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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신당역 등 1~8호선 275개역 ‘112 직통 비상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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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3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중구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앞에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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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당시 신당역에서 피해자 A씨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누른 비상벨(비상통화장치)은 역 직원에게 연결돼 있었다. 신당역 등 서울 지하철역 어디에도 경찰 직통 비상벨은 설치돼 있지 않다. 서울교통공사 내부에서 피해자가 사고 당시 누른 비상벨이 경찰과 연결돼 있었다면 경찰, 구급대원들의 대응이 더 빨랐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경향신문이 이날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지하철역별 112비상벨 설치현황’을 보면 서울교통공사는 “112로 연결되는 비상벨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신당역뿐 아니라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1~8호선 275개역에 112 직통 비상벨은 설치돼 있지 않다. 서울교통공사는 역직원과 통화가 가능한 비상벨을 승강장에 1550대, 화장실 및 수유실에 3635대를 설치해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신당역에도 승강장에 6대, 화장실에 14대의 역직원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인천 지하철 2호선에 지난해 112종합상황실로 연결되는 비상벨이 전국 도시철도 최초로 설치됐다. 상황실과 고객안내센터 간의 양방향 음성소통이 이뤄져 비상벨을 누르면 인접 파출소나 지구대에서 출동하는 식이다.

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119와 연결된 비상벨도 없고 화재 경보만 119와 연결돼 있다”며 “화재경보가 울리면 자동으로 119에 신고가 들어가는 식이다. 112, 119 직통 비상벨이 있었다면 단 1~2분이라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전 공사 직원 전주환은 지난 14일 오후 8시56분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역무원 A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A씨는 오후 8시57분 화장실에 있는 비상벨로 도움을 요청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지난 21일 국회 여성가족위 업무보고에서 “역 사무실에 비상폰(비상벨)이 울렸고 사회복무요원과 역 직원 2명이 상황이 일어난 것을 보고 제압했다”며 “가해자의 흉기를 빼앗고 제압하고 피해자를 끌어서 일단 지혈을 시키면서 112와 119에 신고를 했다. 9시3분 경에 경찰이 도착했고, 9시7분경에 119가 현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으로부터 2시간30여분 뒤 목숨을 잃었다.

역무원들이 전씨를 제압한 뒤 신고를 했다. A씨가 도움을 요청한 비상벨이 역직원뿐만이 아니라 경찰에 연결돼 있었다면 출동 시간은 더 단축될 수도 있었다. 역무원들은 흉기를 든 전씨를 상대해야 했기에 2차 피해도 우려됐다.

경향신문

서울교통공사 지하철역별 112비상벨 설치현황.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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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내부게시판에 “언젠가는 한번 터질 것 같은 불안불안한 일이었다”며 “콜센터는 아무렇지 않게 ‘객실 내 흉기 난동자가 있으니 확인부탁드린다’고 전화하고 ‘경찰과 보안관에 먼저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으면 ‘신고했고 출동 중이니 역직원이 먼저 확인하라’는 말에 역직원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면식법의 소행이든 아니든 근무 중에 근무자의 안전은 보장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분명 회사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은 “우리가 경찰인가. 왜 흉기난동자, 소란자를 역직원이 가서 제압하나”라며 “가서 뭘 할 수 있나. 맞고 오는 게 대다수다. 호신용구조차 없이, 그것도 인원이 없어서 혼자 내려갔다 오는 경우가 90%가 넘는다”고 했다.

2년 전 서울교통공사의 가스총(가스분사기) 회수 조치로 역무원들은 비무장 상태였다.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 김 사장 취임 후 가스총의 사용 빈도가 낮고 폭행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미미해 불필요한 행정 낭비라며 전자식 호루라기를 지급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편의점에도 경찰 비상벨이 있는데 우리는 경찰 비상벨이 없다”며 “진짜 응급한 상황에서 역무원들 판단 하에 버튼만 누르면 경찰이 바로 출동할 수 있게 하면 좋은데 그게 안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장난으로 누르는 게 우려된다면 순찰할 때 사용하는 디지털 무전기에 경찰 비상벨 기능을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지난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사회복무요원과 여성 직원 당직 축소, 폐쇄회로(CC)TV 통한 가상 순찰, 좋은 호신장비 보급, 역사 내 세이프티존 설정 및 비상벨 설치 등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김 사장은 “지금 모든 비상벨이 역사 사무실로 오게 돼 있다”며 “비상시에는 저희들뿐만 아니라 인근 경찰 지구대라든가 파출소로 동시에 갈 수 있는 기능을 보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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