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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취재파일] '회담'과 '간담' 사이…日 기자에게 물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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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6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출연했습니다. 지난주 뉴욕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30분 회동에 대한 외교적 평가가 있었습니다. 한일 정상 간의 만남은 2019년 12월 이후 2년 9개월 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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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 (한국과 일본 간에) 정상회담 이뤄지지 않고…
우상호 : 저 쪽은 간담회라고 그러잖아요.
김어준 : 간담회라고 하죠.
우상호 : 저거 되게 망신인 게 우리는 정상회담이라고 하는데, 일본이 간담회라고 하는 건 아주 국제적 망신입니다.
김어준 :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우상호 : 저거 책임을 물어야 돼요. 대한민국 국가가 아주 창피를 당한 거예요. 이건 참사예요.
-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지난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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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의원은 '창피를 당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국과 일본의 표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은 기시다 총리와의 '약식 회담'이라고 표현한 반면, 일본 외무성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간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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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뉴욕에 방문중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장관은,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간담을 실시했습니다.
国連総会出席のため米国・ニューヨークを訪問中の岸田文雄総理大臣は、尹錫悦韓国大統領と懇談を行いました。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지난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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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말한 '간담'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쓴 '회담'과는 달리 정식 회담이 아니라는 것, 즉, 일본이 양국 정상의 만남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논란이 일자, 일본 정부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서로 표현이 다른 것일 뿐, 일본에서 쓰는 '간담'과 한국에서 쓰는 '약식회담'은 별 차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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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노 일본 관방장관 : 일본에서 간담이나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약식회담으로 호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간담과 약식회담은)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다.
- 마쓰노 장관 기자회견, 지난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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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상호 의원의 발언에서 보듯, 윤 대통령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우리는 두 정상의 만남을 '과장'하고, 일본은 '과소'했다는 것, 달리 말하면, 굴욕 외교라는 겁니다.

일본에 쓰는 '간담'과 '회담'의 차이, 정확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일본에서 '간담'(懇談)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일본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다만, 기사에는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는 해당 기자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의견이 아닌 단순한 용어의 쓰임새에 대한 인터뷰이고, 예민한 한일 관계에 대한 문제인 만큼, 기자 개인의 정치적 부담을 감안해 익명으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자는 "일본에서 회담이라는 용어는 의제가 명확하고, 공식적 의전이 수반될 때 쓰는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정상 간의 회담은 우리가 흔히 쓰는 '정상회담' 보다는 '수뇌회담'(首脳会談)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사실은팀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다른 나라 정상과의 공식 회담을 대부분 '수뇌회담'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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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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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팔라우 수뇌회담 및 점심 만찬을 가졌습니다.
日・パラオ首脳会談及びワーキングランチを行いました。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지난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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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 말로는, 공식 회담이 아닌 경우 일본에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다치바나시'(立ち話)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서서하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실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다치바나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일어서서 이야기할 때만 쓰는 표현은 아니라고 합니다. 기자는 "앉은 상태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에도 다치바나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일본 정부 발표도 그렇고, 언론 기사도 그렇게 나온다"고 했습니다.

한국 언론도 다치바나시를 '약식 회담'으로 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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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시' 회담은 서서 이야기하는 방식의 접촉과 함께 약식 회담도 통칭한다는 것이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일부 일본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만찬장에서 잠시 서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진행하되 정식 정상회담의 룰은 따르지 않는 형식도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다.
- "한·일 정상간 '다치바나시' 약식 회담도 검토 중", 중앙일보, 2019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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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는 "이번에 쓰였던 '간담'(懇談)이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만, "표현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중요한데, '간담'이라는 표현은 '수뇌회담'과 '다치바나시'의 중간 정도의 뉘앙스로 느껴진다"고 해석했습니다.

일본 외무성은, 윤 대통령과 같은 날 있었던 조지프 바이든 대통령과 만남 역시 '간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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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총리. 일본 외무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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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단시간 간담을 실시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ジョセフ・バイデン米国大統領と短時間懇談を行ったところ、概要は以下のとおりです。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지난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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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에서도 다치바나시를 '약식 회담'으로 해석해 왔던 관행에 비춰볼 때, '간담'을 '약식 회담'으로 보는 건 무리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회담과 간담' 논란의 여지를 남긴 건 대통령실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 정치 전문가는 "이번 한일 정상의 만남은 그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측면이 크다. 합의 발표 이전 회담 정보가 한국에서 새어 가나가며 일본 측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후에는 우리가 구애하는 모양새처럼 보였다"며 "이런 상황이 정치권에서 표현 문제로 비화하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된 측면도 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우리 정부의 미숙한 외교가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인턴 : 강윤서, 정수아)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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