다. 지난 22일 장중 한 때 일본 엔화가 달러당 145.89원을 넘어서는 등 올들어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30% 가량 폭락하자 일본중앙은행이 24년만에 엔화를 매수하는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도 26일 1430원을 넘어섰다. 유로화는 지난 7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화와 등가(패리티)로 교환되게 됐다.

강달러 추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이로 인한 공급망 혼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로 인한 에너지 및 식량 공급 위기, 전세계적 인플레이션 등 경제 불안 시기에 달러는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는다. 게다가 연준이 금리를 잇달아 공격적으로 인상하며 달러 가치는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미국도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상황이지만 다른 경제의 상황도 밝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달러 강세가 취약국의 국제시장에서 달러로 거래되는 식품 및 연료 수입 비용을 높이고 달러 표시 부채를 갚지 못할 위험을 키우며 신흥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결제에 사용되는 기축통화 특성상 달러 강세는 취약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입 비용을 증대시켜 인플레이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매체는 "분명히 연준의 임무는 미국 경제를 돌보는 것이지만 일부 경제학자들과 외교 정책 입안자들은 연준이 미국 외 나머지 나라들에 여파에 대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쟁의 대가를 치르다"라는 제목의 중간경제전망을 발표해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을 종전 2.8%에서 2.2%로 낮췄다. 올해 성장률 전망은 3%로 유지했다. OECD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경제는 타격을 입었다. 글로벌 경제성장은 2022년 2분기에 멈췄고 많은 경제지표가 더 오랜 기간의 둔화된 성장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높은 에너지 비용이 가정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촉구하고 "전쟁의 여파가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현상과 결합될 경우 세계 식량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레시안

▲영국 파운드화(오른쪽)와 미국 달러화(왼쪽)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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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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